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12.화성시독립운동기념관

경기일보 2024. 6. 13.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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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의 화성시 제암리 풍경은 평화롭다. 모내기를 끝낸 논에서 먹이를 찾는 하얀 백로의 몸짓이 여유롭다. 버스에서 내려 잠시 걸으니 ‘화성시독립운동기념관’이 나타난다. 3·1운동의 정점에서 일어난 ‘4·15제암리·고주리 학살사건’ 105주년을 맞은 지난 4월15일 문을 연 기념관은 대지 2만1천322㎡(6천450평)의 너른 대지에 세워져 있다.

1919년 4월 15일 일제가 벌였던 '제암리·고주리 학살'을 표현한 영상이 상영되고 있다. 윤원규기자

■ 미래를 여는 3·1운동 순국유적지

역사문화공원과 함께 복합문화공간으로 설계된 화성시독립운동기념관은 경기도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출입구로 향하는 길이 독특하다. 길게 이어진 콘크리트 벽과 바닥에 깔린 수백만개의 자갈돌이 자연스럽게 깊은 생각에 빠져들게 만든다. 밝은 햇빛과 자유의 소중함을 관람객에게 알리고 싶어서일까? 기념관을 지하에 배치한 건축가의 생각이 문득 궁금하다. 김나은 학예사의 안내로 상설전시관을 둘러본다. 오른편은 기획전시실과 어린이전시실, 왼편이 상설전시실이다. 통유리 천장으로 들어오는 햇볕이 긴 복도를 환하게 비춰준다.

화성시독립운동기념관은 일제강점기 때 화성사람들의 독립운동과 그 정신을 기리고, 화성지역 독립운동의 역사적 가치를 전하기 위해 기존 ‘제암리3.1운동 순국 기념관’을 확장, 이전하여 지난 2024년 4월 15일에 개관했다. 윤원규기자

전시실이 국권을 상실한 나라의 현실을 상징하듯 어둡다.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부르는 남녀를 표현한 이미지를 배경으로 ‘독립의 염원-구국의 빛이 되다’라는 글귀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보흥학교, 전곡사숙, 제하여학교는 화성 사람들의 뜨거운 교육열을 보여준다. 만국기가 걸린 향남공립보통학교 운동장에서 학생들이 줄다리기하는 가을운동회 풍경을 담은 흑백 사진은 실력을 양성해 국권을 회복하려는 화성인들의 의지를 보여주는 듯하다. 네 개의 무궁화꽃이 역동성을 살린 태극 문양이 선명한 이 유물은 1902년 대한제국의 홍문관 제학 문임이 작사한 애국가를 담고 있다. 남양지방금융조합의 설립 및 운영에 관해 1908년 5월부터 9월까지 기록한 공문서에는 무슨 비밀이 담겨 있을까? 이 문서를 작성한 금융조합의 일본인 이사 이로카와는 남양 보흥학교를 아동에게 배일사상을 주입하는 ‘폭도양성소’라 하고 남양군 지역을 예부터 배일사상이 가장 격렬한 곳이라 기록하고 있다.

화성의 독립운동가들의 활약상을 알아볼 수 있다. 윤원규기자

‘르 쁘띠 주르날’에 실린 채색 그림이 참혹하다. 하얀 도포에 갓을 쓴 장정이 칼을 뽑아 들고 총검으로 무장한 일본군과 맞서고 있다. 그는 곧 죽임을 당할 것이다. 이미 그 옆에는 흰옷 입은 사람들이 여럿 쓰러져 있다. 무기력했던 정부와 달리 조선 민중들의 저항은 질기고 거셌다. 일제의 침략에 맞서 치열하게 싸운 화성인의 역사가 빛바랜 종이 속에 담겨 있다. 1908년 작성된 화성 출신 ‘의병 김선여 유성구 진희서 판결문’이나 화성의 역사를 기록한 ‘남양관계서류’가 그것이다. 화성인들도 무장투쟁을 벌이고, 인재를 육성하는 학교를 설립하며, 나라의 빚을 갚기 위해 국채보상운동을 펼친다. 끝내 나라를 빼앗기고 일본의 노예가 됐지만 아주 희망을 잃지 않았던 것은 아이들이 자라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제는 한국인의 저항 의지를 누르기 위해 총검을 든 헌병을 앞세워 무단통치를 감행한다. 10년의 세월을 숨죽여 살았던 한국인의 분노는 1919년 3월 폭발한다.

화성 일대에서 진행됐던 3·1운동의 진행과 급박했던 당시 상황을 엿볼 수 있다. 윤원규기자

■ 마침내 떨쳐 일어서다

3월21일 동탄에서 시작된 화성의 3·1운동은 송산, 서신, 우정, 장안, 향남, 팔탄 등 화성 전역으로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화성의 성난 시위 군중은 일제 식민통치기구인 면사무소와 경찰관 주재소를 부수거나 불태운다. 이 과정에서 일본 순사를 때려죽이기도 한다. 격렬한 만세운동의 전개 과정에 그림을 곁들인 일제의 기록물을 살피며 저들의 철저함을 확인한다. 그러나 화성 사람들은 용감하고 의리가 있었다. 김 학예사가 상소문처럼 길게 펼쳐진 문서에 담긴 사연을 들려준다. “이 문서는 순사부장을 때려죽인 주모자로 몰려 감옥에 갇힌 문상익, 홍준옥 두 분을 구출하기 위해 송산면민이 연명한 탄원서입니다. 송산면장 홍달후를 비롯한 면민 33인이 서명하고 인장을 찍은 것이지요.” 33인이 서명한 독립선언서 못지않은 사연에 감동이 밀려온다.

