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이혼과 대법원 책무[뉴스와 시각]

김병채 기자 2024. 6. 13.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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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2심은 대한민국에서 있었던 이혼 소송 중 가장 많은 관심을 받았다.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재산 분할금 1조3800억 원, 위자료 20억 원을 지급해야 하는 결과는 예상하기 어려웠다.

사실 최 회장과 노 관장 간 소송에서 가장 논쟁이 되는 비자금과 정경유착의 재산 기여 인정 여부는 부차적인 문제일 수 있다.

최 회장과 노 관장 2심에서 재산 분할 비율은 65 대 35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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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채 사회부 차장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2심은 대한민국에서 있었던 이혼 소송 중 가장 많은 관심을 받았다.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재산 분할금 1조3800억 원, 위자료 20억 원을 지급해야 하는 결과는 예상하기 어려웠다. 이러한 의외성과 함께 역대 최고 재산 분할액과 위자료, 재벌과 대통령 딸이라는 등장 인물에 비자금까지 나온다. 법원에서 유책 배우자로 본 최 회장의 불륜 상대도 대중에게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었다. 주식 시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안이라는 점에서도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요즘 유행하는 재벌 소재 드라마 작가나 제작자들도 이 모든 요소를 담아내려는 상상을 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야말로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대중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재미있는 사건이지만, 앞으로 이 사건을 심리해야 할 대법관들은 불안감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논쟁적 요소가 많고 선례도 없어 재판을 맡으면 골치가 아프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원칙적으로 법률심인 상고심은 사실관계에 대해 다툴 수 없기 때문에 심리 없이 판결이 확정(심리불속행 기각)될 가능성도 거론하지만, 이는 대법원의 직무유기에 가깝다. 향후 이혼 재판에서 예측 가능성을 높이려면 대법원은 국민 관심이 높은 이 사건에 대해 명확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

사실 최 회장과 노 관장 간 소송에서 가장 논쟁이 되는 비자금과 정경유착의 재산 기여 인정 여부는 부차적인 문제일 수 있다. 이처럼 재산 분할 액수가 많고, 비자금과 정경유착을 경험할 수 있는 부부는 극소수다. 재벌과 전직 대통령이라는 인물적 요소와 20세기라는 시대적 요소가 결합됐기 때문에 나온 사례였다.

일반적으로 본다면 이 사건을 통해 대법원은 특유재산의 법리를 우선 확립해야 한다. 특유재산은 부부가 혼인 생활 중 이룬 재산이 아닌 유산 등 부부 중 한 개인에게 귀속되는 재산을 말한다. 미국의 이혼 사건을 자주 접한 변호사들에 따르면 미국은 특유재산의 인정 범위가 매우 넓다고 말한다. 한 변호사는 “최 회장, 노 관장 사건은 미국에서 벌어졌으면 SK 주식은 아예 분쟁 대상이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을 따라가자는 얘기가 아니다. 한국의 현실에 맞는 원칙을 세워야 한다. 1심과 2심이 극단을 오간다면 판결의 신뢰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재산 분할 비율에 대해서도 예측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최 회장과 노 관장 2심에서 재산 분할 비율은 65 대 35였다. 2심에서 노 관장의 재산 분할액은 20배로 늘었지만, 분할 비율은 더 줄었다. 1심에서는 60 대 40이 제시됐다. 결혼 이후 자산을 일군 기업 소유주 이혼 사건에서는 최근 재산 분할 비율이 50 대 50으로 나온 사례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법원은 이에 대해서도 하급심의 기준을 분명히 세워줄 필요가 있다. 위자료 액수도 이 재판에서 주목해야 할 요소다. 기존 대법원에서 인정한 이혼 위자료 최고 액수는 3억 원으로 알려졌다. 일반인 사건에서는 대부분 3000만 원을 넘지 못해 현실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위자료의 편차를 줄여주는 것도 대법원이 해야 할 일이다.

김병채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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