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우주·방산 글로벌 ‘엑셀러레이터’, “한국 잠재력 크나 혁신성 높여야”
스타버스트 세계 7개국에 지사, 일본 아닌 한국에 둬
일본보다 한국의 시장 폭발성 크게 보나 추격형 많아
2021년 지사 설립 후 직접 투자 없어···도전정신 중요
‘K-방산’ 성과, UAM 기반 탄탄, 우주 통신에서 기회
“모험하는 이스라엘 스타트업 문화 벤치마킹 필요”
스타버스트는 세계적으로 항공·우주·방산 분야의 스타트업을 키우는 ‘엑셀러레이터’로 꼽힌다. 현재 미국, 프랑스, 독일, 스페인, 이스라엘, 싱가포르, 한국에 지사를 두고 있다. 2012년 설립 후 약 150개의 항공·우주·방산 스타트업에 투자해 망한 기업이 거의 없을 정도로 선구안이 좋다는 평을 듣는다. 요즘 ‘K-방산’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우리나라의 방산 수출이 크게 늘어나고 있으나 여전히 항공·우주 분야에서 일본이 한국을 적잖게 앞서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 스타버스트가 아시아에서 일본보다 한국에 지사를 둔 이유가 궁금해 김상돈 스타버스트 한국법인 대표를 만났다.
김 대표는 13일 컨텍이 주최하고 서울경제신문, 연세대 항공우주전략연구원, 한국국방외교협회가 후원한 ‘국제우주컨퍼런스(ISS) 2024’(11~13일)가 열린 더케이호텔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일본이 아닌 한국에 지사를 둔 것은 그만큼 한국 시장의 잠재력을 크게 보고 있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스타트업들이 좀 더 도전적으로 나가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그는 이어 “일본보다 한국이 더 성장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있으나 아직 항공·우주·방산 분야의 스타트업 중 직접 투자할 정도로 혁신성이 아주 뛰어난 곳이 눈에 많이 띄지 않는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스타버스트가 투자한 스타트업 중에는 유니콘 기업도 눈에 띈다. 우선 우주 공간에 발사된 위성을 최적의 궤도에 옮겨 주는 ‘모멘투스’의 경우 한참 전에 유니콘(기업 가치 10억 달러 이상) 반열에 올랐다. 폐위성과 우주 쓰레기 수거 기술을 개발 중인 ‘라스트마일딜리버리’도 주목된다. ‘제로아비아’의 경우 연료전지 기반 항공 추진 기관 개발·제조사로서 명성을 떨치고 있다. 김 대표는 “스타버스트는 세계적으로 인력이 60명선에 불과하나 대표가 에어버스 엔지니어 출신으로 항공·우주·방산에만 집중해왔다”며 “멘토가 한국의 5명을 포함 총 400명 규모로 탄탄하게 갖춰져 있다”고 설명했다.
우선 그는 한국의 항공·우주·방산 시장의 성장성을 높게 봤다. 현대차그룹이 열심히 하고 있는 도심항공교통(UAM)의 경우 국제적으로 아직은 시장이 열리지 않고 있으나 폭발적인 성장 가능성이 있다고 예측했다. 스타버스트가 아직 한국 스타트업에 대한 직접 투자 사례는 없으나 한 UAM 스타트업을 엑셀러레이팅 1호로 선정해 해외 시장 진출 지원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 우리나라는 UAM의 기술 기반인 모터와 배터리 기술과 함께 항공기 디자인 등 요소기술까지 자생력이 강하다는 평을 듣는다. 방산의 경우 반세기 가까이 집중 투자해와 최근 전투기·자주포·탱크 수출 증가 등 ‘ K-방산’ 시대를 열고 있다. 우주의 경우 발사체에서는 미국의 스페이스X 가 장악하고 있어 틈새시장을 노려야 할 판이지만 통신과 인공위성 분야에서 ‘뉴 스페이스’를 열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 대표는 “한국은 시장 혁신과 파괴성 측면에서 잠재력이 일본보다 더 크다”며 “약 25년 전 환란 당시 ‘다이내믹 코리아’를 화두로 외쳤는데 그야말로 한국이 국제적으로 빠르게 부상하고 성장성이 크다”고 했다.
하지만 아직 한국에서 스타버스트의 직접 투자 사례가 나오지 않는 이유에 대해 스타트업의 혁신성 부족을 꼽았다. 그는 “스타트업이 혁신적인 것을 하려고 하면 정부나 벤처·스타트업 투자자가 ‘선도 사례를 우선 봅시다’ 라고 하는 경향이 있다”며 “그럼에도 스타트업들이 이스라엘 스타트업을 벤치마킹해 도전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스라엘의 경우 저비용·고효율 창업을 잘한다는 평을 듣는다. 스타트업이 혁신 아이디어를 갖고 도전할 때 적기에 투자해줘 창의적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기업들이 뿌리를 모국에 두고 미국으로 사업을 확대하는 점도 특징이라고 했다. 한 마디로 모험을 통해 기술력도 좋지만 마케팅도 잘 한다는 것이다. “스타트업 투자나 정부 정책 모두 실패할지 모르지만 혁신적이고 도전적으로 나가야 합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들고 오면 실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지요.” 남이 하는 것을 추종하는 빠른 추격자(패스트 팔로어) 마인드에서 벗어나 선도자(퍼스트 무버)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스타버스트의 지사가 있는 다른 나라 사례도 들었다. 독일과 프랑스의 경우 항공·우주 산업이 발달해 있는데 방산 분야만큼은 프랑스가 많이 앞선 편이다. 스페인은 국가적으로 우주·항공 분야에서 선도국들을 열심히 쫓아가고 있다고 했다. 싱가포르의 경우 우주·방산 분야는 좀 약하지만 민간 친환경 항공(Green aviation) 분야에 주력하며 유지·보수 서비스(MRO, maintenance·repair·operating) 시장에 신경을 많이 쓴다고 전했다. 김 대표는 “우리나라가 항공·우주·방산에 쓸 수 있는 고강도·고내구성·초경량 재료를 개발하고 레이저를 비롯한 첨단 통신 장비 등의 분야에 투자해야 한다”며 “UAM 분야 등에서는 시장의 절반이나 차지하는 MRO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한편 서울대 항공우주공학과를 졸업한 김 대표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에서 비행 제어 엔지니어로 근무하다가 한국 기업에 인수된 프랑스 스마트폰용 통신 칩 개발사의 최고경영자(CEO)로서 파리에서 근무하다가 좌절한 경험이 있다. 이후 롤스로이스 한국법인 상무로서 가스터빈 영업을 하다가 2021년 1월 스타버스트 한국지사 초대 대표를 맡았다.
고광본 논설위원·선임기자 kbgo@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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