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이상문학상
“이 상 역시 제 마음자리 가장 깊은 곳에 소중하게 간직했다가 소설 쓰는 일에 바치는 수고에 지쳤을 때, 그 일이 허망하고 허망해서 망막해졌을 때 꺼내 볼 겁니다. 그때 그것은 한가닥 빛으로든, 모진 채찍으로든, 저에게 큰 용기가 되어줄 겁니다.”
고 박완서 작가가 1981년 <엄마의 말뚝 2>로 제5회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하고 전한 연설문의 끝부분이다. 박 작가는 첫해부터 내리 4년간 우수상을 받았다. 대상을 받고 연설문에서 그는 작가에게 문학상이 어떤 의미인지 솔직하게 전했다.
이상문학상은 작가 이상(1910~1937)의 문학적 업적을 기려 ‘문학사상’이 1977년 제정했다. 제1회 이상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김승옥의 <서울의 달빛 0장>은 그의 재능을 아깝게 여긴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그를 호텔방에 잡아놓고 반강제로 쓰게 했다는 소설이다. 이 전 장관이 문학사상 주간일 때였다. 이후 이청준·오정희·최인호·이문열·한강 등이 수상자에 이름을 올렸다. 해마다 펴내는 수상작품집도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독자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2020년 1월, 작가들의 불공정 계약 관행 고발로 논란에 휩싸였다. 애초 문제가 된 건 저작권이었다. 여러 작가가 수상작 저작권을 3년간 문학사상에 양도하는 계약 조항을 지적하며 수상을 거부하고, 2019년 대상 수상자인 윤이형 작가가 절필을 선언하면서 논란은 더욱 커졌다. 진통 끝에 문학사상이 이 조항을 수정했으나 독자들의 마음은 떠난 뒤였다.
권위 추락에 경영까지 악화된 문학사상이 결국 이상문학상 운영에서 손을 뗀다. 47년 만에 바뀌는 운영주체는 다산북스다. 다산북스는 문학사상과 10일 ‘이상문학상 출판사업 양도 양수 협약’을 맺었다고 11일 발표했다. 내년 48회 이상문학상부터 운영을 맡게 된다.
이상문학상은 다시 독자 곁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박완서는 팔순을 맞아 “아직도 글을 쓸 수 있는 기력이 있어서 행복하다”고 했다. 그에게 그랬듯 다른 작가들에게도 이상문학상이 빛이든 채찍이든 되려면, 출판사들이 권위만을 믿고 작가의 권리를 침해하는 폐습을 끊어내야 한다. 내홍을 겪은 이상문학상이 왕년의 명성과 권위를 되찾게 될까.
이명희 논설위원 mins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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