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딸아, 회사에 얼씬도 말라”…부 대물림 끊고 515억 기부, 정문술 회장 별세

최기성 매경닷컴 기자(gistar@mk.co.kr) 2024. 6. 13. 15:48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부(富)를 대물림하지 않겠다'며 자녀들이 회사 근처에 얼씬도 못하게 하고 515억원을 기부한 정문술(鄭文述) 전 미래산업 회장이 향년 86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한국과학기술원은 정 전 회장이 12일 오후 9시30분께 숙환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13일 밝혔다.

2001년 KAIST에 300억원을 기부한 데 이어 2013년 다시 215억을 보태 바이오·뇌공학과, 문술미래전략대학원을 설립하는 데 기여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정문술 전 KAIST 이사장의 2014년 기부 약정식 모습 [사진제공=연합뉴스]
‘부(富)를 대물림하지 않겠다’며 자녀들이 회사 근처에 얼씬도 못하게 하고 515억원을 기부한 정문술(鄭文述) 전 미래산업 회장이 향년 86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한국과학기술원은 정 전 회장이 12일 오후 9시30분께 숙환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13일 밝혔다.

고인은 1938년 전북 임실군 강진면에서 태어났다. 군 복무 중 5·16을 맞았고, 혁명군 인사·총무 담당 실무 멤버로 일하다 1962년 중앙정보부에 특채됐다.

직장을 다니면서 대학(원광대 종교철학과)을 다녔다. 1980년 5월 중정의 기조실 기획조정과장으로 있다가 실세로 바뀐 보안사에 의해 해직됐다.

사업을 준비하다 퇴직금을 사기당하기도 했다. 어렵게 설립한 금형업체도 대기업의 견제로 1년도 채 안 돼 문을 닫았다.

고인은 저서 ‘왜 벌써 절망합니까’(1998)에서 당시 사채에 쫓겨 가족 동반자살까지 꾀했다고 밝혔다.

고인은 1983년 벤처 반도체장비 제조업체인 미래산업을 창업하며 성공했다. 일본의 퇴역 엔지니어를 영입, 반도체 검사장비를 국산화했다. 국산 반도체 수출 호조에 힘입어 고속 성장을 거듭했다.

1999년 11월에는 국내 최초로 미래산업을 나스닥에 상장했다. 2001년에는 ‘착한 기업을 만들어 달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2001년 KAIST에 300억원을 기부한 데 이어 2013년 다시 215억을 보태 바이오·뇌공학과, 문술미래전략대학원을 설립하는 데 기여했다.

당시 개인의 고액 기부는 국내 최초였다. 카이스트 정문술 빌딩과 부인의 이름을 붙인 양분순 빌딩도 지었다.

고인은 2014년 1월10일 기부금 약정식에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설계하는 데 기여하고 싶은 마음과 ‘부를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개인적 약속 때문에 이번 기부를 결심했다”고 강조했다.

국민은행 이사회의장, KAIST 이사장을 지냈다. 2014년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의 ‘아시아·태평양 자선가 48인’에도 선정됐다. 과학기술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과학기술훈장 창조장도 받았다.

유족으로는 배우자 양분순 씨와 2남3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 건국대학교병원 장례식장 202호, 발인은 15일 오전 9시.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