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성폭력 당사자가 말했다, “피해자에게 상처만 주고 끝나지 않길” [플랫]
“잠깐 반짝하고 피해자에게 상처만 주고 끝나지 않길 바랍니다. 경찰·검찰에게서 2차 가해를 겪는 또 다른 피해자가 두 번 다시 나오지 않길 바라요. 잘못된 정보와 알 수 없는 사람이 잘못 공개돼 2차 피해가 절대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밀양 집단 성폭력 사건’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은 13일 한국성폭력상담소를 통해 밝힌 입장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피해자가 이번 사안에 대해 구체적인 심경과 입장을 밝힌 건 이번이 처음이다. 최근 일부 유튜버들의 일방적인 가해자 신상공개로 사건이 20년만에 재조명됐지만 피해자의 동의를 받지 않았다는 비판과 함께 잘못된 신상털기 논란 등은 되려 피해자를 힘들게 했다.
📌유튜버식 ‘정의 구현’… 피해자 동의 없이 ‘폭로’ 되고, ‘언론’은 기름 부었다
피해자는 우선 “혼자가 아니란 걸 느꼈고 잊지 않고 관심 가져주셔서 너무 감사하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유튜버의 피해자 동의, 보호 없는 이름 노출, 피해자를 비난하는 행동은 삼가셨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이날 피해자의 입장을 전하고 이를 논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20년간 피해자를 지원해 온 상담소를 비롯해 조력자들과 피해자 측이 이번 사안에서 하고 싶은 말은 기자회견 제목처럼 ‘피해자 삶에서, 피해자의 눈으로, 피해자와 함께 말하기’라고 했다.
이들은 2004년 밀양 집단 성폭력 사건으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도 피해자의 동의 없이 피해자 정보가 확산되는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사건 당시에도 피해자가 처음 상담소와 상담했던 날은 인터넷을 통해 사건이 전국에 일파만파 알려졌던 때였다”며 “과거 방송사와 경찰의 문제는 현재 유튜버의 문제로 바뀌며 반복되고 있고 2024년에도 피해자 지원기관인 성폭력상담소는 일일이 항의하며 삭제 요청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오늘 오전에도 유튜버가 새로운 영상을 올렸는데 본인을 언급하길 원하지 않는 피해자의 의사가 반드시 존중돼 영상이 삭제되길 요구드린다”며 “성폭력 피해자가 일상에서 평온할 권리는 국민의 알 권리에 우선하는 생존권”이라고 말했다.
20년 전 사건에서 제 역할을 다 하지 못한 수사기관과 사법부의 행태가 되풀이돼선 안 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피해자를 최초 상담했던 김옥수 전 울산생명의전화 가정·성폭력상담소장은 사건 당시 성인지 의식이 부족했던 경찰·검찰의 수사 과정, 진술녹화실 부재로 인한 2차 피해, 법원의 솜방망이 처분 등의 문제를 짚었다.
김 전 소장은 “이 사건이 주는 교훈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라며 “이 사건으로 인해 진술녹화실이 생기고 원스톱 지원센터, 성폭력 피해자 보호시설이 설립되는 등 여성폭력피해자들의 희생 위에 지원체계가 조금씩 잡혀나가는 것을 보면 여전히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들은 가해자에 대한 응징만큼 피해자의 일상 회복을 위한 지원이 더 활발히 논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20년간 피해자와 그 가족을 지원해 온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이사는 “20년이 흐른 뒤 피해자는 주거환경도, 사회적 네트워크도, 심리적·육체적 건강도 불안정한 상황”이라며 “피해자가 기본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물적 토대가 전혀 지원되지 않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사회적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이사는 “피해자가 ‘평생 고통받고 살아갈 사람’이라는 생각을 우리 사회가 내려놓고 보통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다양한 측면에서 지원해야 한다”며 “가해자가 느껴야 할 수치심을 피해자에게 씌우지 않도록 무엇을 실천할지 고민하는 계기가 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이날부터 피해자의 일상 회복을 위한 모금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김 소장은 “모금액은 전액 피해자의 생계비에 쓰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https://box.donus.org/box/ksvrc/donate-milyang
▼ 김송이 기자 songyi@khan.kr
플랫팀 기자 fla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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