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시간당 100㎜ 폭우 일상인데, 파수꾼인 예보관은 태부족”

이종현 기자 2024. 6. 13.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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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동 기상청장 “기상 양극화 극심, 예보관 역량 중요”
5~7교대 운영하는 선진국, 우리는 4교대도 힘들어
“기후위기 전담국(局) 신설, AI 기술도 적극 활용”
유희동 기상청장이 지난 7일 기상청 서울청사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하고 있다. 유 청장은 “기상 분야 최고 선진국이 되기 위해선 예보관 역량이 중요하다”고 말했다./기상청

2022년 8월 8일,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에 기록적인 폭우가 발생했다. 순간 최대 강우량이 시간당 141.5㎜에 달했다. 서울 전역이 물바다가 됐고, 신림동에서는 발달장애인 일가족 세 명이 숨지는 안타까운 인명피해도 발생했다. 당시 폭우는 먼 나라 이야기로만 생각했던 기후위기를 온 국민이 체감한 기억으로 남았다.

2년 전 폭우는 기후변화가 부른 극한 기상의 한 예이다. 극한 호우는 시간당 강수량이 72㎜ 이상일 때를 말한다. 과거엔 10년에 한 번 정도 극한 호우가 온다고 했지만, 지금은 드물지 않게 만난다. 50년에 한 번 찾아온다는 시간당 100㎜ 호우도 거의 매년 발생한다. 유희동 기상청장은 지난 7일 기상청 서울청사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극한호우의 피해가 재발하지 않으려면 예보관을 늘리는 게 해답”이라고 말했다. 그는 30년 넘게 기상청에서 근무한 예보관 출신이다.

기상청은 2년 전 폭우가 쏟아지기 12시간 전에 서울에 시간당 100㎜ 이상의 폭우가 내릴 것이라고 예보했다. 당시 유 청장이 취임한 지 2개월밖에 안 됐던 때였다. 유 청장은 “당시 예보관들이 수치예보모델이 내놓은 것보다 더 많은 강수량을 전망했는데 처음엔 믿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그때 날씨를 계산하는 수치예보모델이 내놓은 강수량은 40㎜였다고 한다. 기상청 예보관들의 의견은 달랐다. 예보관들은 수치예보 결과에 정체 전선과 같은 몇 가지 변수를 고려해 시간당 100㎜ 이상의 비가 내릴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국형 수치예보모델은 세계 최고라는 영국 기상청의 통합모델과 비교하면 기술력이 99.2%까지 올라왔다. 세계 최고 수준의 수치예보모델보다 예보관이 더 정확한 전망을 한 것이다. 예보관의 분석 없이 수치예보 결과만 믿었다가는 아무런 대비조차 하지 못할 뻔했다.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날씨가 가뭄과 폭우, 한파와 폭염처럼 양극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자연재해 위험이 커지고 있다. 신대방동 폭우처럼 과거 사례가 없는 자연재해는 성능이 좋은 수치예보모델도 정확한 분석 결과를 내놓기 힘들다. 특히 한국은 토네이도를 제외한 모든 자연재해가 일어나는 곳이기 때문에 더 불리하다. 유 청장은 “기후변화에 따른 극단적인 이상기후 현상이 미래에는 더욱 빈번해질 것으로 전망된다”며 “기상 분야 최고 선진국이 되기 위해선 예보관 역량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극한 기상 시대가 되면서 예보관의 역할이 중요해졌지만, 한국은 예보관에 별다른 투자는 하지 않는다. 기상청 예보관은 모두 142명으로, 4개 조(組)로 나뉘어 1년 내내 근무한다. 문재인 정부 때는 단 한 명의 예보관 증원도 없었고, 윤석열 정부 들어 그나마 4명이 늘어난 게 전부다. 예보관은 한 번 근무하면 12시간을 일하는데, 휴식이나 새로운 예보 기술을 학습할 시간은 거의 없다. 흔히 말하는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 확보되지 않아 지원자도 점점 줄고 있다.

미국·일본 같은 선진국은 예보관 인원을 많이 확보해 5~7개 조로 운영하고 있다. 유 청장은 5개조로만 예보관을 운영해도 4개조가 근무하고 1개조는 돌아가면서 새로운 예보 기술을 배우고 연구를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고 설명했다. 그러려면 최소한 30~40명의 예보관이 더 필요하지만, 예산을 확보하기 어렵다. 정부가 기상청에 투입하는 예산은 국가 전체 지출의 0.07%에 그친다. 유 청장은 “새로운 지원자가 줄다 보니 예보관들이 점점 늙어가고 있다”며 “이 상태로 가면 4~5년 뒤에는 지금의 예보 체계를 운영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은 우리와 달리 기상 분야에 투자를 늘렸다. 2018년 7월 교토와 고베에 3일간 비가 1214㎜ 내리며 299명이 사망했다. 일본은 집중호우 피해를 계기로 기상청에 대한 지원을 대폭 확대했다. 기상청 인원을 늘리고 각 지역에서 국지예보를 하는 기상대와 민간의 소통을 강화했다. 반면 한국은 2015년 소규모 기상대를 통폐합하는 방식으로 기상 분야 인력을 감축했다.

유 청장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과학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전담 조직도 만들겠다”고 밝혔다. 기상청은 2020년부터 한국형 수치예보모델을 운영하고 있다. 내년부터는 기상위성 ‘천리안 5호’ 개발을 시작할 예정이다. 유 청장은 “앞으로는 인공지능(AI)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3세대 예보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후변화에 대응할 국(局) 단위의 전담 조직도 만들 계획이다. 유 청장은 “기상청은 기후위기라는 이슈에 과학적 정책 방향을 제시하는 것을 기관의 핵심과제로 추진하고 있다”며 “기후위기를 감시하고 예측하는 전담 조직 신설을 위해 관계부처와 협의 중”이라고 했다. 신설되는 조직은 기후위기 관련 연구와 조사를 하고, 대응책을 마련한다. 국가적인 기후변화 표준 시나리오 생산과 인력 양성도 맡는다. 유 청장은 “40명 정도 규모로 전담 조직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여름이 다가오면서 예보관들은 다시 극한 폭우를 걱정한다. 유 청장은 “올 여름 기상청의 핵심 업무는 기상재해로 인한 인명 피해 최소화하는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수도권에서 운영했던 호우 긴급재난문자(CBS)를 올해는 전남권과 경북권까지 확대하고, 기존에 6시간 마다 제공하던 태풍정보도 3시간 주기로 더 자주 제공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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