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견을 듣는다] "美중심 반도체 동맹 올라타지 않으면 한국 경제 미래 어두워"
정부·기업 역할 재정립 필요, 국민들이 시장 경제 뒷받침해야 발전
개혁 분리 추진 안돼… 시장원리 확립이라는 공통적 지향점 있어야
재정은 최후의 보루… 국가가 국민의 생활 책임지겠다는 생각 안돼
[]에게 고견을 듣는다 김인호 시장경제연구원 이사장·전 靑경제수석
"우리 경제는 지표상으론 고비를 넘기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구조적인 문제가 여전히 심각한 상태입니다. 성장률과 글로벌 경쟁력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가운데 저생산성 부문의 노동력 규모는 경쟁국에 비해 과다한 실정입니다."
13일 서울 용산 철도회관 사무실에서 만난 김인호 시장경제연구원 이사장은 한국 경제에 대한 진단부터 말을 꺼냈다. 우리 경제가 곁으로와는 달리 구조적 위기 상황, 시스템적 위기 상황이 이어지고 있으며, 획기적인 돌파구는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김 이사장은 한국 경제의 재도약을 위해선 이런 문제를 직접으로 깊게 다룰 수 있는 조직과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미·중 갈등 등 세계 질서가 격변하는 와중에 각 경제 주체들, 특히 기업이 주도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며 민주주의와 동전의 양면 관계인 '자유시장경제'의 확립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또 "경쟁력은 오로지 '경쟁적 구조'에서 생긴다"며 경쟁 시장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우리 경제의 규모와 질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한 상태에서 정부와 기업의 역할 및 관계가 달라져야 한다며 기업들의 창의적 발상이 실현될 수 있는 '기업가형 국가'를 추구해야 할 모델로 제시했다. 이를 위해선 국민들이 기업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꿔야 한다며 우리 사회 일각에 팽배한 반(反)기업 정서를 우려했다. 노동·교육 등 윤석열 정부가 기치로 내세운 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선 공통적 지향점이 있어야 한다며 시장경제의 원리로 되돌아갈 것을 주문했다. 세계 시장에서 대한민국의 경쟁자로 급부상한 중국의 추격을 뿌리치기 위해선 고급 기술, 고급 제품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수 밖에 없다며, 미국이 추진하는 반도체 동맹에 올라타야 지속적 발전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김인호 이사장은 경제기획원(현 기획재정부) 사무관으로 시작해 경제관료 30년, 경제 관련 협회와 단체에서 25년 등 55년의 경륜을 지닌 경제계 원로다. 정부에서 여러 대통령의 주요 경제운용 과정을 실무자로부터 책임자(장관)에 이르기까지 지켜봤다. 기획과 설계, 제도화로 이어지는 정책 구현을 담당했고, 대통령의 최측근 보좌관(장관급 경제수석비서관)으로서 국가 전체 거시정책의 결정에 참여했다. 김 이사장은 시장과 정책을 조화시킨 경제관료로 정평이 나있다. 철저한 시장주의자이면서 원칙주의자다. 우리나라가 사실상 처음으로 안정된 물가시대를 구가한 1980년대 중반 김 이사장은 경제기획원 최장수 물가국장으로서 혁혁한 역할을 했다. 김 이사장의 경제관은 경쟁적 구조, 소비자주의, 국제화로 요약된다. 소비자보호원장 시절에는 소비자중심 경제구조 구축에 매진했다. 철도청장 때는 고객중심 개념을 도입해 공기업 체질 개선에 이정표적 전환점을 세웠다. 공정거래위원장 시절에는 상호채무보증제도 폐지, 내부거래규제 강화 등 공정경쟁 틀을 세웠다. 한국무역협회장을 맡아 세계일류 '기업형 국가'로 발전시키기 위한 역점사업을 추진했다. 시장경제연구원과 20년을 동행하면서 분쟁을 법적 경제적 다원적으로 접근해 합리적 처방을 도출하는 방법론을 개척했다. 지식과 논리로 무장된 정통 관료지만 문화예술의 여유를 즐기는 전인적 풍모도 두드러진다.
