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병제 재도입’ 고민하던 독일, 일단 보류···“더 이상 효과 없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징병제 부활을 검토하던 독일이 ‘일단 보류’로 방침을 틀었다. 독일 국방부와 야당은 징병제 재도입을 논의 테이블에 올렸으나 집권 여당을 비롯한 연립정부 구성원들이 반대한 결과로 알려졌다.
독일 국방부는 12일(현지시간) 군복무 연령인 18세 이상 청년에게 복무 의사, 체력 등을 묻는 설문지를 보낸 뒤 긍정 응답자 중 신병을 선발한다는 내용의 병역제도 개편안을 발표했다고 AP·AFP통신 등이 보도했다.
개편안에 따르면 신병은 설문 조사에서 군복무 의사가 있다고 답한 남성 중 신체검사를 거쳐 선발된다. 설문지를 받은 남성은 의무적으로 답변해야 하고 거부하면 범칙금을 부과받을 수 있다. 여성은 응답 의무가 없으며 본인이 원할 경우에 한해 신체검사가 가능하다. 설문을 받게 되는 청년은 매년 대략 40만 명으로 추산되며, 복무 기간은 기본 6개월, 연장 시 최대 23개월이다.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국방장관은 새 병역제도를 “선택적 군복무제”라고 표현했다. 본인 지원 의사가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사실상 모병제로, 군복무 의무를 강제 부여하는 징병제와는 결이 다르다. 젊은 층의 입대를 늘리기 위해 독일 정부는 학자금 대출 상환금 감액, 무료 어학 강좌, 운전 면허증 발급 수수료 면제 등 특별 혜택 부여를 논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은 이같은 방안으로 지난해 연말 기준 18만1000명인 연방군 병력을 2031년까지 20만3000명으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독일은 2011년 징병제를 폐지했으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뒤 정치권 안팎에서 징병제 부활 논의가 이어져 왔다. 피스토리우스 장관은 지난 3월 미국 방문 중 “(징병제 폐지는) 실수였다”며 “독일에 징집이 필요하다고 확신한다”고 말했고, 지난 4월 제1야당인 기독민주연합(CDU)은 당 회의를 통해 징병제 재도입 안건을 의결했다.
특히 피스토리우스 장관은 스웨덴식 징병제를 검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7년 징병제를 재도입한 스웨덴은 해마다 만 18세가 되는 남녀 약 10만 명을 대상으로 체력·지능 등을 심사한 뒤 수천 명을 군인으로 선발한다. 전체 인원이 아닌 일부를 선발하는 게 원칙이며 국가가 선발 권한을 가진다는 점에서 ‘선택적 징병제’라고도 불린다.
올라프 숄츠 총리가 이끄는 연립정부에 속한 정당들(사회민주당·자유민주당·녹색당)은 내부에서는 이같은 의무복무 재도입에 반대 의견이 많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숄츠 총리는 지난달 14일 스웨덴 스톡홀름을 방문해 ‘독일이 스웨덴식 징병제를 도입할 의향이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징병제는 더 이상 효과가 없을 것”이라며 “아무도 그런 계획을 추진하지 않는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우리가 충분한 수의 남성과 여성이 군대에서 복무하도록 설득하고 군인을 그들의 직업으로 여기게끔 만드는 것이 관건”이라고 했다.
에바 회겔 사회민주당 국회의원 겸 군 의회 조정관은 “새로운 부대원들을 모집하고 수용하고 훈련시키고 (그들에게) 음식을 주기 위한 자금을 마련하는 건 엄청난 도전이 될 것”이라며 병영 현대화 등에 540억달러(약 74조1700억원)가 소요될 것으로 추산했다고 워싱턴포스트(WP)는 전했다. 일반 징병제 도입을 위해선 헌법 개정도 필요하다.
그럼에도 징병제 재도입 논의는 끊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피스토리우스 장관은 의무병역 논의가 여전히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내년 선거를 고려할 때 오래된 정치적 논쟁을 지금 하는 건 적절치 않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그는 이번 개편안을 두고 “첫걸음”이라고도 표현했다. 독일 공영방송 도이치벨레가 인용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독일 시민 절반가량이 징병제 재도입에 찬성하고 있다. WP는 “(독일에서 징병제 재도입 논의는) 내년 가을에 총선을 앞두고 이슈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최근 몇 년 사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으로 안보환경이 급변하자 유럽 각국은 징병제 재도입 등으로 병력을 늘리는 추세다. 덴마크는 앞으로 복무기간을 4개월에서 11개월로 늘리고 여성도 징집하기로 지난 3월 정했고, 라트비아는 지난해 징병제를 부활시켰다. 리시 수낵 영국 총리는 18세 국민이 12개월 정규군에 복무하거나 월 1회 주말 봉사활동 방식으로 복무하는 의무복무제 구상을 오는 7월4일 총선 공약으로 내걸었다.
조문희 기자 moon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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