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사건 피해자 “시민 공분 감사…‘반짝’ 관심 뒤 상처로 끝나지 않길”

최윤아 기자 2024. 6. 13.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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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성폭력상담소, 피해자와 여동생 입장문 공개
“본인 의지와 무관하게 ‘밀양 피해자’로 재소환
동의 없는 이름 노출·무분별한 추측 삼가달라”
13일 서울 마포구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밀양 성폭력 사건과 관련해 ‘피해자의 삶에서, 피해자의 눈으로, 피해자와 함께 말하기’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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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잘못된 정보와 알 수 없는 사람이 잘못 공개돼 2차 피해가 절대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사건에 대한 관심이) 잠깐 타올랐다 금방 꺼지지 않았으면, 피해자에게 상처만 주고 끝나지 않길 바랍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13일 오전 서울 마포구에서 ‘2004년에서 2024년으로: 밀양 성폭력 사건, 피해자의 삶에서, 피해자의 눈으로, 피해자와 함께 말하기’ 기자간담회를 열고 2004년 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 피해자와 그 여동생 입장을 대신 전했다. 유튜브 채널 ‘나락 보관소’가 피해자 동의 없이 당시 사건 가해자들이라며 신상 정보를 폭로하는 혼란이 이어지고, 사회적 공분 또한 사그라들지 않자 피해자 가족과 이들을 지원해온 단체가 고심 끝에 마련한 자리다.

이들은 우선 영상을 삭제해달라는 피해자 뜻을 존중하지 않는 유튜버들의 행보는, 20년 전 피해자 고통은 안중에도 없이 개인 정보를 유포한 경찰과 언론의 문제가 재현된 것이라고 짚었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은 “유튜버 ‘판슥’이 피해자 음성을 변조하지 않고 판결문도 동의 없이 게재한 데 대해 (피해자 쪽이) 삭제를 지속적으로 요청했으나 15시간 이후에 (내용을) 변경했다”며 “(바뀐 영상에서) 피해자 이름을 묵음 처리하면서도 입 모양을 살려 불렀고, 그 모습을 피해자는 두려움 속에서 지켜봐야 했다”고 밝혔다.

피해자는 입장문에서 “가끔 죽고 싶을 때도 있고 우울증이 심하게 와서 미친 사람처럼 울 때도 있고 멍하니 누워만 있을 때도 자주 있다”며 힘겨운 일상을 살고 있음을 내비쳤다. 20년 전 자신이 겪은 “경찰·검찰의 2차 가해 피해자가 두번 다시는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고도 했다.

2004년 밀양 지역 고교생 44명(10명 기소, 20명 소년부 송치, 13명 ‘공소권 없음’으로 불기소, 1명 다른 사건으로 입건)은 피해자를 1년간 성폭행하고 이를 알리겠다고 협박했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의 여동생도 폭행을 당했다. 사건 수사를 맡은 경찰과 검찰은 피해자를 모욕했으며, 법원은 피해자의 고통보단 가해자 사정을 더 고려했고, 가해자 가족들은 피해자 쪽에 합의를 강권했다.

사건 당시부터 지금까지 피해자를 지원해온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이사는 “(피해자는) 살기 위해 고향을 떠나 어렵게 전학한 고등학교에 다녔지만, 가해자 어머니가 교실까지 찾아와 소년원에 있는 아들을 위해 탄원서를 써달라고 한 이후 학교를 그만뒀다”며 “현재 피해자는 주거환경도 사회적 네트워크도 심리적·육체적 건강도 불안정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더해 “가해자 신상 공개가 시작되면서 본인 의지와 무관하게 ‘밀양 사건 피해자’로 여기저기 재소환돼 소비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더 나아가 피해자가 ‘평생 고통을 받고 살아갈 사람’에서 벗어나 ‘보통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러나 현재 정부 지원은 성폭력 피해자들의 회복을 뒷받침하는 데 한계가 커 이에 대한 연구와 논의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피해자 자매는 “무분별한 추측으로 상처받게 하지 말아달라”며 대중의 비난을 두려워하면서도, 응원과 지지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이들은 “저희를 잊지 않고 많은 시민분들이 같이 화내주고 걱정해주셔서 너무 감사하다”며 “‘힘내’라는 댓글과 응원에 조금은 힘이 나는 것 같다. 혼자가 아니란 걸 느꼈다”고 했다. 이 이사는 “앞으로 피해자 곁에서 함께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져 사회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고 존중받으면서 보통의 평범한 일상을 펼쳐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이날부터 경제적 사정이 좋지 않은 피해자가 단단히 설 수 있도록 ‘밀양 성폭력 피해자 일상 회복을 위한 모금’을 시작했다. 후원금은 전액 피해자 생계비로 전달할 예정이다. 후원은 한국성폭력상담소 누리집(https://box.donus.org/box/ksvrc/donate-milyang)에서 참여할 수 있다.

최윤아 기자 ah@hani.co.kr

‘2004년 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 피해생존자 입장문

20년전 이후로 영화나 티비방송에 나왔을 때 늘 있었던 것처럼 잠깐 그러다 말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많은 분들이 관심 가져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댓글을 보니 저희를 잊지 않고 이렇게 많은 시민 분들이 제일 같이 화내주고 분노하고 걱정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유튜버 나락보관소, 판슥에게 2023년 11월 피해자가 연락했던 것, 보배드림 글까지 잘못 인식하는 분들이 많아서 한번 짚고 가면 좋겠습니다.

● 나락보관소 영상은 피해 당사자가 알기 전 내려주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피해자 남동생이 보낸 메일로 인해 오해가 있었지만 피해자와의 사전 협의가 없었던 것이 맞습니다.

● 판슥에 관해서는 보배드림에 올라온 글이 피해자 동생이 쓴 글이 맞습니다

● 앞으로도 유튜버의 피해자 동의, 보호 없는 이름 노출, 피해자를 비난하는 행동은 삼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무분별한 추측으로 피해자를 상처 받게 하지 말아주시기를 바랍니다

가끔 죽고 싶을 때도 있고 우울증이 심하게 와서 미친 사람처럼 울 때도 있고 멍하니 누워만 있을 때도 자주 있지만... 이겨내 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얼굴도 안 봤지만 힘내라는 댓글과 응원에 조금은 힘이 나는 거 같습니다. 혼자가 아니란 걸 느꼈어요. 너무 감사합니다. 잊지 않고 관심 가져주셔서 너무 너무 감사합니다.

이 사건이 잠깐 타올랐다가 금방 꺼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잠깐 반짝 하고 피해자에게 상처만 주고 끝나지 않길 바랍니다.

경찰, 검찰에게 2차 가해 겪는 또 다른 피해자가 두 번 다시는 나오지 않기를 바래요. 잘못된 정보와 알 수 없는 사람이 잘못 공개되어 2차 피해가 절대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2024.6.13

밀양 성폭력사건 피해자 자매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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