대담 = 강현철 논설실장
- 먼저 여쭤보고 싶은 게 우리 경제의 현황입니다. 반도체 수출 증가에 힘입어 지난 1분기 성장률이 1.3%에 달하는 등 경제가 회복기에 접어들었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습니다. 반면 위기 직전이라는 견해도 있는데 어떻게 보시는지요.
"지표로 보면 수출이 좀 회복되고 물가도 그런대로 잡혀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올해 전체적인 성장률은 3%까지는 못 돼도 2.6% 정도는 될 것으로 보입니다. 정부나 국책연구기관들은 고비를 넘기고 있는 것 아니냐고 얘기하고 싶을 거고, 그렇게 말하는 게 근거가 없는 건 아니죠. 문제는 숫자에 집착하다 보면 본질을 놓치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입니다. 숫자는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예를 들어 30m 크기의 나무가 서 있으면 해가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길게 보이기도 하고 짧게 보이기도 하죠. 편견 없이 통계를 봐야 합니다. 계량적 측면에서 우리 경제가 조금 나아지고 있다는 것을 굳이 부정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제가 끊임없이 강조하는 것은 우리 경제가 계량적으로 조금 나아지느냐 나빠졌느냐에 관계없이 구조적으로 경쟁력을 발전시키고 있느냐는 점입니다."
- 글로벌 경쟁력이 낮다는 말씀입니까?
"저는 한국 경제가 해결해야 할 본질적이고 구조적 문제가 있으며, 이 문제에 정면으로 어드레스(address ·깊게 다루다) 해서 풀지 않으면 지속적으로 성장해 나가기 어렵다고 봅니다. 경쟁력이 계속 떨어져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서울대 김세직 교수는 5년에 1%포인트씩 성장률 하강의 법칙이라는 걸 얘기했죠. 김영삼 전 대통령때 5년간 연평균 6%대의 성장을 했는데 김대중 대통령때 5% , 그다음 노무현 대통령때는 4%, 이명박 대통령 와서는 3%대, 박근혜 대통령 때는 2%대였죠. 이는 경쟁력이 계속 떨어져 가고 있다는 이야기다 말이죠. 이게 우리 경제의 본질적 문제입니다. 경쟁력의 침하 현상을 끝내고 어떻게 다시 업턴시키는 게 가능한가, 그렇게 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인가 이런 것들을 고심해야죠."
- 경쟁력을 갉아먹는 구조적 요인이 뭘까요?
"낙관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대한민국이 반도체도 잘 되고 자동차와 조선도 잘 되고 있고, 첨단 제조업 인프라를 갖추고 있는 세계적으로 몇 안 되는 나라라고 합니다. 이를 보면 잘 되는 경제라는 점은 틀림없죠. 하지만 다른 쪽을 보면 영세 상공업, 자영업 등에 속하는 취업자 규모가 다른 나라에 비해 엄청나게 많습니다. 미국의 4배, 일본의 3배, EU(유럽연합)의 1.5배 정도의 인력이, 즉 우리 노동력의 24~25%가 이 부문에 체화돼 있습니다. 저는 이를 '저생산성 부문'이라고 부르는데, 경제에 사실상 크게 기여하지 못하는 부문이죠. 바꿔 말하면 이들 가운데 절반 이상을 빼내도 대한민국의 생산성에 큰 문제가 없다는 뜻입니다. 이 과잉 노동력이 만병의 근원이에요. 한국 경제 전체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동시에 잘되는 부문과의 격차, 소위 양극화 현상의 주범인 것이죠.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경쟁력은 점점 더 약화되고, 사회적 갈등은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겁니다.이 문제를 해결해야만 한국 경제가 최소한 과거와 같이 그런 대로 잘 나가는 경제로 되돌아갈 수 있으며, 이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확립돼야 된다고 봅니다."
- 경쟁력은 어디서 생기는 겁니까?
