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를 위해 만든 조각···해수면 상승 시대의 예술 ‘피시 앤 칩스’
해수면 상승으로 인간도 거주지 ‘수직 상승’
“인간 위한 조각이 미래엔 물고기 위한 조각”
해양생물체와 교감 영상 유엔총회에서 상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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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은행 본뜬 화분에 ‘환각 식물’ 심어
보이지 않게 사람 지배하는 금융권력 비틀기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으로 사람들은 점점 더 높은 지대로 수직이동하게 될 겁니다. 그런 상황에 발맞춰 물고기를 위한 조형물을 만들었습니다. 현재는 인간을 위한 조각이지만 미래에는 물고기를 위해 쓰일 수 있는 작품이죠. 물고기가 미적으로 선호하는 바가 무엇일지 상상했어요.”
지구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의 시대, 지구 생태계의 변화를 앞두고 예술은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덴마크의 3인조 작가그룹 수퍼플렉스(SUPERPLEX)는 ‘물고기를 위한 조각’을 만들었다. 얼핏 보기엔 반듯하게 깎은 돌덩이를 쌓아 올린 것 같지만 이는 ‘물고기들의 미적 취향’에 맞춰 설계됐다. 자연스럽게 뚫린 제각각의 구멍들, 돌과 돌 사이의 빈 공간들은 물고기가 은신처 삼기에 적합하다.
수퍼플렉스의 개인전 ‘피시 앤 칩스’(Fish & Chips)가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기후변화, 소비지상주의, 이민자 혐오 등 사회적 문제들에 민감하게 대응하는 작품활동을 해온 수퍼플렉스는 지금 열리고 있는 제60회 베니스비엔날레 본전시에 초대되기도 했다. 베니스비엔날레에선 이민자에게 배타적인 덴마크 정부를 비판하는 ‘Foreigners, Please Don’t Leave Us Alone With The Danes!‘를 선보인다.
이번 전시에선 현대사회를 지배하는 금융권력을 꼬집고, 기후변화 시대에 해양생물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볼 수 있다. K3 전시장엔 물고기를 위한 조각인 ‘As Close As We Get’(2024)과 해양 생명체 사이포노포어를 다룬 인터랙티브 영상 ‘Vertical Migration’(2021)을 선보인다.
수퍼플렉스는 2018년 남태평양의 화산섬 인근 해양을 과학자들과 함께 탐사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이때 다양한 물고기들과, 밤이면 수면 가까이 떠오르는 해양생물체를 관찰하면서 작품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
‘As Close As We Get’은 용암이 굳어 형성되는 현무암, 산호초가 변화해 만들어진 대리석 등을 재료로 삼았다. 수퍼플렉스는 지난 4일 국제갤러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조각에 다양한 종류와 크기의 틈과 요철들이 있다. 다양한 크기를 가진 물고기들의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형태”라며 “산호초였던 것이 수십억 년의 시간을 지나서 대리석이 되고, 언젠가는 인간의 시간을 뛰어넘는 순환적 과정을 거쳐 다시 산호초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라고 말했다.
‘Verical Migration’은 해파리의 친척인 사이포노포어가 수면 가까이 상승하는 모습을 대형 LED 화면에 구현했다. 외계생물체와 같기도 한 신비로운 생물체는 관람자가 가까이 다가가면 멀어지고, 관람자가 침묵을 지키며 움직이지 않으면 조금씩 다가오는 방식으로 상호작용하며, 나중에는 관람자가 생물체의 시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이 영상은 2021년 제76회 유엔총회에서 선보이기도 했다. 수퍼플렉스는 “생물다양성의 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 존재들을 유엔 본부에 초대하는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었다”며 “우리 시스템이 타자를 수용하고 함께 할 수 있는 법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K1 전시관에서는 신용카드의 마이크로칩의 디자인을 모티브로 한 회화 ‘Chips’와 ‘투자은행 화분’ 연작 중 한 작품을 볼 수 있다. 얼핏 봐서는 그냥 흰색 그림으로 보이는 ‘Chips’는 일곱 겹의 흰색 레이어를 통해 신용카드의 마이크로칩의 패턴을 미세하게 그려냈다. 보이지 않지만 우리를 지배하는 경제시스템을 은유한다. ‘투자은행 화분’ 연작은 골드만삭스, 도이치은행 등 글로벌 투자은행 본사 건물을 모델로 화분을 만들고, 그 안에 환각작용을 일으키는 식물을 심었다. 이번에 선보이는 작품은 뉴욕 시티그룹 건물을 본뜬 모형의 화분 안에 제주도에서 자생하는 독성 식물 협죽도를 심었다.
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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