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 김경문, 주연 문현빈, 조연 하주석' 맥을 짚는 명의의 승부수, 야구볼 맛이 난다
[스포츠조선 정현석 기자]잘 짜여진 각본에 의한 한편의 드라마였다.
한화 이글스가 멋진 작전야구로 넘어갈 뻔 한 경기를 지키고 승리를 지켰다.
한화는 12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의 주중 두번째 경기에서 9회초 문현빈의 깜짝 스퀴즈번트로 결승점을 짜내며 4대3으로 승리했다. 이날 승리로 한화는 위닝시리즈를 확보했다.
분위기 상 한화가 밀리는 상황에서의 깜짝 반전.
동점 상황일 때 현장의 야구인들은 직감을 한다. 이길 수 있는 경기인지, 힘든 경기인지를….
판단 근거는 남은 불펜진, 경기 흐름 등 여러가지가 있다.
이날은 한화에게 유리한 상황이 아니었다.
3-0으로 앞서가다 경기 중후반 2개의 실책으로 3-3 동점을 허용했다. 남은 불펜진도 두산이 우위였다.
운명의 9회초. 선두 이재원이 우전안타로 물꼬를 텄다.
애타게 기다렸던 선두타자 출루. 벤치의 시간이 시작됐다.
김경문 감독은 박수칠 새 없이 결승 주자가 될 1루 대주자를 상의했다. 선택은 주루센스가 좋은 하주석이었다.
이도윤이 두산 마무리 홍건희로 부터 볼 2개를 골라내는 순간 작전이 바뀌었다. 당연히 스트라이크를 잡으러 들어올 거라 판단했다. 기습적인 번트 앤 슬러시로 전환. 하지만 긴장한 홍건희의 직구가 높게 형성되며 파울이 됐다.
다시 보내기 번트로 전환해 1사 2루. 장진혁의 내야안타로 1사 1,3루 황금 찬스가 찾아왔다.
벤치는 이원석 타석에 왼손 대타 문현빈을 냈다.
두산 벤치가 움직였다. 홍건희를 내리고 좌완 이병헌을 올렸다.
한화는 문현빈 카드를 밀어붙였다. 팀 내 가장 많은 7개의 병살타를 기록중인 선수. 병살타면 찬스가 무산되는 상황이라 한화 팬들은 불안했다.
강동우 타격코치가 타석에 서기 전 문현빈과 이야기를 나눴다. 초구 몸쪽 볼, 2구째는 강하게 휘둘렀지만 파울이 됐다. 3구째를 앞두고 코치 사인을 확인한 문현빈이 순간 긴장했다. 스퀴즈 번트 사인이 났기 때문이다.
그라운드 위 배우들의 능청스런 연기가 상대를 혼란에 빠뜨렸다.
문현빈은 빠르게 번트자세로 전환해 배터리를 놀라게 했다. 3루주자 하주석은 능청스레 딴청을 피우다 투구폼을 일으키기 무섭게 홈으로 돌진해 문현빈의 배트가 나뒹굴고 있는 홈플레이트를 향해 온 몸을 던졌다.
작전 성공을 확인한 강동우 코치는 안전바를 내리치며 기쁨을 표했다. 덕아웃 안쪽, 김경문 감독도 박수를 치며 성공을 자축했다.
"사인을 다시 확인했는데 긴장이 많이 됐어요. 연습을 많이 했기 때문에 나를 믿고 해보자고 했는데 좋은 결과가 나왔던 것 같아요. 긴장을 하고 있다가 점수를 내고, 내가 해냈을 때 안도감이 들더라고요."
문현빈이 중계 인터뷰에서 밝힌 당시 상황이다.
팀 내 주포 노시환(5병살타) 보다 더 많은 7개의 병살타를 기록중이던 타자. 자기 앞에 바뀐 좌완 투수 앞에서 부담감이 없을 리 없었다. 외야희생플라이를 노리던 문현빈의 첫 스윙이 파울이 되자 지체 없이 스퀴즈작전으로 전환, 병살 부담을 덜어주고 1점을 짜내는 승부수를 던졌다.
볼카운트와 상황 등을 두루 고려해 순간순간 다채로운 작전 야구가 펼쳐지고 있는 셈. 대표적 강공론자인 김경문 감독의 유연해진 '변화'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김경문 감독은 경기 후 스퀴즈번트 승부수에 대해 "지든 이기든 9회에 끝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찬스에서 작전을 잘 수행해 준 우리 선수들 덕에 연승을 이어가게 됐다"고 말했다. 연장 승부를 가면 9회 세이브를 올린 주현상 뒤가 마땅치 않은 한화가 승리할 확률이 떨어진다는 경기 흐름을 읽고 있었다. 만에 하나 스퀴즈번트가 실패하더라도 감행할 가치가 있는 승부수였다.
'연출 각본 김경문, 조연출 강동우, 주연 문현빈, 조연 하주석'의 앙상블이 만들어낸 최고의 하모니. 실책 2개로 다 따라잡혔던 한화는 1패를 1승으로 바꾸며 강팀 두산의 상승세를 저지했다.
선수들의 잠재력을 끌어내고, 상황에 맞는 과감한 승부수로 지는 흐름의 경기를 승리로 돌려내는 힘. 벤치의 역할이다.
야구 못할 때도 응원해주던, 그래서 '보살팬'으로까지 불리던 한화팬들에게 진정한 '야구 보는 맛'을 일깨워 주고 있는 김경문 감독과 선수단이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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