"많은 설명이 가능하지만 저는 간단하게 얘기해 경쟁력은 오로지 '경쟁적 구조'에서만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경쟁적 구조가 안되면 경쟁력이 생기지 않습니다. 우리 제조업이 왜 발전했을까요? 세계 경쟁을 했기 때문입니다. 반면 한국 금융이 낙후된 건 세계 경쟁을 안하기 때문이죠. 가장 우수한 인력이 대학 나와 가장 많이 가는 데가 금융기관인데 국내에서 오물조물 해가면서 서로 나눠먹기 해도 먹고 살 만하니까 경쟁을 안 하는 거예요. 게다가 마음대로 상품 하나 못만들고, 해외 진출도 못하는 대표적인 정부 규제 산업이기도 하죠. 세계 금융 수요자의 기대에 맞는 상품을 개발하고 그걸 가지고 해외에 진출하고, 이런 일을 우리나라 금융은 안 하고 , 못하고 있는 거죠. 바로 여기서 우리나라가 갈리는 겁니다."
- 말씀하신 '저생산 부문'의 문제도 경쟁적 구조의 도입으로 풀 수 있겠군요.
"그렇습니다. 이 부문은 세계 경쟁은 고사하고 국내에서도 정부의 지원이 없으면 하루 이틀도 못 견디는 구조가 돼 있습니다. 거기다가 아무리 돈을 퍼부어 본들 경쟁력이 생길 수가 없죠. 그래서 저는 한국 경제가 구조적 위기 상황이며, 이런 상황은 지속되고 있다, 그리고 획기적인 돌파구가 보이지 않고 있다고 봅니다. 구조적 위기 상황은 비단 현 정부에서 뿐만 아니라 문재인 정부때 더 심했으며, 그전부터 쭉 있어왔는데 역대 대통령이나 정부가 이 문제에 정면으로 어드레스해 경쟁력을 근본적으로 높이고 위기 구조를 탈출하는 그런 시도를 해본 적이 없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윤석열 정부가 그런 걸 좀 할 수 있지 않겠냐고 기대를 했는데 현재까지로 봐서는 굉장히 어려운 것으로 보입니다."
- 저출생과 인구의 노령화 등으로 2040년부터는 역성장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도 나오고 있습니다. 규제 완화도 말씀하셨는데 한국 경제가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어가려면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요?
"지금 우리 경제는 '시스템 리스크'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제 규모나 질 모든 면에서 한 단일 주체가 끌고갈 수 있는 단계가 지났어요. 글로벌 환경 또한 이를 용납하지 않게 됐죠. 세계 경제가 서로 얽혀 돌아가면서 미·중의 공급망 경쟁 등 과거 상상하지 못했던 경제 전쟁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한국이 어떻게 경제안보를 지켜가면서 경쟁력을 유지해 나가고, 우리 내부의 여러 갈등 구조를 해결해 나가야 하는데 이런 역할을 하고 있는 조직도 없고 사람도 없다고 봅니다. 가령 모든 걸 조화롭게 끌고 갈 수 있는 능력이 정부에 있나요? 정부는 그렇게 유능한 조직이 아닙니다. 결국은 각 경제주체들, 특히 기업이 각기 자기 이익을 추구하고 최선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시장에서 조화가 이뤄지며 문제를 풀어가는 길밖에 없습니다. 정부는 필요한 인프라를 만드는 등의 역할을 해야죠. 정부라는 단일한 이성에 의해 경제를 이끌고 나갈 수 있다고 하는 생각 자체를 버려야 됩니다. 기업을 경제 문제를 풀어나가는 주체로 등장시키고 정부가 이를 뒷받침해주는 시스템으로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이게 바로 윤석열 대통령과 제가 얘기하는 자유시장경제입니다.그런데 우리나라가 과연 그런 쪽으로 가고 있느냐에 대해선 상당히 회의적입니다."
- 정부와 기업의 역할이 재정립될 필요가 있다는 말씀이군요.
"그렇습니다. 기업의 역할이 강화되고 정부가 하는 역할이 달라져 정부와 기업 간 관계가 다시 설정되는 모습으로 가야만 한국 경제가 살아나갈 수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다양한 주체들이 자기판단에 의해 활동을 해가고 이게 종합돼 경제가 돌아가는 시스템이 되지 않으면 격변하는 국제질서 환경을 이겨낼 수가 없습니다. 이게 바로 제가 주장하는 시장경제고 자유기업주의 사회입니다.하지만 우리 제도나 정책, 기업 환경, 국민들의 기업에 대한 인식 등은 너무 괴리가 있고, 이게 바로 시스템 리스크인 겁니다. 이런 현상은 지금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지 않습니까? 이 문제 해결을 위해 본격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한국 경제는 더 나아가는 건 고사하고 현상을 유지해 나가는 것도 쉽지 않을 겁니다. 각개로 돌파하는 식으론 문제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시스템적 대응을 해나가는 수밖에 없죠. 우선 대통령이나 여당이 이런 문제의식을 가져야 하고, 야당을 설득해 따라오게 만들어야 되며, 언론이나 사회 지성집단이 서포트해줘야 합니다."
