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건축 거장의 어두운 그림자

한겨레 2024. 6. 13.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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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건축을 배우고 싶다며 일본에 밀항했다.

1959년에 국회의사당을 설계, 그 도면이 당선되고 한국에 돌아왔다.

1961년 박정희의 쿠데타로 국회의사당 건설은 취소된다(지금 의사당 건물은 김수근 작품이 아니다). 1960년대에 세운상가와 여의도 도시 계획을 설계하지만, 실제 건축은 그의 구상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1967년에 설계한 국립부여박물관 건물은 한국적이지 않다며 입길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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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역사다] 김수근 (1931~1986)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건축을 배우고 싶다며 일본에 밀항했다. 1959년에 국회의사당을 설계, 그 도면이 당선되고 한국에 돌아왔다. 화려하게 귀국한 그에게 일감이 쏟아졌다. 젊은 김수근은 노출 콘크리트를 즐겨 썼다. 인간의 힘을 뽐내는 듯한, 주변 경관을 압도하는 패기 넘치는 건물을 지었다. 워커힐의 힐탑바와 남산의 자유센터가 이 시절 작품이다.

일이 술술 풀리지는 않았다. 1961년 박정희의 쿠데타로 국회의사당 건설은 취소된다(지금 의사당 건물은 김수근 작품이 아니다). 1960년대에 세운상가와 여의도 도시 계획을 설계하지만, 실제 건축은 그의 구상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건축가 황두진은 김수근의 구상이 “당시 우리나라의 현실을 너무 앞서갔기 때문”이라고 썼다. 1967년에 설계한 국립부여박물관 건물은 한국적이지 않다며 입길에 올랐다.

나이가 들며 김수근은 변했다. 국립박물관장을 지낸 최순우를 멘토로 모시고 한국의 옛 건축물을 답사하며 안목을 키웠다. “노출 콘크리트의 웅장함을 대신할 가능성을 김수근은 평범한 벽돌에서 찾아냈다.”(황두진) 포근하고 아기자기한 공간을 만들었다. 나이 든 김수근의 건물은 주위의 자연과 유적과 푸근한 조화를 이루었다. 1970년대에 지은 ‘공간’ 사옥, 1980년대의 불광동 성당과 경동교회 등은 김수근의 작품 세계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보여준다.

같은 시대 예술가를 후원했다.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주경기장과 체조경기장을 설계했다. 다음 세대 건축가를 가르치는 사업을 벌이려 했다. 수십년 뒤 할 일까지 정해놓고 바쁘게 살던 김수근은 1986년 6월14일에 세상을 떠났다.

나는 여기서 글을 맺고 싶었다. 하지만 2005년에 밝혀진 사실을 써야 한다. 남영동 대공분실, 사람을 잡아다 고문하고 짓지 않은 간첩죄를 ‘자백’하게 만들던 곳, 1987년에 박종철이 고문당하다 목숨을 잃은 곳, 이곳을 김수근이 설계했다. 5층은 “고문에 최적화된 공간”(장지영)이라는 평가다. 김수근은 이 건물이 무슨 일에 쓰일지 알았을 것이다.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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