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감독관들이 직장내괴롭힘 사건 기피하는 이유

백승현 2024. 6. 13.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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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 CHO Insight


2019년 7월부터 시행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2021년 한 차례 개정을 거치면서 직장 내 성희롱 금지법 못지 않은 ‘막강한 법’으로 자리 잡았다. 괴롭힘 금지법은 1999년 남녀고용평등법에 정의가 법정된 이후 다섯 차례의 개정을 통해 강화되어온 직장 내 성희롱 법제의 구조와 형식 그리고 행정과 형사벌을 수반하는 강력한 제재를 장착하고 있다. 다양한 논의와 사건을 거치면서 30여년의 성숙의 시간을 거쳐온 성희롱 법제의 결실을 고스란히 탑재한 괴롭힘 금지법을 받아들이는 현장의 사정은 심상치 않다. 사방에서 “이것도 직장 내 괴롭힘인가요?”라는 질문으로 허둥지둥하는 사례를 목격하게 된다.

을질도 괴롭힘인가요?
괴롭힘 행위를 하지 않아야 할 대상은 주로 대표이사, 임원, 팀장 등 상사들로 이해된다. 그러나 상사들도 부하직원들로 인해 괴로움을 호소하고 있다. 특히 40~50대 상사들은 ‘3요(“제가요? 이걸요? 왜요?”)’를 외치는 2030세대 직원들과의 소통과 업무 지시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리더들의 첫 번째 질문은 ‘을질’ 또는 ‘역갑질’도 괴롭힘에 해당하느냐는 것이다. 근로기준법 제76조의2는 ‘관계상 우위’라는 개념을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다. 최근 법원과 노동위원회에서는 다수의 을들이 상사를 모욕하고 고립시키는 행위에 대해 선례를 쌓고 있다. 예를 들어, 금융회사에서 연장자인 팀원이 다른 팀원과 합세하여 여성 상사를 모욕한 행위가 괴롭힘으로 인정된 사례가 있다(2020구합74627). 또한, 노동위원회는 19명의 그룹원이 그룹장을 상대로 연판장과 시위를 통해 사임을 요구한 행위를 괴롭힘으로 판단하였다(중앙2022부해1388). ‘갑’의 행위를 방지하자는 취지로 입법되었지만, 구성원 모두의 괴롭힘을 금지하는 법체계 상 ‘을’도 당연히 행위자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후라이드 치킨 주는 것도 괴롭힘?
행복한일연구소가 40여 기관을 대상으로 시행한 직장 내 괴롭힘 실태조사에 따르면, 부정적 행위의 경험률은 여성이 남성보다, 2030대가 40~50대보다 높았다. 같은 조직에서도 인적 특성에 따라 부정적 행위를 인지하는 빈도와 정도가 다르다는 점은, 호의적 의도를 가졌더라도 행위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부정적으로 인식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주로 세대간 인식 격차가 큰 행위들은 ‘사적 공간 침해’와 같은 행위들이다. 타지에 단신 부임해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신입직원을 애틋하게 여긴 상급자가 휴일에 기숙사에 들러 후라이드 치킨을 주었다고 생각해보자. 자칫 이 ‘친절한 관리자’는 업무외 시간에 무례하게 부하직원의 시간과 공간을 침해한 ‘피신고인’의 지위에 설 수 있다. MZ들이 조직의 중심그룹을 차지해가고 있는 상황이다. 세대별로 일터라는 공적 공간에서 맺는 관계성에 대한 인식과 기대가 다르다는 것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세대갈등이 아니라 다양성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다.

경영상 필요한 지시로 인한 괴로움은 괴롭힘이 아니다
기술변화가 급속히 일어나고 경쟁환경이 악화되는 상황에 기민하게 대응해야 하는 임원과 관리자로서는 제대로 일하지 않고 남 탓만 하는 불성실한 직원에게 따끔하게 일을 가르치지만 후환이 두려운 것도 사실이다. ‘괴로우면 괴롭힘’이라는 생각을 가진 부하직원에게 일을 시키다가 갑질로 신고당한 동료들 이야기가 회자되면서 관리자들이 위축되고 있다.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업무를 수행하는 관리자들이 줄어들고, 공공에 이어 민간에서도 관리자 승진을 마다하는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 호주와 같은 국가에서는 괴롭힘의 개념을 추상적으로 알리는 수준에서 벗어나, 경영상 필요한 업무를 수행하거나 정당한 업무지시라면 괴롭더라도 괴롭힘이 아니라는 가이드라인을 명확하게 제시하여 이러한 혼란을 극복해오고 있다. 가까운 일본에서도 기업 전체가 프로젝트로 바쁜 경우 야근이나 과로가 있다고 하더라도 괴롭힘이 아니라는 지침을 분명히 제시하고 있다. ‘업무상 적정범위’에 대한 판단 기준이 보다 정교해지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다.

근로감독관 한명이 괴롭힘 여부 판단?
각각의 사안들이 괴롭힘에 해당하는지 판단하는 과정은 매우 복잡하다. 성희롱이 ‘성적언동’의 판단에 따른다면 괴롭힘의 경우 일하는 세계의 모든 요건들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고통’이라는 개념을 포함하는 직장 내 괴롭힘의 정의는 주관적이고 애매하다. 일반적인 근로기준사건을 처리해온 근로감독관에게 기업의 특수한 구조와 심리적 역동성이 작동하는 직장 내 괴롭힘 사건에 대한 전적인 판단권한이 주어지는 것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부담이다. 수차례 재진정된 사건이 괴롭힘 판단을 번복하는 사례를 보더라도 근로감독관 1인의 단독판단에 한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적어도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전문성을 갖출 것을 전제로 중앙노동위원회와 같은 심판기관이 담당해야 할 일이다.

명확한 행동지침을 제시하자
누군가 괴롭힘 판단을 해준다고 해도 문제가 모두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각 직장은 조직문화와 구성원들의 부정적 행위 실태를 진단하고, 심도 있는 소통을 통해 ‘하지 말아야 할 행동’과 ‘개선해야 할 행동’을 정의하여 이를 가이드라인으로 만들고 실천해야 한다. 최근 기업들은 조직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Code of Conduct(행동강령, 윤리규범)’를 통해 애매한 영역을 명확히 하고 구체화하고 있다. 호주의 ‘Safe Work’ 캠페인은 괴롭힘에 해당하는 것과 아닌 것의 기준을 명확히 제시하고, 구성원 간 사회적 관계의 건강성을 확보하기 위해 높은 품질의 교육 자료와 실무 도구를 제공하고 있다. 우리 법은 취업규칙에 직장 내 괴롭힘 예방과 조치를 작성하도록 하고, 정부의 직장 내 괴롭힘 예방조치 기준 제시 의무도 산업안전법에 명시하고 있다. 호주와 같은 모범 사례를 적극 벤치마킹하여 중소 영세기업까지 괴롭힘 없는 건강한 조직이 되도록 노력하여야 하며, 이는 선택이 아닌 의무임을 유념해야 한다.

문강분 행복한일연구소/노무법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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