- 정치권도 문제이지 않나요?
"여야의 행보는 이런 얘기를 하면 아마 웃긴다고 할 정도로 반대로 가고 있죠. 기업 활성화 정책을 내놓으면 부자들을 더 잘 살게 하는 정책이 아니냐고 비난합니다. 사실은 이를 통해 고용을 늘리고 빈부격차 문제를 근본적으로 고쳐 나가야 되는데 한 발자국도 못 나가게끔 하고 있죠. 공장 건설에 새로운 부지와 전력망이 필요한데도 송전선 하나 제대로 못 놓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 총선전까지 2년동안 어떻게든지 국민의 신뢰를 더 많이 얻어 다수당이 되고 국회 지원을 받아 이게 가능할 것으로 기대했는데 물거품이 됐죠. 사실 지금 정부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얼마 없습니다. 그러면 결국 경제도 그 선에서 멈출 수밖에 없게 돼있는 거예요. 이게 위기죠.구조적 문제가 해결 방향으로 한 걸음도 못 나가고 있는 겁니다."
- 자유시장경제에 대해 많이 말씀하셨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초때부터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강조하면서 기대가 많았는데 지금은 회의적 시각들이 적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지난 2년 동안 윤 정부의 정책은 어떻게 평가할 수 있겠습니까?
"윤 대통령이 시장경제에 대한 상당한 신념이 있는 건 틀림없죠. 자유민주주의와 표리의 관계가 자유시장경제입니다. 민주주의의 경제적 버전이 자유시장경제란 말이죠.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이 있듯이 시장경제도 피를 먹고 자랄 수밖에 없는데, 다시 말하면 결코 쉽게 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취임 당시 윤 대통령이 자유시장경제를 이야기 할 때 100% 지지하는 심정이었습니다. 다만 지금 걱정스러운 것은 첫째 대통령 본인을 비롯해 정부의 신념이 과연 그걸 해나갈 수 있을 정도로 투철한가, 둘째 주변 여건 특히 정치적 여건이 이를 허용할 것인가, 셋째 빈부격차의 아랫 부분에 있는 사람들의 동의를 얼마나 얻을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언론들이 얼마나 서포트해 줄 건가라는 점입니다. 이 중 첫째는 대통령 자신의 문제입니다. 대통령 스스로 이런 문제의식에 더욱 투철해야 되죠. 전두환 전 대통령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당시 경제는 성장 물가 국제수지 등 소위 세 마리 토끼를 다 잡았습니다. 탁월하고 양심적이며 애국적인 경제 전문가를 옆에 두고 경제를 운용해가면서 본인 스스로 공부를 해갔습니다.심지어 김재익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에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라고 했죠. 그런 이야기할 수 있는 대통령은 얼마나 될까요? 대통령이 해야 하는 일은 크게 보면 국가안보, 경제 그다음에 사회 법치질서 유지 등 세가지쯤 될 텐데 경제가 잘못되면 다 소용없습니다. 당신이 하라는 대로 내가 할 테니까 좋은 아이디어만 내,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대통령은 대단한 사람입니다. 자신감 겸손함을 윤 대통령도 배워야 돼요.주변에서 얼마나 경제에 대해 얘기하는지 모르지만 그런 걸 들어야 됩니다. 경제는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닙니다.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이 왜 모든 걸 다 해결할 수 있는 처방을 내는 '양손잡이'는 없냐고 불평했다지만 경제 정책이란 한쪽이 좋으면 반드시 다른 쪽에 문제가 생기게 돼 있습니다. 