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민 225만 시대’에 긴급 재난문자는 한글로만 발송
“대피 안내 담겨도 이주민 무슨 뜻인지 몰라”
노동안전지킴이 인권위에 ‘시스템 개선’ 진정
전남 영암의 한 제조업체에서 일하는 캄보디아 출신 이주노동자 A는 지난 12일 오전 어리둥절 했다. 출근 직후인 오전 8시27분쯤 휴대전화에서 경보음이 울리며 문자메시지가 왔지만 한글을 잘 몰라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A씨는 긴장한 표정의 한국 동료들의 표정 등을 통해 ‘무슨 일이 있구나’라고 짐작만 했다고 한다. 재난 문자에는 ‘전북 부안에서 규모 4.8의 지진이 발생했으니 낙하물이나 여진에 주의하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지만 A씨는 대피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재난 상황에서 휴대전화로 발송하는 ‘긴급 재난 문자’가 한글로만 발송되고 있어 이주민들이 이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노동단체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시스템 개선을 요구하는 진정서를 제출했다.
문길주 광주·전남노동안전지킴이 운영위원은 13일 “국가인권위원회 광주사무소에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긴급 재난 문자’ 발송 시스템을 개선해 달라는 내용의 진정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정부와 지자체는 재난이 발생하면 국민에게 이를 신속하게 알려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긴급 문자를 발송하고 있다. 하지만 문자는 대부분 한글이다. 일부 영어가 포함된 경우가 있지만 ‘특별한 상황’에만 허용된다.
실제 지난 12일 부안 지진 때 정부와 지자체가 보낸 재난 문자는 대부분 한글이었다. 기상청이 처음 보낸 문자에는 ‘전북 부안군 남남서쪽 4㎞ 지역 M4.7 지진/낙하물, 여진 주의 국민재난안전포털 참고대응 Earthquake(지진)’라고 적혀있었다.
지진 발생 지역과 규모, 주의 사항 등이 담겨있지만 한글을 모르는 사람은 이해하기 어렵다. 한글 외에 지진 발생 사실은 알 수 있는 단어는 ‘Earthquake’ 뿐이다.
전남도와 기초 자치단체 등도 자체 ‘안전 안내 문자’를 추가로 보냈다. 문자에는 ‘낙하물로부터 몸 보호, 진동 멈춘 후 야외대피’ 등 행동요령과 ‘추가 여진 우려’ 등의 당부가 적혀있었지만 역시 모두 한글로만 발송됐다.
문 운영위원은 “이주민들에게도 재난 문자가 한글로 발송되면서 무슨 뜻인지 몰라 대피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서 “지진·폭우·폭염·폭설 등 재난 상황에서 이주민들에게 각 나라 언어로 문자를 보내 대피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으로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지방자치단체 외국인 현황’ 자료를 보면 2022년 11월1일 기준 한국에 3개월 이상 장기 거주하는 외국인주민은 225만8248명에 달한다. 한국 총 인구(5169만2272명)의 4.4%다. 이들 중 175만2346명은 한국 국적을 갖고 있지 않았고 이주노동자는 40만3139명에 달한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현재 사용 중인 재난 문자 발송 시스템으로는 여러 나라 언어 등으로 발송할 방법이 없다”면서 “외국인들이 많아지고 있는 상황인 만큼 정부에 개선 등을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강현석 기자 kaj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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