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디펜던트 vs 포워드 룩킹[최정희의 이게머니]

최정희 2024. 6. 13.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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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연준은 '데이터 디펜던트'
ECB는 '포워드 룩킹'으로 정책 기조 전환
데이터 디펜던트서 '포워드 룩킹' 전환하려면
물가 전망 뒷받침할 '물가 제반 여건'이 중요
韓도 아직은 '데이터 디펜던트'…물가 전망 불안

[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와 유럽중앙은행(ECB)은 이달 통화정책회의에서 올해와 내년 물가 전망치를 상향 조정했다. 그러나 통화정책 방향은 확연히 달랐다. 연준은 금리 점도표를 통해 금리 인하 횟수를 연 1회로 상향 수정하며 ‘매파(긴축 선호)’ 기조를 강화했다. 반면 ECB는 정책금리를 약 5년 만에 인하했다.

미국은 ‘데이터 디펜던트(Data dependant)’를 기반으로 통화정책을 하는 반면 ECB는 이러한 기조에서 벗어나 ‘포워드 룩킹(Forward looking)’으로 통화정책 기조를 바꾸고 있다. 한국은행의 통화정책은 아직까진 미국과 같은 ‘데이터 디펜던트’에 가깝다. 주요국 통화정책 기조의 차이는 어디에서 발생하는 것일까.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 의장 (사진=AFP)


◇ 물가 전망, 얼마나 믿나…‘물가 제반 여건 봐야’


연준은 우리나라 시각으로 13일 새벽 공개된 6월 FOMC회의에서 올해와 내년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전망치를 2.6%, 2.3%로 3월보다 0.2%포인트씩 높였다. 식료품 및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PCE 물가도 2.8%, 2.3%로 각각 0.2%포인트, 0.1%포인트씩 상향 조정했다. 이러한 전망을 기반으로 금리 점도표는 올 연말 5.1%로 석 달 전(4.6%)보다 상향 조정됐다. 연내 세 차례 인하가 한 차례 인하로 변경됐다.

반면 ECB도 이달 회의에서 물가전망치를 높였다. 올해, 내년 유로존 물가 전망치는 각각 2.3%, 2.0%에서 2.5%, 2.2%로 0.2%포인트씩 상향 조정됐다. 근원물가 전망치도 올해 2.8%, 내년 2.2%로 종전보다 0.2%포인트, 0.1%포인트 높였다.

ECB는 물가 전망치를 높이면서도 금리를 25bp(1bp=0.01%포인트) 인하한 4.25%로 낮출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해 ‘물가 전망’의 견고성, 신뢰성을 언급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는 “내년 4분기께 물가상승률이 목표치(2%)에 도달할 것으로 예측하는데 작년 9월, 12월, 올해 3월, 6월 네 차례 전망에서 내년 4분기 물가상승률이 1.9% 또는 2.0%로 별 차이가 없었다”고 언급했다.

금리를 내린 ECB나 금리 인하 기대를 낮춘 연준이나 물가가 목표치 도달에 오래 걸릴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통화정책 기조에선 차이가 벌어지고 있다. 관건은 물가 전망을 뒷받침할 물가 제반 여건이 어떤가에 달려 있다.

경제 성장 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연준은 올해와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각각 2.1%, 2.0%로 유지했지만 고용지표가 금리 인하에 확신을 줄 만큼 둔화하지 않았다. 5월 시간당 평균임금은 전월비 0.4%, 전년동월비 4.1% 상승해 시장 예상보다 각각 0.1%포인트, 0.2%포인트 높았다. 애틀란타 연방준비은행의 ‘GDP(국내총생산)나우’에 따르면 2분기 성장률 전망은 3.1%로 5월 노동부 고용지표 발표 전(2.6%)보다 크게 높아졌다.

소비자 물가에 영향을 주는 생산자 물가 상승률은 4월 전년동월비 2.2%를 보이면서 석 달 연속 상승폭이 확대되고 있다. 5월 전망치도 2.5%로 예측된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최근 인플레이션 수치는 올해 초보다 양호했다”면서도 “금리 인하를 확신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반면 유로존의 경우 올해 성장률 전망치가 소폭 상향 조정되는 추세이지만 고작 0.7~0.8%에 그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생산자 물가 상승률도 4월 5.7% 하락, 작년 5월 이후 1년째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캐나다 중앙은행도 소비자 물가상승률이 2.7%, 근원물가가 2.7%로 우리나라보다 높은 수준이지만 경제성장률이 1%대초반에 불과하고 생산자 물가상승률도 작년 3월부터 추세적으로 하락하다 4월 1.4%로 올랐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총재 (사진=AFP)


◇ 한은이 ‘포워드 룩킹’하려면


우리나라 통화정책 기조는 유럽, 캐나다보다는 미국에 더 가까운 상황이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5월 23일 회의에서 올해 성장률을 2.5%로 0.4%포인트나 상향 조정했다. 하반기 물가 전망치를 2.3%에서 2.4%로 높였지만 연간 전망치는 2.6%를 유지했다.

내수 회복세가 약해 물가상승세를 자극하지 않을 것이란 게 한은의 전망이다. 다만 최근 공개된 5월 금통위 의사록을 보면 다수의 금통위원들은 물가에 자신이 없어진 모습이다. 한 금통위원은 “실물경제 성장세가 당초 예상을 상회할 것으로 전망하면서 물가 상방 압력이 상존한다”며 “물가상승률이 둔화하면서 그간 정체됐던 실질임금이 성장세로 전환돼 가계 실질 구매력이 증가하고 이는 향후 소비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또 다른 금통위원은 “환율 상승은 가계의 실질소득을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현재와 같이 환율에 대한 경계감이 높아진 상황에서 금리 인하에 따른 내수진작 효과가 제약될 수 있다”고 말했다. 생산자물가도 4월 1.8% 올라 작년 8월 이후 상승세다. 5개월째 상승폭이 확대되고 있다.

한은은 최근 기준금리 인하와 관련 ‘천천히 서두르자‘’는 역설적 표현을 제시하고 있다. 이 메시지는 ‘연내 금리를 인하할 의지가 있다’ 정도를 보여줄 뿐이다. 한은이 ‘데이터 디펜던트’에서 벗어나 ‘포워드 룩킹’하기 위해선 ECB, 캐나다처럼 물가 제반 여건들이 물가상승세를 둔화시킬 것이라는 확신이 필요해 보인다.

조용구 신영증권 연구위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유럽은 경기둔화 우려에 ‘보험성 금리 인하’ 성격인 반면 미국과 우리나라는 (플러스) 실질 기준금리를 조정하는 수준의 인하가 예상된다”며 “(역사적으로 볼 때)보험성 금리 인하는 통상 두 세 차례 이뤄져왔고 후자는 1~2회 수준의 매우 느리고 보수적인 금리 인하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최정희 (jhid0201@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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