두 가지를 비교해 잘 안 되는 부분을 최소화하면서 잘 되는 부분을 극대화하는 게 경제 정책의 핵심입니다. 제가 실무자로부터 장관까지 하면서 도달한 결론이 결국 시장을 믿고 시장을 통해 문제를 풀어가는 길밖에 없다는 겁니다. 문재인 정부가 경제를 얼마나 엉망진창을 만들어 놨습니까. 그걸 어느 정도 정상궤도에 올려놓고 그 위에서 자기 정책을 펴나가야 되는데 그러기에는 5년이라는 기간이 너무 짧습니다. 2년이 지난 윤석열 정부에 대한 비난 일색인데 잘못된 거죠. 평가를 하기에는 너무 짧은 기간입니다. 밤낮 전 정부탓만 하는 건 안되지만 현실적으로 문 정부의 문제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게다가 국민들의 의식 수준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고 봅니다. 어떤 정책을 합리적 비판하고 평가를 내리는 게 아니라 감성적 느낌 가지고 평가하기 시작하면 제대로 된 평가가 되지 않습니다.그래서 윤 대통령이 개별 정책에 있어 많이 부딪히게 될 거예요. 또 잘했다는 것보다는 잘못한다는 이야기를 듣기가 훨씬 더 쉬울 겁니다. 윤 정부가 잘하기를 기대한다면 잘할 수 있도록 표를 찍어줘야지 표는 다른 데다 줘놓고 정부에 잘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모순이죠.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과 국민의힘 득표율은 65대 45 정도인데 의석 수는 6 대 4 정도 이상으로 벌어졌죠. 소선거구의 문제인데 이를 고치려는 논의는 하나도 없습니다. 이런 정치 상황 하에서 과연 경제를만 가지고 논하는 게 의미가 있겠는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 윤 정부의 노동·연금·교육 개혁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가 쓴 '대통령 경제론'에서 밝힌 바와 같이 개혁은 따로따로 하는 게 아닙니다. 모든 개혁에는 공통적 지향점이 있어야 하는데, 합리적 개혁은 시장경제의 원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시장경제가 추구하는 게 무엇이겠습니까? 첫째는 경쟁 시스템을 만들자, 둘째는 수요자 선택의 원리가 작동하는 경제를 만들자, 그다음 세번째는 시장을 열자는 겁니다. 이 세가지만 하면 되는 겁니다. 가령 교육의 경우 공급자 예를 들면 학교 또는 선생들이 지배하는 시장이 아니고 수요자인 학생 학부모가 희망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반영되는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것이죠. 그 다음에 공급자 간 경쟁,학교 간 경쟁을 유발해 학교가 자기가 원하는 학생을 선택하고 학생이 자기가 원하는 학교에 지원할 수 있게끔 만들어주면 교육 문제의 대부분은 풀린다고 봅니다. 의료 개혁을 한번 보십시다. 정부가 의사 수가 모자라니까 늘려야 되겠다고 했는데 숫자로 보면 맞는 말이에요. 그런데 정부가 일률적으로 몇 천명을 일일이 대학에 배정한단 말이에요. 정부 자체의 판단만으로 이뤄지니 대학 간 경쟁이 원천적으로 배제됩니다. 미국 같은 데서 이렇게 안합니다. 학생 지원이 줄어들면 학과가 자연히 없어지는 과정을 통해 교육 개혁이 상시적으로 일어나게 돼있습니다. 노동시장의 구조도 완전히 이원화돼 노사 문제의 본질적인 이슈가 돼 있습니다. 노동시장을 단일 시장으로 바꿔 나가는 게 노동 개혁의 핵심이 돼야 합니다. 연금 개혁도 모수 개혁 못지 않게 구조 개혁까지 동시에 해야지 좀 더 많이 내고 적게 받는 것만 해가지고 개혁이 되는 건 아닙니다. 개혁과 관련된 공무원이 전부 모여 각 부처가 일관된 방향으로 동시에 이뤄야 개혁이 되지 노동 개혁 따로 연금 개혁 따로 교육 개혁 따로는 될 수가 없는 일입니다. 5년 단임 대통령 정부가 어려운 일을 하고 있다고 봅니다. 1~2년 내에 다 완결하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죠."