“홍면옥 선생님은 송산면에서 3일 동안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고 주도한 죄목으로 체포돼 15년의 형기를 살았습니다.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에게 내린 최고 형량이 3년입니다. 선생이 받은 15년은 독립투사에게 내려진 가장 긴 형량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선생이 모진 옥살이를 마치고 출소한 날을 기념해 찍은 사진을 다시 살펴본다. 두 개의 기왓장과 글자가 새겨진 은주전자와 은술잔에는 무슨 사연이 담겨 있을까? 검정 두루마기에 손에 꽃을 든 홍헌 선생이 이 유물의 주인공이다. 일제의 방화로 졸지에 집을 잃은 이웃들에 자신의 산을 개방해 목재를 나눠줘 집을 짓도록 도움을 베풀었다. 그런 그가 세상을 떠나자 마을 사람들이 고마운 마음을 담은 물품을 제작해 전달한다. “은주전자에 새겨진 글자 ‘홍헌군정’은 ‘홍헌 선생께 드립니다’라는 뜻이지요.”

개관기념 특별전 '어느 독립운동가의 삶과 일상'이 열리고 있는 기획전시실 전경. 윤원규기자

■ 간장독과 낡은 궤짝에 담긴 항쟁의 역사

전시실 곳곳에서 당시의 상황과 사정을 알려주는 이미지와 영상물을 만날 수 있다. 독립운동을 알려줄 유물은 거의 사진과 문서이기 때문일 것이다. 영상실에 놓인 의자에 앉아 영상물을 감상한다. 화사하게 봄꽃이 활짝 핀 봄날의 평화로운 마을 풍경이 비친다. 꽃잎이 지고 어둠이 몰려오더니 천둥과 벼락이 친다. 사방을 벽으로 막더니 문이 닫히고 총성이 울리며 벽 곳곳에 구멍이 뚫리고 불이 모두 태워버린다. 1919년 4월 제암리와 고주리에서 벌어진 참혹한 현장을 보여주는 영상물이다. 그날 꽃잎처럼 쓰러져 간 순결한 넋들은 하늘로 올라가 어둠을 비추는 별이 된다.

두렁바위라 불리기도 했던 제암리예배당에서 벌어진 그날의 참혹한 현장을 증언하는 사진을 살펴본다. 남편과 집을 잃고 넋이 빠진 표정으로 땅바닥에 주저앉은 여인들의 모습이 가슴 아프다. 외국인들의 초상이 보인다. 세브란스의학교 교수 프랭크 스코필드, 연희전문학교 교수 호러스 언더우드, 제4대 이화학당장 룰루 프라이, 미국 연합통신 임시특파원 앨버트 테일러의 사진이다. 일제가 화성에서 벌인 끔찍한 만행은 이들의 사진과 글을 통해 세계로 전파된다. 3부 ‘3·1운동 이후 화성사람들의 독립운동’은 독립을 향한 화성인들의 열망을 보여준다. 만세운동 이후에도 화성인들의 독립 의지는 뜨겁게 불타 올랐다. 1927년 10월 결성된 신간회 사진을 통해 화성 청년들이 민족운동에 앞장섰던 사실을 확인한다. 화성의 독립운동가 이름을 벽에 새겼다.

어린이들이 직접 몸으로 즐기며 다양한 체험활동을 할 수 있는 어린이 전시장 전경. 윤원규기자

■ 독립의 영웅은 우리의 평범한 이웃

특별기획전 ‘어느 독립운동가의 삶과 일상’은 잔잔한 감동을 선사한다. 오래된 장롱과 책, 항아리는 나이 든 사람들이라면 익숙한 물건들이다. 관람객을 놀라게 할 특별한 전시물은 하나도 없다. 하지만 이 전시가 잔잔한 감동을 안겨주는 것은 독립운동가들의 손때가 묻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최병헌 기증의 ‘독’이 놓였다. 이 커다란 독은 무슨 사연을 담고 있을까? “일제가 마을을 방화하자 마을 사람들이 힘을 합쳐 진화에 나섰습니다. 이때 최진성의 집 장독대 독 안에 있던 간장을 퍼서 불을 껐다고 해요.” 불탄 자국이 남은 기와와 독 파편들도 살펴본다. 낡은 궤짝에도 사연이 가득 담겼다. “유영순님이 기증한 것인데, 역시 그때 집이 모두 불탔으나 유일하게 남은 물건이라고 합니다. 소중하게 보관하다가 기념관에 기증하신 것이지요.”

어린이전시실은 화성시독립운동기념관의 자랑이다. 체험을 중심으로 설계한 것이라 아이들이 놀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독립운동의 역사를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상설전시 안내문에 적힌 글이 화성시독립운동기념관의 설립 목적과 지향을 드러내고 있다. “우리의 독립은 몇 사람의 영웅들에 의해 이뤄진 것이 아닙니다.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두려움과 고난을 무릅쓰고 일어섰던 바로 우리의 평범한 이웃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김준영(다사리행복평생교육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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