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기]“다 한통속”…중국 '따이공'이 점령한 인천항

정현우 2024. 6. 13.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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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중국을 오가는 보따리상인을 흔히 따이공(代工)이라고 부르죠. 뉴스A <경제카메라>는 어제(12일) 따이공들이 들여오는 농산물 밀수 실태를 고발했습니다. 코로나19로 한중 여객선 운항이 중단되면서 따이공도 옛날 일이 된 줄 알았지만, 지난해 8월 운항이 재개되면서 국내로 들어오는 따이공들이 다시 늘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코로나19 이전보다 수가 적다는데, 농민단체들은 계속 따이공들을 예의주시하고 있었습니다.

농민단체들이 괜히 예민한 건 아닐까 싶어 지난 10일 인천항에서 따이공들을 지켜봤습니다. 이들은 무리를 지으며 다녔는데, 자체적으로 상인회를 꾸려 상인회장 주도로 면세 반입 허용량(품목당 5kg, 총 40kg)에 맞춰 짐을 나눴습니다. 중국에서 국내로 들어올 때는 고추, 참깨 등 농산물과 담배를 채워왔고, 국내에서 중국으로 나갈 때에는 주로 화장품, 전기밥솥, 설탕을 사갔습니다.

▲따이공들이 가져온 농산물을 싣고 있는 수집상

문제는 따이공들이 가져온 농산물들이 모두 밀수품이라는 겁니다. 배에서 내릴 때 면세 반입 조건은 '자가소비'. 쉽게 말해 자기가 직접 쓴다는 조건으로 세금을 물리지 않는 것인데, 따이공들은 인천항에 도착하자마자 중간 수집상에게 싣고 온 물건들을 모두 팔거나 택배로 보내버리고, 몇 시간 뒤에 바로 배를 타고 나갔습니다. 눈앞에서 수백kg의 농산물이 거래되고, 전대에선 수집상들이 현금 뭉치를 꺼내 세고 있었습니다.

<경제카메라>팀은 다음날(11일) 인천항만공사 측에 정식 취재를 요청해 다시 인천항을 방문했습니다. 그러자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따이공들이 가져온 농산물을 전부 터미널 탁송장에 버린 채 사라지고, 수집상도 나타나지를 않았습니다. 언제까지 오지 않을 것인가 몇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수집상들이 나타나지 않아 인천항 터미널에 쌓여 있는 중국산 농산물 포대

그런데 다른 수집상이 다가와 이유를 설명해줬습니다. "세관 계장이라는 사람이 접안 중이던 배에 미리 연락해 따이공들에게 '기자가 와서 취재 중'이라고 입단속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 수집상은 "농산물 수집상들도 '기자가 갈 때까지 안 들어가겠다. 밤이 되면 물건을 가져가겠다'고 말했다"고 전했습니다. (관세청에 따르면 결국 이들이 가져가지 않은 농산물 포대 수백kg은 인천항에 그대로 쌓여있다고 전해왔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숨바꼭질을 할까. 중국에서 인천항으로 하루에 300명, 많게는 500명 정도가 들어오는데, 이들 중 대부분이 따이공인 상황임을 고려하면 하루에 최대 20톤 안팎의 농산물을 들여올 수 있습니다. 이렇게 들어온 농산물은 도매업체로 가고, 다시 가공업체로 넘어가는데 이 과정에서 국산과 뒤섞여 원산지를 속이는 일도 빈번하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이들이 가져오는 녹두나 팥 같은 농산물은 국내산은 비교적 비싸게 팔리고, 정식 수입하려면 관세가 높은 품목입니다. 해당 제품을 중국 쇼핑몰 알리바바에서 확인해보니 kg당 녹두는 1500원, 참깨는 2500원, 피땅콩은 2600원에 팔리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따이공들은 kg당 4000원 정도를 운송비로 받아갑니다. 이렇게 운송비로만 한 달에 5백만 원보다 조금 못 번다고 할 정도니 이익이 상당하죠. 수집상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국산의 경우 녹두가 kg당 1만 5천 원, 참깨가 2만 원, 피땅콩이 3만 원 안팎에 팔리니 중국산을 국산으로 둔갑해 팔면 남는 장사인 겁니다. 중국산으로 팔아도 관세가 없어 이득인 건 마찬가지고요.

▲알리바바에서 국산 가격의 1/10 수준에 거래되고 있는 중국산 참깨

그래서 국내 농업계는 시장 교란을 우려합니다. 고추만 해도 수확해서 말리는 데 품이 많이 들어 생산량이 많지 않은데, 일부러 관세를 높게 매겨 국내 시장을 보호하고 있는 상황에서 따이공을 통한 우회 수입이 늘어날수록 농민 피해는 커진다는 것입니다. 따이공들의 면세 반입 한도를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내왔지만 좀처럼 정책이 바뀌지 않는다고도 토로했습니다.

이런 거래가 최소한 인천항 바깥에서 이뤄졌다면, 당국의 감시망을 피해나갔다고 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거래는 인천항 여객터미널 바로 앞에서 이뤄졌습니다. 인천항만공사나 관세청 직원 모두 지켜만 볼 뿐, 아무도 문제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따이공들과 반갑게 인사하고 중국어로 대화하는 모습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당국자의 권위보다 친근함이 더 느껴졌습니다.

▲<경제카메라>팀 문의에 갑작스레 조사에 나선 인천세관 직원들

<경제카메라>팀이 '단속은 하지 않느냐'고 수차례 문의하자 세관 직원들은 그제야 터미널을 돌아다니며 항만 직원과 따이공들에게 "몇 시에 들어와서 몇 시에 돌아가느냐", "이런 거래가 언제부터 일어났느냐"는 질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인천항에는 관할인 인천 연수경찰서 경찰도 상주하고 있지만, 연수경찰서 수사과는 "우리가 같은 공무원인데 관세청이 단속하지 않는 것을 어찌하겠느냐"며 "별달리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전해왔습니다.

한 수집상은 "세관도 항만도 다 한통속"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입항객-출항객 명부만 대조해봐도 자가소비가 이뤄지지 않는 것은 뻔한 일인데, 이 많은 농산물이 어디로 갔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는 "코로나19 이후 따이공 단속이 단 한 차례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1970년대 서해안 일대 항만 밀수꾼들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 <밀수>의 한 장면

이에 대해 세관은 "수집상 단속을 이제 막 하려던 참이었다"고 답했습니다. 세관이 단속을 하려던 참에 <경제카메라>팀이 취재를 왔고, 수집상들이 어디선가 정보를 듣고 모습을 감추면서 터미널에 중국산 농산물 포대가 산더미처럼 쌓이는 일이 벌어졌다는 것입니다. 우연이 이렇게 거듭될 수 있는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정현우 기자 edge@ichanne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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