- 요즘 세계적으로 핫한 이슈가 반도체 분야입니다. 특히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글로벌 반도체 시장이 격변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미국 유럽 중국이 반도체 산업 육성에 천문학적 자금을 투입하고 일본도 TSMC 공장 유치 및 건설에 속도를 내고 있는데 우리 정부의 반도체 지원은 상대적으로 미약해 보입니다. 이대로 가다가 5년 10년 뒤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이 계속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 걱정도 듭니다. 국내 반도체 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해 나가려면 어떤게 필요할까요.
"정부가 지원을 통해 한 산업 분야를 육성하는 건 세계무역기구(WTO ) 정신에 반하는 거죠. 그런데 이제 미국이 앞장 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어느 순간 보니까 미국이 반도체 주도권을 다 뺏겨버렸단 말이에요. 이러다 큰일 나겠다 해서 지금 반도체 전쟁이 벌어졌는데 우리나라로서는 정부의 지원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국제 관계에서 스탠스를 어떻게 정하고 나가야 할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미국이 반도체 동맹을 만드는 데 있어 주로 일본하고 연합을 강화하고 한국은 소홀히 하는 추세로 가고 있지 않느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죠. 만약 동맹에서 배제된다면 대한민국 반도체는 끝이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앞으로 핵심 기술이 우리한테 안 오는 거예요. 반도체를 둘러싼 강국들의 속셈이 뭐고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 어떤 전략을 써야 되느냐에 집중해야 합니다.이는 경제 문제인 동시에 외교 안보와 직결돼 있는 문제예요. 민간 기업의 위기 인식이 제일 중요한데 사실 삼성이 그런 면에서 크게 기회를 놓쳤다고 보고 있지 않습니까 ? 총수를 한때 잡아넣은 데다 너무 거대해진 바람에 기업 문화 또한 변화에 적응을 못했던 겁니다. 이제 새 CEO가 임명됐으니 한번 기대해봐야 되겠죠. 마지막이 반도체 공장 가동에 필요한 전기 공급 등 정부의 지원이에요."
- 중국이 무서울 정도로 대한민국을 추격하고 있습니다. 전기차 등 몇몇 분야에서는 이미 우리를 추월한 상태입니다. 세계질서가 격변하고, 미중 간 갈등 격화의 상황 속에서 대한민국의 전략은 어때야 할까요?
"기업들은 하루하루가 피를 말리는 것 같다고 이야기해요. 고급 제품에서 기술 격차를 유지하는 것 밖에 살 길이 없습니다. 인건비 싸지 정부가 밀어주지 범용성 있는 것들은 중국하고 경쟁이 안 됩니다. 최상위 고급 제품, 고급 기술에서 중국하고 격차를 계속 유지해 나가는 길밖에 없어요.그러려면 창의적인 기업 활동이 훨씬 더 강화돼야 되죠. 창의는 완전히 자율적 분위기에서만 가능합니다. 미국이 기술 발전을 선도해 나가는 건 노동력이나 기술 인력이 자유롭게 왔다 갔다 할 수 있고, 아이디어를 가지면 마음대로 시험해 성공하면 자기 것이 되기 때문이죠. 이처럼 자연스러운 자원의 이동이 이뤄지면서 창의적인 게 개발될 수 있는 풍토가 미국이 세계를 선도하는 원천입니다. 우리도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하고, 전환의 핵심은 기업에 믿고 맡기는 겁니다."
- 대기업들은 최근 SK 그룹의 이혼 소송에서 보듯 '흑역사'라는 게 있잖습니까?
"대기업치고 흑역사를 갖지 않는 기업이 별로 없을 겁니다. 그런데 SK에서 보듯 지금은 다 세계적 기업이 됐습니다. 이제는개인 기업이 아닙니다. 최태원 회장이 자기 마음대로 할 수도 없어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대기업은 성장 과정에 문제가 많았더라도 이제는 사회적 공기입니다. 사회의 생산과 고용의 주체라는 말입니다. 대기업이 잘 돼야 고용이 늘고 실업 문제도 해결하고 빈부 격차도 해소될 수 있습니다. 일자리를 늘리는 것 외에 분배를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나요? 좋은 기업들이 많이 생겨가지고 많이 고용하면 그게 분배를 해결하는 최선의 길입니다. 정부가 저소득층에 돈을 살포해봐야 아무 소용없는 일입니다. 좋은 기업들을 많이 키우는 것밖에 없습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SK에 부정한 돈을 집어넣었다는 비난만 있지 그 돈으로 SK가 얼마나 컸고 엄청난 고용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선 무관심한 건 문제입니다."
