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물 내진설계율 '16.4%' 불과…전북은 고작 13.6%
부안 4.8 지진 원인 '조사 중'…전국 단층조사 2036년에 완료
강진 주기 100~1천년…'겨우' 46년 강진 없었다고 안심 안돼
(서울=연합뉴스) 이재영 기자 = 지진은 사후 대응만 가능한 재난이다.
지진 규모를 말할 때 흔히 사용하는 '리히터 규모'를 만든 찰스 리히터는 지진을 예측할 수 있다는 사람이 있다면 "바보거나 사기꾼"이라고 단언했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지진을 예측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고 최근 성과가 있었다는 논문들이 발표되기도 했지만, 현재 과학기술로는 지진을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의견이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은 홈페이지에서 "지진은 예측할 수 없다"며 "USGS는 물론 어느 과학자도 주요 지진을 예측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결국 지진에 관해서는 '발생 가능성'을 평가하고, '발생 후 대응방안'을 마련해두는 것이 최선이다.
한반도가 유라시아판 내에 있어 강진이 적다고 안심할 수도 없는 것이, 판 내에서 발생하는 지진은 진원의 깊이가 상대적으로 얕아 규모에 비해 큰 피해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함열단층' 유력시되지만…거리 멀어 단정하긴 어려워
13일 학계에 따르면 전날 오전 전북 부안군에서 발생한 규모 4.8 지진의 원인으로 유력시되는 단층은 '함열단층'이다.
전날 지진은 단층의 상반과 하반이 '북서-남동' 또는 '북동-남서'로 수평 이동하며 발생했다고 추정되는데, 마침 진앙 북동쪽에 함열단층이 존재한다. 함열단층은 부안에서 익산 쪽으로 이어진 '북동-남서' 방향 단층이다.
다만 함열단층은 전날 지진 진원에서 20㎞ 남짓 먼 거리에 떨어져 있다.
결국 지금으로선 '지진이 발생했으니 해당 지역에 활성단층이 존재하는 것은 확실하나, 어떤 단층인지는 모른다'가 내릴 수 있는 유일한 결론이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은 부안군에 조사팀을 파견해 단층 등을 파악 중이다.
지진을 일으킨 단층을 추정하는 일은 쉽지 않다.
2016년 9월 발생한 국내 지진 계기관측 이래 최대 규모 지진인 경주 지진(규모 5.8)도 원인이 양산단층으로 추정됐다가, 발생 후 5년간 연구 끝에 2021년 양산단층과 덕천단층 사이 '내남단층'이라는 활성단층으로 바뀌었다.
단층조사 앞당겨 2036년 완료…"인력·예산 부족"
우리나라 내 단층 파악은 이제 겨우 4분의 1 정도 진행됐다고 볼 수 있다.
경주 지진을 계기로 정부는 한반도 단층구조선 조사에 착수했고, 영남권 조사를 마친 뒤 현재 수도권과 충청권 조사가 진행 중이다.
이전에 단층 조사가 없지는 않았다. 소방방재청 주관으로 2009∼2012년 국가활성단층지도 제작이 추진됐으나, 정부의 관심 부족으로 예산을 충분히 지원받지 못했다. 결국 다수 전문가가 동의하고 국민에게 공개할 수준의 지도가 만들어지지 못했다.
현재 진행 중인 단층구조선 조사가 완료되는 때는 2036년이다.
원래 25년에 걸쳐 조사하려다가 2017년 포항 지진이 발생하자 더 서두르기로 했고, 이에 앞당겨진 완료 시점이 2036년이다.
조사 완료 시점을 앞당기면서 2026년까지인 2단계 조사를 진행할 지역이 호남에서 수도권과 충청으로 바뀌었다.
인구가 밀집한 지역의 단층부터 파악하겠다는 취지에서다.
전날 지진으로 호남도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점이 확인된 만큼, 호남과 4단계 조사 대상인 강원 지역의 단층 조사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문제는 인력과 예산이다.
단층구조선 2∼4단계 조사를 위한 기획연구를 맡은 연구진은 "조사 기간이 단축돼 각 단계에 조사할 영역이 늘어남에 따라 1단계 인력과 예산이 2단계 이후에도 그대로 유지되면 원활한 조사가 어렵다"고 밝혔다.
앞서 영남권 단층 조사에서 '현재부터 258만년 전 사이(신생대 제4기) 한 번이라도 지진으로 지표파열이나 지표변형을 유발한 단층'인 활성단층이 14개 확인됐다.
활성단층인지 확실하진 않지만 그럴 것이라 추정되는 단층도 추가로 있었다.
언제 지진을 일으켜도 이상하지 않은 단층이 영남에만 14개 이상이란 의미다.
