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 법안’ 처리할 땐 어쩌지…‘보이콧’ 국민의힘의 고민
野 ‘민생 법안’ 단독 처리 시 ‘딜레마’ 봉착
상임위 ‘선택적’ 참여 시 전열 약화…불참 시 공 빼앗겨
(시사저널=구민주 기자)
야당이 11개 상임위원장에 이어 나머지 7개 위원장 자리도 독식이 예고된 가운데, 국민의힘은 사실상 '유일한' 수단인 국회 의사일정 전면 '보이콧'으로 팽팽히 대치하고 있다. 그러나 특검법 등 쟁점 법안이 아닌, 자신들이 동의한 '민생 법안'을 야당이 단독으로 진행시킬 경우 이도저도 못하는 딜레마 상황에 놓일 심산이 크다. 더불어민주당도 이를 여당의 '약점'으로 파악, 비쟁점 법안들을 추진하며 여당을 압박할 방침이다.
국민의힘은 민주당 등 야당이 지난 10일 본회의에서 11개 상임위원장을 단독으로 선출하자 연일 거대 야당의 '입법 독재'를 주장하며 강하게 규탄하고 있다. 야당이 일방적으로 소집하는 상임위 회의를 비롯한 국회 의사일정을 전면 거부하고 있으며, 매일 의원총회를 열어 대응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여당은 사실상 '두 개의 국회'를 선언, 상임위에 불참하는 대신 당내 '자체 특위' 가동에 들어가기도 했다. 지난 11일 분야별로 총 15개 특위를 만들고 그 안에서 당정 협의를 이끌어 다양한 민생 성과를 내자는 계획이다. 그러나 자체 특위인 만큼 입법권이 없다는 한계가 뚜렷하다. 특위에서 여러 법안들을 고안해 발의하더라도 결국엔 상임위를 거쳐야만 본격적으로 추진‧통과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곧장 상임위 첫 전체회의를 열며 '채상병 특검법' 등 쟁점 법안 처리에 고삐를 당겼다. 예고대로 전면 불참한 국민의힘은 야당이 단독으로 처리하는 모든 법안에 대해 대통령 재의요구권(거부권)을 건의하겠다는 입장이다.
與, 보이콧 유지 시 '민생 법안' 처리 성과 빼앗길 수도
문제는 여야 간 이견이 분명한 쟁점법안이 아닌, 민생법안 등 '비쟁점법안'이 각 상임위에서 야당 주도로 추진될 때의 여당의 대처다. 지난 21대 국회에서 여당이 주도했던 법안 또는 여야가 거의 합의를 이루고 여론도 긍정적인 법안에 있어선 여당이 지금의 보이콧을 유지하기 난처해질 거란 관측이 나온다. 실제 국회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2대 국회 개원 후 여당 의원들이 대표발의한 법안과 야당 의원들이 대표발의한 법안 일부에도 이미 서로 유사한 지점이 적잖은 상황이다. 야당이 상임위와 본회의에서 이 법안들을 추진할 때 여당이 끝까지 반대하거나 거부하긴 쉽지 않을 거란 지적이다.
대표적인 예로,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특별법(고준위법)을 들 수 있다. 고준위법은 사용 후 핵연료를 원전 외부에 저장하거나 영구적으로 처분할 수 있는 시설과 중간 저장 시설을 건설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여야가 기본적인 필요성에 합의를 이룬 상태였지만 21대 국회 마지막까지 끝내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해 폐기됐다. 국민의힘은 이번 국회 개원 후 곧장 3개의 고준위법을 다시 발의했다.
고준위법의 소관 상임위는 아직 위원장이 확정되지 않은 7개 상임위 중 하나인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다. 만약 국민의힘이 나머지 7개 상임위의 위원장직을 맡지 않고 계속해서 지금의 보이콧을 유지키로 한다면, 여당은 이 법안마저 주도적으로 추진할 수 없게 된다.
그 사이 민주당이 이 법안을 통과시키려 할 경우 국민의힘으로선 그야말로 딜레마에 빠질 전망이다. 법안의 통과를 위해 상임위에 '일시적'으로 출석한다면 거야의 독주에 맞서는 지금의 전열에 틈이 생기게 된다. 거꾸로 계속해서 상임위 참석을 거부한다면 자신들이 공들여 온 법안 통과의 성과와 공은 오롯이 민주당에게 빼앗기게 된다.
고준위법 외에도 21대 국회 때 여야 환경노동위원회 위원들 사이 사실상 합의를 이뤘던 이른바 '모성보호 3법'(양육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대폭 강화하는 법안 패키지), 산업계가 조속한 처리를 촉구하고 있는 'K칩스법'(반도체 등 국가전략기술에 투자액 세액공제 혜택을 주는 내용) 등도 비슷한 상황이다. 이러한 경우 '야당 단독 처리 법안에 대해선 대통령에 거부권을 요청할 것'이라는 여당의 기존 방침은 더욱 지키기 부담스러울 것으로 보인다. 여당으로선 이도저도 택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는 셈이다.
"국민의힘은 딜레마, 민주당은 일석이조"
이 때문에 여당 내에선 7개 상임위라도 못 이기는 척 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이어지는 것으로 파악된다. 18개 상임위를 전부 내어줄 경우 여당은 모든 야당발(發) 법안들에 대해 최소한의 방어도 못하고 속수무책 본회의 처리까지 지켜보게 될 거라는 우려에서다. 7개 상임위 위원장이라도 맡아 해당 상임위에서 처리 가능한 민생법안이라도 주도적으로 추진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당도 이러한 여당 내 분위기를 읽고, 이를 여당의 최대 '약점'으로 꼽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의힘이 반대하기 쉽지 않은 법안의 처리를 추진해 이들의 상임위 복귀를 압박한다는 전략이다. 이 경우 민주당으로선 정부와 여당을 공격하는 쟁점 법안들 뿐 아니라 민생 법안도 고루 챙긴다는 평가도 얻어낼 수 있다. 야당의 한 의원은 "국민의힘이 이리 가나 저리 가나 지금 민주당으로선 사실상 '꽃놀이패'만 주어진 게 현실"이라며 "상임위 활동이 본격화하면 복귀 여부나 시점에 대한 국민의힘 지도부의 고심은 깊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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