- 반(反)기업 정서가 문제라는 말씀이군요.
"만약 대기업이 무너지면 고용돼 있는 직원들의 고통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기업을 보는 시각을 바꿔 나가야 합니다. 기업은 한 개인이 좌지우지할 수 없는 사회적 기구가 됐으며, 고용의 주체이고 경제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입니다. 기업의 역할에 주목하자. 이게 내 생각입니다. 우린 법인세율도 높고, 상속세율은 제일 높습니다. 공정거래법에는 대기업 규제 규정이 거미줄 같습니다. 이래놓고 대기업 보고 세계 경쟁을 하라고 하면 경쟁이 되겠습니까. 삼성 같은 기업은 지금보다 지금보다 두배 세배 큰 기업으로 바뀌고, SK LG는 삼성 정도 규모로 크고, 중견기업이 30대 기업 정도 규모로 올라오고, 중소기업은 대기업이 할 수 없는 것들을 하는 구조로 바뀌지 않으면 살아날 길이 없어요. 이를 해나가는 데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반기업 정서의 불식입니다. 우리 경제가 어려운 것 같은데도 유지돼 가는 이유는 잘 되는 부문이 있어서입니다. 그리고 잘 되는 부문은 다 대기업들이 하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는 다 하고 있는 것처럼 대기업 지원을 좀 해주자는 데 부자 감세다 해가지고 반대를 하면 한마디로 세계와 경쟁을 하지 말자는 이야기입니다. 미국이 반도체를 해버리고 일본이 도로 반도체를 가져가면 우리가 설 땅이 어디 있겠습니까. 지금 우리는 갈림길에 서 있어요."
- 정치 쪽으로 이야기를 돌려보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전 국민에게 25만원을 지급하자고 했다가 차등 지급으로 말을 바꿨는데요. 이런 포퓰리즘 정책은 특히 재정 건전성에 상당한 악영향을 줄 것으로 우려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시는지요.
"재정은 최후의 보루입니다. 예산을 다루는 공무원들은 '당신 돈이 아니니 좀 주면 안돼'라는 각 부처의 요구에 내 돈이 아니기 때문에 못 준다고 얘기합니다. 국민 돈이니 함부로 쓸 수 없다는 이런 정신이 있어야 해요. 문재인 정부에서 나랏빚이 600조원에서 1000조원 수준으로 두배 가까이 늘었죠.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에 비하면 별거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문제는 속도입니다. 재정은 한 번 확대되면 스스로 이걸 방어해 나가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자제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게 재정준칙입니다. 하지만 정치인들은 죽어도 안 만듭니다. 선심성 사업을 하려면 재정을 끌어다 해야 되는데 재정준칙에 막혀 못하면 국회의원 하는 재미가 없어지는 거죠. 정치인들은 온 국민을 다 잘 살게 하겠다고 하는 데 그게 가능합니까? 국민의 생활 전체를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게 사회주의 정부입니다. 이때 말하는 국민의 삶이라는 건 쌀밥 먹고 고기 먹게 해주겠다는 김일성식 삶이란 말이에요. 쌀밥 먹고 고기 국 먹는다고 내 삶이 충족됐다고 만족할 국민이 단 10%라도 있을까요? 없어요. 이는 정부가 책임지는 일이 아니에요. 사회에 적응을 못하는 소수의 사람들은 정부가 직접 보조를 통해 케어해줘야 하지만 능력이 있는 사람한테 정부가 돈을 주게 되면 또 언제 정부가 돈 안 주나 쳐다보게 됩니다. 25만원을 뿌려 수요를 촉발해 생산을 더 늘리게 하겠다는 얘기는 정상적 방식으로는 경기가 부양이 안 될 때 쓰는 정책이에요. 이재용 회장에게 25만원을 줘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두번째는 정부가 동의하지 않으면 법을 만들어 하겠다는 데 이는 헌법 위반입니다.예산 편성권은 행정부에 있어요. 국회는 정부가 편성한 예산을 깎는 것은 마음대로 할 수 있지만 늘리는 건 마음대로 못 하게 돼 있습니다. 원래 국회(의회)는 입법권이 아니라 재정권을 갖고 출발했어요. 역사적으로 국회의 일차적인 임무는 부당하게 군주가, 지금으로 말하면 정부가 마음대로 쓰는 걸 제한하는 겁니다. 그리고 나중에 입법의 권한이 더 갖다 붙은 겁니다. 예산을 늘리려면 정부의 동의를 건별로 얻어야 하는 게 헌법 정신이에요. 그런데 그걸 법을 만들어 가지고 지출하도록 만들면 헌법을 위반하는 거죠. 윤석열 정부도 분명하게 절대로 안 된다, 다른 방안을 가지고 서로 협의하자 하고 딱 잘라야 돼요."
