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SF영화 현실로 구현하는 디스플레이 연구자 “초격차 위한 원천 기술 개발”
늘려도 해상도 유지되는 ‘신축성 디스플레이’ 연구
국제정보디스플레이학회(SID) 석학회원 선정
2002년 개봉한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2054년 미국 워싱턴의 미래를 생생하게 그려 큰 인기를 얻었다. 주인공은 홍채 인식이나 동작 인식, 사물인터넷(IoT), 투명 디스플레이 등 다양한 미래 기술을 익숙하게 사용했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지금, 영화에 등장했던 기술은 대부분 현실로 구현됐다. 홍채 인식이나 사물인터넷은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지난 1월 세계 최대 IT 전시회인 CES 2024에서 세계 최초 투명 TV를 공개했다. 인공지능(AI)을 탑재해 시야각을 조절하는 지능형 투명 디스플레이까지 등장했다.
홍용택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도 영화의 상상력을 현실로 만들고 있다. 바로 고무처럼 늘리거나 구겨도 화질에 변화가 없는 신축성 디스플레이다. 스트레처블(stretchable)이라고도 불리는 이 디스플레이는 종이처럼 말거나 접을 수 있는 플렉서블(flexible) 디스플레이의 다음 단계다.
지난 11일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만난 홍용택 교수는 “인쇄 공정을 이용해 신축성을 가진 기판 위에 변형해도 안정적으로 동작하는 발광소자, 센서, 구동 칩을 집적해 스트레처블 디스플레이를 만들고 있다”며 “전자 피부처럼 몸에 붙이는 신축성 웨어러블(wearable) 전자기기도 구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홍 교수 연구진은 배터리 없이 체온만으로 무선 웨어러블 전자기기를 작동시키는 고성능 신축 열전(熱電)소자도 개발했다. 온도가 변하면 전류가 흐르는 장치다. 기존 신축 열전소자는 내부 저항이 높아 만드는 전력이 적어 실용성이 떨어졌다. 연구진은 발전 성능 문제를 해결해 배터리가 필요 없는 웨어러블 기기의 상용화 가능성을 높였다.
홍 교수는 지금까지 연구 성과를 인정받아 지난달 국제정보디스플레이학회(SID) 석학회원으로 선정됐다. 석학회원은 학회 전체 회원 중 0.1% 이내로 매년 전 세계에서 5명쯤 선정된다. 홍 교수는 한국인으로는 22번째로 이름을 올렸다. 그는 2019년 이달의 과학기술자상, 2020년 머크 어워드, 2021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가연구개발 우수성과 100선을 수상했다.
홍 교수는 지난 4월부터 한국과학기술원(KAIST), 고려대 연구진과 함께 삼성디스플레이가 2022년 공개한 센서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를 신축성 디스플레이로 만드는 연구를 시작했다. 홍 교수는 “한국연구재단의 미래디스플레이전략연구실 사업에 선정돼 앞으로 5년 동안 약 50억원의 연구비를 받는다”며 “계획대로 개발이 진행되면 영화에서 보던 튀어나오는 디스플레이가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센서 OLED는 지문과 건강 정보를 감지하는 센서를 디스플레이 패널에 내장한 형태다. 기존 스마트폰 디스플레이는 지문을 인식할 수 있는 영역이 정해져 있다. 손가락을 디스플레이 중에 지문 인식 모듈이 붙어있는 곳에 정확하게 올려야 작동하기 때문이다. 홍 교수는 “센서 OLED는 패널 전체에서 지문 인식이 가능하고 사용자가 원하는 대로 인식 영역을 설정할 수도 있다”며 “이를 신축성 디스플레이로 구현하면 튀어나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앞서 홍 교수 연구진은 단단한 물성을 가진 미세 전자 소자를 부드러운 물성을 가진 전극에 연결하는 접착 기술을 개발했다. 원래 부드러운 물성의 접착제는 물리적 연결의 안정성이 낮지만, 자기장을 이용해 미세 소자와 전극 사이를 물리적·전기적으로 연결했다.
홍 교수는 “우리가 개발한 접착 기술로 그물 형태의 신축성 디스플레이를 두 개 겹쳐 사용하면 디스플레이를 늘려도 해상도를 유지할 수 있다”며 “디스플레이가 늘어나면서 생기는 빈 공간에 뒤쪽의 디스플레이의 소자가 드러나는 방식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일반적으로 기업이 하는 연구보다 더 미래에 쓸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에요. 실패할 수도 있지만 계획대로 개발이 진행되면 영화에서 보던 기술을 현실로 만들고, 경쟁국과의 디스플레이 기술 격차를 벌리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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