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 능력? 흘러가는 세월 앞에 무슨 소용... “그 월급, 어찌 맞춰”, 결국 저연봉·저숙련 ‘육체노동’으로
“남성, 50대 기점 분석·사회→반복·신체 직무”
젊은 생산가능인구 급감.. 중장년 인력 활용도↓
‘연공서열형’ 대신.. 성과 따른 임금체계 도입
기계적 정년연장 부작용도.. 퇴직후 재고용 등
종전 고등 전문지식이 필요한 분야에서 일한 중장년층의 경우, 퇴직했을 때 종전 직무보다는 더 낮고 덜 기술이 필요한 ‘육체적 단순노동’ 일자리에 재취업해 종사하는 경우가 많다는 국책연구기관의 분석 결과가 나왔습니다. 연령대가 높을수록, 반복적이고 신체를 많이 활용하는 일자리에 종사하는 비중이 높았습니다.
특히나 우리나라에서 이런 경향이 유독 강했습니다. 더 나은 분석·사회 등 직무 관련 수행 능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해당 일자리에 채용되지 못한다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여기에서 노동시장에서 중장년층이 보유한 인적 자원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제기됐습니다.
이 같은 현상은 중장년 취업자가 자신의 생애 대부분을 투입한 주직장을 떠나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 과정에서 겪는 이른바 ‘직무 단절’에 기인할 가능성이 높다는 해석이 나왔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중장년 인력의 고용 비용을 높이는 ‘연공서열형’ 직무 체계 대신에 내용·성과에 따른 임금 체계를 도입하면서 직무 연속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는 주문이 나왔습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직무 분석을 통해 살펴본 중장년 노동시장의 현황과 개선 방안’ 보고서를 13일 발간했습니다.
보고서를 작성한 김지연 KDI 연구위원은 직무를 분석·사회·서비스·반복·신체 등 5가지로 분류하고 1998~2021년 한국노동패널 자료를 이용해 연령대별 변화를 회귀 분석했습니다. 20~75살 남성 취업자를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연령이 높아질 수록 분석·사회·서비스 직무 성향은 낮아지고 반복적인 신체 직무 성향은 높아지는 경향이 나타났습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18~2023년) 25~54살 경제활동참가율은 79.3%에서 80.0%로 0.7%포인트(p) 상승했습니다.
반면 55살 이상 인구의 경제활동참가율은 같은 기간 50.9%에서 53.8%로 2.9%p 오르며 젊은 연령층보다 훨씬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습니다. 저출산·고령화 영향으로 풀이됩니다.
누적된 저출산의 영향으로 젊은 생산가능인구는 매년 큰 폭으로 감소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렇듯 인구구조 변화로 인한 노동공급 감소가 점차 가시화되면서, 노동시장에서 중장년 인력 비중은 날로 확대되는 추세입니다.
양적으로 급증한 중장년 인력이 과연 노동시장에서 효율적으로 활용되고 있는지 알아본 김 연구위원은 “취업자들은 청년기 자료 분석이나 조직 관리 등 전문적 업무를 주로 수행하다가 중년기 이후 육체적 단순노동에 종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라며 “이 같은 현상은 중장년 취업자가 생애 주 직장을 떠나 새 일자리를 찾는 과정에서 겪는 ‘직무 단절’에 기인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습니다.
실제 KDI가 1998~2021년 한국노동패널 자료를 활용해 직업별 직무 성향과 취업자 연령 간 연관성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나이가 들수록 ‘분석·사회·서비스’ 직무에 종사하는 비중은 줄고 ‘반복·신체’ 업무에 근무하는 경향은 뚜렷해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남성 중 연구·경영지원 등 ‘분석’ 직무에 종사하는 성향은 30대 취업자에서 가장 높았습니다. 40대부터 줄어드는 등 나이가 들수록 감소세를 보이다가 50대 이후 큰 감소 폭을 보였습니다. 반면 용접원이나 자동차 정비원 등 ‘반복’ 직무에 근무하는 경향은 40대부터 급격히 늘어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여성의 경우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대체로 비슷한 경향을 보였습니다. 출산에 따른 경력 단절로 인해 30대부터 분석 직무에 일하는 경향이 줄었습니다.
다만 여성은 출산·육아에 따른 경력 단절로 분석 직무 성향이 낮아지는 시점이 30~40대로 남성보다 빨랐습니다.
KDI는 이처럼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단순 직무에 일하는 경향이 뚜렷해지는 원인을 ‘직무 단절’에서 찾았습니다.
직무 변화는 주로 실직·퇴직한 뒤 새로운 일자리를 찾게 되면서 발생하는데, 실직·조기퇴직한 중장년층이 새로운 일자리를 찾을 경우엔 대체로 저숙련·저임금 일자리에 재취업하게 된다는 뜻으로도 해석됩니다.
이와 관련해 김 연구위원은 “나이가 들수록 업무 능력이 저하되기 때문이 아니냐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라면서도 “개인 생산성과 관련된 변수를 통제해 도출한 결과임을 고려할 때 단지 생산성 차이에 기인한다고 보기는 어렵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이는 분석, 사회 직무 수행에 필요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직무를 수행하는 일자리에 채용되지 못하는 중장년층 근로자가 존재한다는 뜻”이라면서 “현재 노동시장에서 중장년층이 보유하고 있는 인적 자원이 충분히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덧붙였습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남성 근로자의 분석 직무성향은 50대 이후에도 크게 바뀌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중년 이후에도 분석적 업무를 수행하는 일자리에 종사하는 근로자 비중이 거의 감소하지 않고 비슷하게 유지된다는 말입니다.
상대적으로 우리나라에선 중년 이후 분석적 직업군에서 이탈하는 근로자들이 미국에 비해 상당히 많다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근속연수 변화를 함께 고려하면 여성의 경우도 비슷했습니다. 우리나라 여성 근로자의 근속연수는 30대 중반 이후 정체되고 분석 직무성향도 30대부터 하락하는 반면, 미국은 30대 이후에도 근속연수와 분석 직무성향이 함께 증가하는 것으로 파악했습니다.
이 같은 문제가 나타나는 원인은 ‘연공서열제’라는 것이 KDI 진단입니다.
김 연구위원은 “중장년층 직무 단절과 조기 퇴직은 이들에 대한 낮은 노동수요라는 공통분모에 기인한다”라며 “이를 낮추는 대표적인 요소가 중장년층 고용비용을 과도하게 높이는 과도한 연공서열제”라고 말했습니다.
더불어 조기퇴직을 유도하고 재취업 때 일자리 질도 낮출 수 있다면서 “임금의 연공성은 분석, 사회 직무성향이 높은 직군에서 더 높게 나타나는데, 이는 ‘연공서열형’ 임금체계가 중장년 취업자의 직무 단절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때문에 “재직기간보다는 직무의 내용과 성과를 중시하는 직무급제를 확대해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다만 노동시장 구조 고민 없이 기계적으로 정년연장을 추진할 경우, 오히려 중장년층 고용 수요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김 연구위원은 “법정 정년 이전에 정년퇴직이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정년 연장의 실효성은 낮은 것으로 판단된다”라며 “퇴직 후 재고용 제도를 활용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JIBS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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