- '대통령 경제론'은 지도자라면 한 번쯤 읽어봐야 할 책입니다. 책에서 대통령의 시대적 사명을 언급하셨는데 국가 지도자가 갖춰야 할 것은 무엇이고 지금 대한민국이 대통령이 해야 할 가장 시급한 일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흔히 미국의 레이건 전 대통령을 예로 들어요. 배우 출신의 레이건 미 대통령은 노조 운동하는 사람었죠. 우리나라로 치면 좌파란 얘기죠. 그런데 대통령이 돼서 딱 두가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는 옛 소련을 문 닫게 만들겠다, 둘째는 경제를 살리겠다. 이 두 가지는 당신이 하고, 나머지는 참모들에게 맡겼습니다. 레이건은 실제로 소련을 문 닫게 만들었고, 레이거노믹스로 경제를 부활시켰습니다. 지금 우리의 경우는 시스템이 엉망진창인 데가 너무 고칠 게 많아 대통령 하기가 미국보다 훨씬 더 어렵습니다. 대통령이라면 우리가 지금 갈림길에 있다라는 문제 의식이 우선 투철해야 합니다. 그리고 수만 가지를 모두 하겠다는 건 안하겠다는 얘기나 마찬가지입니다. 대통령이 해야 할 '크리티컬 패스'(Critical Path·최우선 과제)는기업을 활성화하고 정부의 역할을 재정립하는 겁니다. 그런 경제를 저는 '기업가형 경제, 기업가형 국가'라고 정의합니다. 이걸 100% 다 완성하진 못하더라도 이런이런 것은 꼭 하고 가겠다는 문제의식을 대통령이 가져줬으면 좋겠습니다."
- 마지막으로 국민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성과의 차이를 부정하면 시장경제가 아니죠. 자유시장경제라는 건 성과의 차이에 따라 격차가 벌어지기 마련입니다. 지니계수를 보면 우리나라는 그렇게 빈부 격차가 큰 나라가 아니에요. 미국 코넬 대학에서 한 유명한 경제학과 교수가 한 번은 강의하러 들어갔더니 학생들이 좌파 성향의 오바마 케어를 둘러싸고 논란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교수가 그런 정책은 하면 안된다 했더니 학생들이 교수 생각이 틀렸다고 들고 일어났어요. 교수가 누구 말이 맞나하고 테스트를 해보자면서 모든 학생한테 평균 성적대로 성적을 부여하겠다고 했습니다. 시험을 쳤더니 평균이 B로 나와 다 B를 줬습니다. 그랬더니 공부를 열심히 한 학생이 열심히 할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결국 두번째 시험에 쳤더니 평균 D가 나왔죠. 단적으로 사회주의의 문제를 지적한 겁니다. 다같이 잘 살자고 하면 결국 다같이 못 사는 경제가 되게 돼있습니다. 이런 경제원리를 국민들이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경제를 살리려면 그 중심에 기업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기업에 대한 이해가 있지 않으면 안됩니다. 민주 정치를 원한다면 그 표리관계에 있는 자유시장경제 원리를 이해하고 이를 국민들이 의식으로 뒷받침해주지 않으면 한국 경제가 더 이상 발전하기 어렵습니다. 대기업 못 되게 하는 것에만 박수 치면 그 피해는 결국 나에게 돌아온다는 걸 인식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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