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관세청의 신문고

신문고가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라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조선 3대 임금인 태종은 신문고를 설치하고는 "온갖 정치의 득실과 민생 문제를 아뢰고자 하는 자는 즉시 와서 등문고(신문고)를 치라. 원통함과 억울함이 명확하게 밝혀질 것"이라며 그 역할을 기대했다지만, 절차가 복잡하고 함부로 신문고를 쳤다간 되레 큰 벌을 받을 수도 있어 초기의 취지와 달리 일반 백성들이 감히 신문고를 치는 일은 매우 어려웠다고 한다.

그럼에도 백성들이 이를 무릅쓰고 신문고를 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단 하나, 자신의 억울한 사정을 들어주고 해결해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에는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누구나 예외 없이 지켜야 할 의무 중 하나로 '납세의 의무'가 명시되어 있다. 그리고 모든 의무에는 권리가 따르듯이 국민은 납세자로서 의무와 함께 보호받아야 할 권리도 가지며, 국가는 납세자가 의무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불합리하거나 억울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구제받을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 두고 있다.

물론 국민의 권리가 침해당하지 않도록 사전에 제도와 정책을 정교하게 만드는 것이 우선이겠지만, 그럼에도 모든 경우를 헤아리고 대비하는 건 어려운 일이기에 국민 한 명 한 명의 사정에 귀 기울이고 이를 해결해줄 '신문고'의 역할은 지금도 필요해 보인다.

관세청은 납세자 보호를 위해 다양한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납세자보호위원회'다. 납세자보호위원회는 관세행정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국민과 기업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2020년 7월에 설치된 조직으로, 학계·경제계·법조계 등 민간 전문가와 함께 발전적인 납세자 권리 보호 방안을 모색하고 다양한 민원도 해결하고 있다.

그러나 해외 직구가 나날이 늘어나며 개인 무역의 시대가 열린 지금, 관세행정의 주요 고객이 수출입 기업에서 일반 국민으로까지 확대됨에 따라 납세자 권리 보호의 중요성도 더더욱 커지고 있다. 관세청은 이에 발맞춰 납세자의 권리를 체계적으로 보호하고 제도의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독립된 전담 조직인 '납세자보호팀'을 올해 초 신설했다. 필자는 납세자보호팀 직원들에게 과거 절차와 규정이 엄격해 실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 조선시대 신문고 이야기를 들려주며, 이를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 국민과 기업에 먼저 다가가 눈과 귀를 활짝 열어줄 것을 당부했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 미국 16대 대통령인 에이브러햄 링컨의 유명한 연설의 일부로,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민주주의'의 의미를 잘 표현한 명언으로 전해진다. 신설된 납세자보호팀이 관세행정 집행 과정에서 납세자 의견을 청취할 기회의 창을 확대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납세자의 권리를 보호한다면, 성실한 납세자가 부당함을 겪지 않는 '납세자의, 납세자에 의한, 납세자를 위한' 행정이 실현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고광효 관세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