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곳 없는 야생동물들, 무조건 안락사만이 최선인가요"

고은경 2024. 6. 13.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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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킬을 당한 고라니, 농약에 중독된 독수리, 날개를 다친 부엉이, 인간을 따르는 너구리 각각의 사연은 다르지만 이들에게 주어진 운명은 대부분 안락사다.

하지만 생크추어리(야생동물 보호시설)가 있다면 적어도 안락사가 아닌 다른 선택지가 생길 수 있다.

생크추어리가 없어 야생동물을 안락사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한 고민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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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개봉한 영화 '생츄어리'
왕민철 감독·김정호 최태규 수의사
다큐멘터리 영화 '생츄어리'를 제작한 왕민철(가운데) 감독과 출연진인 김정호(왼쪽) 청주동물원 진료사육팀장, 최태규 곰보금자리대표가 7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사옥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갖고 영화 포스터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임은재 인턴기자

로드킬을 당한 고라니, 농약에 중독된 독수리, 날개를 다친 부엉이, 인간을 따르는 너구리… 각각의 사연은 다르지만 이들에게 주어진 운명은 대부분 안락사다. 하지만 생크추어리(야생동물 보호시설)가 있다면 적어도 안락사가 아닌 다른 선택지가 생길 수 있다. 이는 사람의 이익과 즐거움을 위해 갇혀 사는 동물원 동물이나 사육곰에게도 해당된다.

야생동물이 처한 현실을 알리고, 동물 안락사에 대한 고민과 생크추어리의 필요성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생츄어리'가 12일 개봉했다.

청주동물원에서 살고 있는 반달가슴곰 2마리의 모습. 시네마달 제공

영화는 청주동물원을 생크추어리로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김정호 수의사(진료사육팀장), 사육곰을 위한 생크추어리를 만들고 있는 최태규 수의사(곰보금자리프로젝트 대표), 야생동물을 구조해 방생하는 김봉균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재활관리사가 야생동물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따라간다.

영화 개봉을 기념해 왕민철 감독과 김정호 수의사, 최태규 수의사를 이달 7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본사에서 만났다. 이들은 "국내에는 야생동물을 위한 생크추어리가 한 곳도 없다"며 "이제는 이유 없이 갇혀 있는 동물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다큐멘터리 영화 '생츄어리'를 제작한 왕민철(가운데) 감독과 출연진인 김정호(왼쪽) 청주동물원 진료사육팀장, 최태규 곰보금자리대표가 7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사옥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임은재 인턴기자

이번 영화는 동물원의 역할과 의미를 그린 왕 감독의 전작 '동물, 원'의 후속작이다. 왕 감독은 "청주동물원이 전시 기능은 줄이고 야생동물의 치료와 재활을 돕는 생크추어리로 변해가는 과정을 담아내려 노력했다"며 "이 과정에서 알게 된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곰보금자리프로젝트로 내용을 확장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생크추어리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김 수의사는 "영구장애로 인해 자연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토종 야생동물, '갈비사자' 바람이와 같이 동물원수족관법 시행으로 인해 문을 닫는 열악한 동물원 속 동물들, 소유자가 없이 방황하는 여우 등에게 보금자리가 될 수 있다"고 답했다.

너구리 클라라는 사람을 잘 따라 야생으로 돌려보내지 못했고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에서 살았다. 시네마달 제공

생크추어리가 없어 야생동물을 안락사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한 고민도 크다. 특히 청주동물원에서 20년 가까이 산 반달가슴곰 '반순이' 사례가 이를 드러낸다. 청주동물원에서 함께 근무했던 김 수의사와 최 수의사는 반순이의 안락사 시기를 놓고 의견 차를 보이기도 한다.

최 수의사는 "이미 통증이 시작됐고 더 심해질 것으로 충분히 예상될 때 안락사를 시켜야 그 의미를 달성할 수 있다"며 "동물에 대한 사람의 마음도 고려해야 한다고 하지만 동물의 입장을 제일 중심에 놓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김 수의사는 "(결국 안락사를 시켰지만) 의학적 기술 발전에 대한 기대가 있었고, 시기를 조금 늦추고 싶었다"며 "안락사가 오히려 편하고 간단한 선택이 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갈비뼈가 드러날 정도로 앙상했던 바람이가 충북 청주시 상당구 청주동물원에서 암사자 도도와 지내고 있는 모습. 청쥬=뉴시스
강원 화천군 곰보금자리프로젝트의 곰 보호시설 내 방사장에 나온 사육곰 칠성이. 곰보금자리프로젝트∙카라 제공

하지만 이들 모두 생크추어리의 필요성, 동물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는 점에는 의견이 일치한다. 왕 감독은 "관객들이 말 못 하는 동물들에게 우리의 책임이 있고 이를 어떻게 책임져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 수의사는 "전작 '동물, 원'을 통해 실질적으로 관련 예산이 늘고 동물들의 환경을 바꿀 수 있었다"며 "이번 영화를 통해 동물원도 바뀌고, 생크추어리도 만들어지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고은경 동물복지 전문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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