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정수석, 나쁜 것 뒤 더 나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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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정수석비서관은 대통령 권력을 가시화하는 자리다.
민정수석의 공식 역할은 △고위공직자 인사 검증 △국정 여론 수렴 △고위공직자 복무 동향 점검 △대통령 친인척 관리 △사정기관과의 소통이다.
대통령 권력이 민정수석의 말과 지시를 통해 사정기관을 움직였다가 권력을 오남용하게 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러니 이번 민정수석의 부활은 민심 청취보다는 그렇지 않아도 권위주의적 통치자라 평가받는 윤 대통령의 성향을 가속화할 제도적 수단만 더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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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재에서]
민정수석비서관은 대통령 권력을 가시화하는 자리다. 민정수석의 공식 역할은 △고위공직자 인사 검증 △국정 여론 수렴 △고위공직자 복무 동향 점검 △대통령 친인척 관리 △사정기관과의 소통이다. 그런데 앞의 네 가지를 하기 위해 국가정보원, 검찰, 경찰, 국세청, 감사원 등 ‘권력의 칼’이라 불리는 사정기관들을 사실상 지휘하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대통령 권력이 민정수석의 말과 지시를 통해 사정기관을 움직였다가 권력을 오남용하게 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정권의 검경 수사 개입이나 비선 지휘, 국정원을 통한 민간인 사찰 등이 주로 이 경로를 거쳐 일어났다.
윤석열 대통령도 같은 문제의식 아래 민정수석 폐지를 공약했다. 하지만 4·10 총선에서 집권여당이 대패한 지 한 달 만인 2024년 5월7일 갑자기 민정수석 자리를 다시 만들고 김주현 전 법무부 차관을 임명했다. 공약 폐지의 명분은 “민심 청취”였다. 하지만 김주현이라는 인물을 임명한 사실 자체로 이 명분은 퇴색한다. 김주현 수석은 박근혜 정부 때 법무부 검찰국장으로 일하면서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정권책임론을 피하기 위해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쓴 ‘외압’ 메시지를 대검찰청과 일선 수사팀에 전달한 당사자다.
그러니 이번 민정수석의 부활은 민심 청취보다는 그렇지 않아도 권위주의적 통치자라 평가받는 윤 대통령의 성향을 가속화할 제도적 수단만 더해진 것이다. 우리는 이미 해병대 채수근 상병 사망 사건의 수사기록을 국방부가 회수하는 ‘외압’ 과정에 이시원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이 개입한 정황을 확인했다. 공직기강비서관은 민정수석의 지휘를 받는 자리다.
김 수석이 보편적인 시민의 민심을 들을 수 있는 사람도 아니다. 김 수석은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검찰의 핵심 요직을 두루 거치면서 법조계 ‘엘리트’들 사이에 갇혀 살아왔다. 그가 이렇게 살아왔다는 건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 법률사무소와 세계적 대기업인 삼성전자에서 자녀의 ‘특혜성 인턴’을 제공받은 의혹이 있다는 이번호 <한겨레21>의 단독보도로도 확인할 수 있다. 주어진 특권을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을 김 수석에게 경제 위기와 민생 파탄의 어려움을 온몸으로 겪고 있는 노동자와 자영업자 등과 같은 보편적 시민의 목소리를 들을 통로와 의지가 있을 것 같진 않다.
2019년 ‘조국 사태’ 때 우리는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의 자녀 입시 특혜 파문을 보면서 상위 10%끼리 ‘스펙 품앗이’로 특권을 대물림하는 현실을 확인했다. 상위 10%가 지닌 학벌에 기반한 인적 관계, 문화적 취향이나 석·박사 학위 등과 같은 문화자본, 금융시장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자녀들에게 고스란히 대물림되고 있었다. 그런데 조국의 ‘위선’을 비판하고 공정을 외치며 등장한 윤석열 정부의 고위공직자들은 상위 10% 법조 ‘엘리트’로 가득할 뿐만 아니라 대통령 권력의 권위주의적 통치에 대한 문제의식마저 없다.
우리는 왜 나쁜 것을 나쁘다고 비판한 뒤 이 나쁜 것의 대안으로 더 나은 것을 갖지 못하고 오히려 더 나쁜 것과 마주할 수밖에 없을까. 상위 10%끼리 권력을 주고받는 정치는 왜 진보가 아니라 퇴행을 대물림하는 걸까. 이번호 <한겨레21>이 던지는 질문은 이것이다.
이재훈 편집장 nang@hani.co.kr
*‘만리재에서’는 편집장이 쓰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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