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우크라’ 부모 둔 아내 떠나보내며 ‘전쟁 종식’ 외친 한대수
가수 한대수(76)의 아내 옥사나 알페로바가 지난달 31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54. 장례식은 지난 10일 가족장으로 치러졌다. 현지에 사는 한대수의 지인 이길주 버겐커뮤니티칼리지 역사학과 교수가 장례식에 다녀온 뒤 글을 보내왔다.
“No More War! Peace!”(전쟁 종식! 평화!)
한대수 선생이 부인 옥사나를 떠나보내면서 외친 말이다. “하늘나라에 가서 편히 쉬라” “양호 걱정 말고 편히 가라” “나도 곧 가리다” 같은 말을 할 줄 알았다. 한대수는 천상 대신 땅 위의 사람들을 위한 메시지를 던졌다. 조문객들도 팔을 뻗어 함께 외쳤다. 이 순간에도 그는 히피였다.
한대수는 어디서든 노래하는 사람이었다. 땅에 묻을 부인의 재 앞에 무대를 꾸몄다. 부인이 태어난 몽골을 떠올리게 하는 테이블보로 덮은 작은 탁자 위에 가족 사진과 촛불을 올리고 노래를 불렀다. 그전에 10여분간 연습까지 했다. 부인을 위한 마지막 공연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할 절친 에드 맥과이어와 곡의 흐름을 상의했다.
딸 양호 “엄마는 나의 절친” 흐느껴
그가 부른 노래는 “오 내 사랑, 나는 당신의 미소를 갈구해왔소”라는 가사의 ‘오 마이 러브’(Oh My Love)였다. 내심 ‘행복의 나라로’를 듣게 될 줄 알았는데 예상이 빗나갔다. 나중에 가사를 생각해보니 그가 외치는 “행복의 나라”는 저 멀리 구름 뒤에 있어 이 생을 뒤로하고 가는 곳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지금 함께 만들어야 하는 나라이다. 초현실이 아니라 현재 진행이다. 그러니 이 땅을 떠나는 이들을 위해 부르는 장송곡이 될 수 없다.
20대에 쓴, 유치하다 생각해 잘 부르지 않았던 ‘오 마이 러브’를 아내에게 힘차게 외치던 한대수의 기타 연주는 그러나 흔들렸다. 족히 60년은 쳤을 기타가 노래 뒷부분에서 소리를 내지 못했다. 그는 흐르는 콧물을 닦으려니 코드 잡기가 어려웠다고 했다. 사실 눈물이 더 정확한 고백이다. 공연 실패(?)를 콧물 핑계로 덮으려 던진 조크는 오히려 슬펐다.
한대수는 오래 남는 노래를 만드는 사람이었다. 아내의 재가 담긴 유골함에 한 사람씩 메시지를 쓰자고 했다. 철제 유골함 검은색 배경에 글이 잘 보이도록 지워지지 않는 은색 마커를 준비했다. 백골은 언젠가 진토가 되겠지만 거기에 쓰인 이별의 메시지는 그보다 더 오래 남을 것 같다.
한대수를 한국 록의 대부라 한다. 그는 그 이상이다. 한대수는 한민족 디아스포라의 상징이고 지향점이다. 그에게 나라의 경계는 없다. 치열한 예술혼과 실존의 현장이 있을 뿐이다.
한대수에게 ‘당신은 미국 사람이냐, 아니면 한국 사람이냐’ 묻고 답을 기다리면 실망한다. 히말라야 산맥 어디엔가 있을 듯한, 계속 돌고 도는 산길과도 같은 한대수의 삶은 그의 노랫말대로 “끝, 끝없는 바람/ 저 험한 산 위로 나뭇잎 사이 불어 가는/ 아 자유의 바람”이 정확한 정리이다.
그는 물론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태평양을 마을 앞 개울 징검다리 건너듯 오갔다. 때로 강한 물살에 잠긴 돌들을 밟고 건너야 했다. 1975년에는 그의 노래가 ‘체제 전복’을 부추기니 앨범을 수거하라는 명령을 받고 한국을 떠나야 했다. 그가 밟고 오가던 돌다리는 폭우에 쓸려 내려갈 뻔했다. 한대수의 이런 번망했던 삶의 여정. 그 현재 위치가 뉴욕일 따름이다.
디아스포라의 관점에서 부인 옥사나는 더했다. 그는 러시아 아버지와 몽골과 우크라이나 혼혈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심각하게, 건강을 해칠 만큼 괴로워한 이유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 피와 폐허로 그려진 경계선을 멀리서 바라보며 마음을 졸이고 아파했다. 한대수의 말대로 전쟁이 옥사나를 사망케 했는지도 모른다.
그 둘에게는 딸 양호가 있다. 양호는 한국·러시아·몽골·우크라이나인의 피를 가졌다. 디아스포라의 열매다. 엄마에 대한 기억이 많았다. 하지만 한마디로 정리했다. “She was my best friend.”(엄마는 나의 절친이었어요.) 양호와 양호 친구들에게 늘 장난을 걸어오는 철부지 엄마. 철없는 엄마가 최고의 엄마라고 한 양호는 땅을 치며 통곡했다. 요즘은 사극에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엄마를 떠나 보내는 순간이지만 평생의 절친과의 헤어짐이기도 했기에 상실감이 컸던 것 같다. 평소 큰 웃음 소리와 함께 씩씩함을 발산하는 한대수의 몸짓은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한 양호의 흐느낌 앞에서 무력했다.
부인을 보내며 한대수가 입었던 검은 양복 옷깃에 조그만 모형 비행기가 꽂혀 있었다. 의아해 자꾸 눈이 갔다. 그 비행기를 보면서 어느 인터뷰에서 한대수가 자신의 어릴 적 꿈이 파일럿이라 했던 기억이 났다. 그의 고백을 정리한다.
“나는 물질의 욕망은 없는데/ 비행기는 하나 샀으면 좋겠어// 아버지를 본 적이 없으니까/ 태어나서 상상만 해서 그래// 하늘에 비행기 갈 때마다/ 야, 아버지가 오고 있구나 환상에 빠졌지// 자기 부모를 모른다는 것 같이/ 슬픈 이야기는 없어// 부모가 있어야/ 나의 아이덴티티가 생기잖아// 나는 하늘에 비행기 갈 때마다/ 야, 아버지가 오고 있구나 환상에 빠졌지”
곰곰이 생각하면 한대수는 파일럿의 꿈을 이루었다. 문화와 사상으로 승화한 그의 노래라는 항공기를 조종하며 이 세상의 그 많은 경계를 초월해 날아다닌다. 비록 조종석 칸의 옥사나 자리는 비어 있지만, 이제 ‘영원한 디아스포라’라 적힌 그의 비행기는 또 어디로 날아가는가. 예측불허여서 더 궁금하고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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