식대 포함한 최저임금으로 인간다움 유지될까 [왜냐면]

한겨레 2024. 6. 1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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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25일 고려대 청소·경비·주차 노동자들이 식대 인상을 위한 손팻말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고나린 기자

김동수 | 르포작가·‘유령들: 어느 대학 청소노동자 이야기’ 저자

2013년 한 대학의 청소노동자들이 민주노총 산하 노조에 가입했다. 그 대학은 이미 존재하는 노동법조차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었다. 이를 개선하고자 하나로 단결한 그들은 교섭과 쟁의행위를 반복하다 마침내 사쪽과 단체협약을 체결할 수 있었다. 그 단체협약에는 그 전까지 누릴 수 없었던 권리들이 담겨 있었다. 한 청소노동자는 그 권리 가운데 회사가 매달 정기적으로 지급해야 하는 식대를 으뜸으로 치며 이렇게 말했다. “건물 청소를 하려면 밥을 잘 먹어야 해요. 일이 많이 힘들거든요.” 여러 곳에서 청소일을 해왔던 그였지만, 그동안은 알아서 끼니를 해결해왔다. 청소일하고 받는 최저임금으로 생활하기도 빠듯한데, 그 돈으로 일터에서 ‘비싼 밥’까지 사 먹을 수 없어 밥과 밑반찬 한두 가지가 전부였다. 그때까지 그가 거쳐 간 일터에는 노조가 없었다.

얼마 전, 한겨레가 창간기획 ‘노조탄압보고서’에서 기업의 노조 탄압 현실을 조명했다. 그 기사들을 읽으며,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드는 일 이상으로 노조를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깨달았다. 문제는 기사 속 현장만 아니라, 노조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기업이 노동자를 노조에서 탈퇴시키기 위해 그들의 인권을 유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행위는 엄연히 불법이다. 그런데도 많은 기업이 감행하는 이유는 ‘경제적’이기 때문이다.

지난 2월14일, 민주노총 소속 세브란스병원 청소노동자들이 부당노동행위를 벌인 원·하청 관계자들을 고소·고발한 지 7년여 만에 나온 판결을 보자. 유죄를 선고받은 관련자 모두의 형량은 많게는 1200만원, 적게는 200만원의 벌금형에 불과했다. 이 벌금액을 모두 합치면 대략 5천만원쯤 된다. 사실 세브란스병원 원·하청이 민주노총 산하 노조를 완벽하게 없애진 못했지만 소수화하는 데는 성공했다. 현행법상 소수 노조는 사쪽과 합법적으로 교섭하기 매우 어렵다. 세브란스병원 원·하청 쪽이 노조의 교섭권을 불법적으로 빼앗은 후 얻었을 실익에 비하면, 벌금 5천만원은 저렴한 대가가 아닐까. 이는 벌금형이라도 선고받았으니 그나마 나은 상황이다. ‘노조탄압보고서’도 보도했듯, 기업이 노조를 와해했다고 처벌받는 일은 드물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노조를 기업의 이윤 창출을 방해하는 존재로만 인식하는 듯하다.

대통령과 정부는 노동 약자 ‘개인’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를 만들겠다고 공언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한계가 뒤따른다. 사용자가 편법과 탈법, 더 나아가 불법을 저지를 때 노동자 홀로 이에 대처하기 쉽지 않은 게 우리나라 노사관계의 현주소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국가가 노동자를 지켜주는 제도는 인간다운 삶의 최소한만 보장하는 경향을 보인다. 솔직히 그 최소한이 과연 최소한인지조차 의심스럽다. 단적으로 최저임금이 있다. 사쪽에 현실적으로 식대를 요구하기 어려운 청소노동자 개인들은 현재 ‘법적’으로도 식대를 요구하기 힘들다. 2018년 시간당 최저임금이 전년보다 1060원이 오르자, 문재인 정부가 매달 지급되는 상여금과 현금성 복리후생비를 2019년부터 5년간 최저임금 산입 범위에 단계적으로 편입시키도록 최저임금법을 개정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로 올해부터 최저임금에는 식대가 100% 포함된다. 이런 법이 만들어진 목적은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고통받을 사용자들을 ‘배려’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 시간당 최저임금은 아직도 1만원을 넘어서지 못했고, 인상액은 1천원을 넘긴 적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민주노총 소속의 서울권 대학 청소노동자들이 5년간 동결돼 온 식대를 인상하기 위한 투쟁을 벌이는 건 상징적이다. 그들은 식대뿐 아니라, 최저임금을 상회하는 임금 인상안을 매년 원·하청에 요구해왔고 끝내 쟁취해 왔던 역사가 있다. 그들의 노동조건도 속도는 느릴지라도 차츰 개선되고 있다. 노조 없는 청소노동자들은 결코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다. 그렇다면 정부가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뭘까? 노동 약자 개인을 보호하는 제도를 만드는 것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그들 스스로 노조할 권리를 온전히 보장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법제화하는 것이 아닐까. 그 첫걸음은 바로 노동 약자에게 노조 가입을 독려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은 집권 초부터 파업하는 노조를 불온시하다 못해, 이권 카르텔로 규정하고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최저임금법에 따라 내년도 최저임금을 결정할 회의가 시작됐다. 대통령과 정부에 묻고 싶다. 단지 노동 약자 개인을 지켜주는 제도의 구축만으로 정말 그들 모두 영양가 있는 식사를 할 정도의 식대를 보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식대까지 포함된 지금의 최저임금으로 노동 약자가 정녕 최소한의 인간다움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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