강진 주기는 '100∼1천년'…"한반도 지진 100∼150년 주기"
전날 지진은 기상청이 지진 계기관측을 시작한 1978년 이래 전북 내륙에서 처음 발생한 규모 4.0 이상 지진이다.
이를 두고 '어쩌다 한 번 발생한 이례적인 일'로 치부할 수 있지만, 전문가들은 이런 의견에 고개를 젓고 오히려 "이례적이지 않다"고 강조한다.
1978년 이후 46년이란 기간은 지구의 관점에선 찰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학계에서는 한 지역에 큰 피해를 일으키는 강진이 발생하는 주기를 '100∼1천년'으로 본다. 근대적인 지진관측이 이뤄진 것이 약 100년 정도라는 점에서 현재 지진 안전지대라고 여기는 지역은 사실 강진 주기가 도래하지 않은 지역일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을 분석한 논문(조선시대 이래 한반도 지진발생 시·공간적 특성)을 보면 한반도에서 지진 활성기와 잠복기가 100∼150년 주기로 반복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호남은 판 경계에서 멀어 지진의 주기가 더 길 것으로 분석된다.
기상청의 한반도 역사 지진 기록을 보면 호남에서도 진도 5 이상으로 평가되는 지진이 심심치 않게 발생했다.
삼국사기나 조선왕조실록 등에 기록된 서기 2년부터 1904년까지 지진은 총 2천161건인데, 진도 5 이상으로 평가되는 지진이 440건으로 20%를 넘는다.
규모 4 이상 지진에 '5~10초' 내 경보
지진 대비는 잘 돼 있을까.
충분하다고는 할 수 없는 수준이다.
일단 경보체계는 어느 정도 갖춰졌다는 평가다.
기상청은 현재 규모 4.0 이상 지진에 대해 최초 관측 후 5~10초 내 조기경보와 지진속보를 발표하고 있다.
전날 지진도 발생 2초 만에 관측한 뒤 관측 9초 만에 지진속보를 발표하고 그로부터 1초 뒤 전국에 긴급재난문자를 발송했다.
기상청은 2027년까지 지진관측소를 851개로 늘려 강진 발생 시 경보를 발령하는 데까지 시간을 '관측 후 3~5초 내'로 줄일 계획이다.
원자력발전소나 고속철도와 같은 국가 주요시설에 대해서는 진도가 6일 것으로 추산되는 지진이 나면 3~5초 내 경보를 발령하는 지진현장경보 시범서비스를 이미 운영 중이다.
기상청은 지난 4월 대만 화롄현 강진으로 TSMC 반도체공장도 타격받은 것을 계기로 국내 반도체공장에도 지진현장경보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기반 시설뿐 아니라 기반 산업도 지진에서 보호해야 하기 때문이다.
617만동 중 101동만 내진설계…호남은 '액상화' 위험 커
내진 설계율은 지진 위험도에 비해 너무 낮다고 평가된다.
작년 말 기준 공공시설물 내진율은 78.1%에 그친다. 국가 기반 핵심 시설과 지방자치단체 청사는 2025년 내진 보강이 완료되지만, 소방서와 경찰서 등은 최근 앞당긴 보강 완료 시점이 2030년이다.
국내 단층 조사가 워낙 늦은 터라 현재 내진설계가 단층 현황을 반영하지 못했다는 우려도 크다. 특히 월성원전과 고리원전을 비롯해 원전 건설 시 인근 단층의 영향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는 의혹이 지속해서 제기된다.
월성원전과 고리원전은 법에 따라 설계 시 고려해야 하는 단층이 각각 5개와 2개로 이런 단층이 있다는 사실은 현재 진행되는 단층구조선 조사에서 드러났다.
국내 원전은 규모 6.5~7.0 지진도 견디도록 설계됐다.
이런 내진성능이 100% 안전을 담보하지 않아 지진에도 피해를 피하려면 모든 방진시설이 100% 작동해야 한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도 지진에는 견뎠으나 이어진 쓰나미에 디젤발전소가 침수되면서 참사로 이어졌다.
전체 건축물 내진 설계율은 작년 7월 기준 16.4%에 그친다.
내진설계를 해야 하는 건물이 617만여동인데 법이 정한 내진설계가 적용된 건물은 101만여동에 그친다.
내진설계 대상이 늘고 기준이 강화됐기 때문인데 이미 지어진 건물엔 내진성능 보강을 강제할 수 없어서 문제다.
전북과 전남은 내진 설계율이 13.6%와 10.6%로 특히 낮다.
더구나 호남은 지반이 상대적으로 연약해 지진 발생 시 내진설계조차 무력화하는 액상화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지진으로 땅 아래 흙탕물이 지표로 나와 땅이 늪처럼 변하는 액상화는 국내에선 2017년 포항 지진 때 처음 나타났고 포항 지진이 경주 지진보다 피해가 컸던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jylee2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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