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다 [말글살이]

한겨레 2024. 6. 13. 14:35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묘하다.

'나누다'라는 말에는 두가지 정반대의 뜻이 숨어 있다.

'기쁨을 나누다' '슬픔을 나누다'라는 말도 기쁨이나 슬픔의 감정에 동참하여 함께 기뻐하고 함께 슬퍼하는 것이다.

피동형으로 쓰인 '남북으로 나뉘다' '좌우로 나뉘다' '두 편으로 나누어지다'라는 표현은 자연스러운데 '사랑이 나뉘다' '기쁨이 나누어지다' 같은 말은 어색한 걸 보면, '나누다'가 애초에는 분할과 분리의 뜻이 강했다고 볼 수 있겠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말글살이
게티이미지뱅크

묘하다. ‘나누다’라는 말에는 두가지 정반대의 뜻이 숨어 있다. 하나는 참여와 공유, 다른 하나는 분할과 분리.

마을회관에서 전기톱 하나를 사서 나누어 쓰면, 물건을 공유하는 것이다. 흔히 볼 수 있는 ‘사랑 나눔 바자회’ ‘한 끼 나눔 잔치’ ‘재능 나눔 잔치’ ‘나눔과 섬김’과 같은 표현은 ‘함께한다’는 뜻이 강하다. ‘한 끼를 나누는’ 일은 여럿이 한자리에 모여 앉아야 한다. ‘대화를 나누는’ 일은 함께 무릎을 맞대고 대화에 참여하는 것이고 말을 주고받는 것. 일방적이지 않다. ‘기쁨을 나누다’ ‘슬픔을 나누다’라는 말도 기쁨이나 슬픔의 감정에 동참하여 함께 기뻐하고 함께 슬퍼하는 것이다. 감정이입, 공유, 공감, 섞임, 참여 없이는 불가능하다. 시간과 공간, 마음과 자기 자신을 내어주어야 한다.

반면에 ‘재산을 나누는’ 일은 재산을 떼어서 각자에게 주고 마는 것. 재산 분할. 재산을 나눌 때 얼굴 붉히는 일이 잦은 건 내 주머니에 좀 더 많은 몫을 챙기겠다는 욕심 때문이겠지. 나눠서 ‘가지면’ 그뿐. 각자에게는 나눈 만큼의 배타적 소유권이 생긴다. 경계선이 그어지고 선을 넘는 걸 허락하지 않는다.

피동형으로 쓰인 ‘남북으로 나뉘다’ ‘좌우로 나뉘다’ ‘두 편으로 나누어지다’라는 표현은 자연스러운데 ‘사랑이 나뉘다’ ‘기쁨이 나누어지다’ 같은 말은 어색한 걸 보면, ‘나누다’가 애초에는 분할과 분리의 뜻이 강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렇다면 ‘나누다’는 나눔(떼어냄)의 행위 다음에 어떻게 하느냐가 관건이다. 같은 자리에서 함께 공유할지, 따로 분리하여 금을 긋고 배제할지. 나뉜 몫에 함께 참여할지, 뿔뿔이 흩어질지. 한국 사회는 점점 분할과 분리, 급기야 배제의 나누기가 뚜렷해지고 있다.

김진해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