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column] 한국 축구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정몽규 회장의 ‘4선 연임’은 안 된다
[포포투] 'IF'의 사전적인 의미는 '만약에 ~라면'이다. 은 '만약에 내가 축구 기자가 된다면'이라는 슬로건을 가지고 누구나 축구 전문 기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시작됐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부수를 발행하고 있는 'No.1' 축구 전문지 '포포투'와 함께 하는 은 K리그부터 PL, 라리가 등 다양한 축구 소식을 함께 한다. 기대해주시라! [편집자주]
“한국 축구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이번에 우승해선 안됩니다.”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카타르 아시안컵 개막이 채 한 달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나왔던 손웅정 감독의 발언이다. 큰 파장이 일었다. 어느 때보다 막강한 전력으로 64년 만의 아시안컵 우승에 도전하는 상황, 축구계 주요 인사들과 팬들은 장밋빛 전망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과 1년 사이 손 감독의 발언은 현실이 됐다. 한국 축구는 전대미문의 위기에 빠졌고 그 중심엔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있었다. 끝이 아니었다. 정 회장은 눈과 귀를 닫은 채 한국 축구의 새로운 4년을 다시 지휘하려 한다. 손 감독의 발언을 빌려 소신을 전하고 싶다. “한국 축구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4선 연임은 안됩니다.”
# 한 조각씩 맞춰지는 ‘4선 연임’ 퍼즐
대한체육회는 지난 31일 이사회를 열어 임원 연임 제한을 폐지하는 내용의 정관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현행 정관에 따르면 임원은 4년 임기 후 한 차례 연임이 가능하다. 추가 연임의 경우에는 체육회 산하 스포츠공정위원회 심의를 통과해야 한다. 만약 이번 개정안이 상위 기관인 문화체육관광부 승인까지 받는다면 연임 제한은 사라진다. 이는 정 회장이 ‘4선 연임’을 원할 경우, 별도의 심의 과정 없이 차기 협회장 선거에 출마할 수 있다는 해석으로 이어진다.
누군가를 위한 밥상이 차려지는 동안, 그 누군가는 식당으로 향했다. 정 회장은 지난 16일 열린 제34회 AFC 총회에서 동아시아 지역 집행위원 후보에 단독 출마해 당선됐다. AFC 집행위원회는 아시아 축구 최고 집행 기구로 AFC 행정의 주요 의사결정 권한을 보유하고 있다. 그의 당선 직후 대한축구협회(KFA)는 “정 회장은 임기 동안 아시아축구의 방향성과 정책에 대한 목소리를 내고, 국제축구 무대에서 한국 축구의 영향력을 높일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정 회장은 2027년 정기총회까지 집행위원 임기를 수행한다.
불과 일주일 뒤 또 하나의 퍼즐 조각이 맞춰졌다. 협회는 지난 23일 2028년까지 HDC, HDC현대산업개발과 공식 파트너십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정 회장은 HDC 그룹의 대표를 역임하고 있으며, HDC현대산업개발은 HDC 그룹의 핵심 사업사다. 정경구 HDC 대표이사는 “대한민국 축구의 성장과 성공을 함께 만들어갈 수 있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며 “이번 파트너십을 통해 HDC와 HDC현대산업개발이 축구와 스포츠를 사랑하는 팬들과 더 가까워지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흩어진 조각들을 한곳으로 모아볼 때, 완성된 퍼즐의 모습이 가늠된다. 정 회장과 주변 정황을 미뤄볼 때, 정 회장은 대한축구협회장 ‘4선 연임’을 위한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추측할 수 있다. 단순 의혹이라 치부할 수 없다. 정 회장이 쌓고 있는 이력을 비춰볼 때, 이보다 이상적인 시나리오는 없다. 그렇다면 판단할 차례다. 대한축구협회장은 4년의 임기 동안 우리나라 축구계 전반을 이끌 리더다. 국가대표팀은 물론 ▲한국프로축구 경쟁력 강화 ▲미래인재 육성 ▲국제 경쟁력 강화 등 축구 산업 저변을 확대하고 총괄하는 막중한 의무를 진다. 과연 정 회장은 ‘한국 축구의 새로운 4년’을 책임질 자격을 갖추고 있을까. 그의 지난 행보를 고려한다면 답은 분명하다.
# 논란의 연속이었던 정 회장의 지난 12년
정 회장은 이른바 ‘꼼수 사면’ 사건으로 논란을 쌓기 시작했다. 협회는 지난해 3월 28일 우루과이와의 평가전을 앞두고 서울월드컵경기장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열어 각종 비위로 징계를 받은 축구인 100명의 사면을 결정했다. 이후 경기 라인업 공개 6분 전 보도자료를 통해 사면 결정을 발표했고, ‘월드컵 16강 진출’을 기념하는 차원이라 덧붙였다. 그러나 사면 대상자 명단에는 ‘2011년 K리그 승부조작 사건’에 연루된 주요 인물들이 포함돼 있었다.
협회가 갑작스러운 사면을 발표하자 축구 관계자와 팬들은 거센 비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상위기구인 대한체육회마저 사면을 인정할 의사가 없다고 밝혔다. 한국 축구의 근간을 훼손한 사건인 만큼, 누구보다 중립과 공정을 지향했어야 할 협회였다. 그러나 사회적 공감대를 전혀 형성하지 않은 채 일방적이며 독단적인 ‘통보’를 단행했다. 결국 정 회장은 불과 3일 만에 ‘사면안 전면 철회’를 발표했다. 이어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보다 나은 조직으로 다시 서는 계기로 삼겠다”며 사죄했다.
그러나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 논란 속에서 정 회장의 감춰진 문제가 드러났다. 지난해 2월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된 클린스만은 부임 후 5경기에서 단 한 차례도 승리하지 못했다. 문제는 성적보다 태도에 있었다. 클린스만 감독의 계약 조건에는 ‘한국 상주’라는 조건이 포함됐다. 이는 K리그 경기를 살피며 선수를 발굴하고 점검하는 목적을 지닌 조항이다. 그러나 그는 한국에 상주하지 않았고, 해외파 선수들을 점검한다는 명목으로 해외로 향했다. 워크에식이 결여된 감독의 지휘 아래 경기력은 개선될 수 없었다. 아시안컵 토너먼트에서 매 경기 힘겨운 승부를 펼치던 국가대표팀은 결국 ‘8강 탈락’이라는 처참한 결과를 맞이했다. 그러나 클린스만 감독은 탈락 직후 기자회견에서도 미소를 짓는 등 비상식적인 행동을 보이며 사태의 심각성을 자각하지 못했다.
결국 비판은 감독 선임 과정으로 향했다. 선임 과정부터 클린스만 감독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국가대표팀 감독은 협회 산하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회를 거쳐 선임된다. 전력강화위 논의를 통해 후보를 간추린 뒤, 심층 면접을 거쳐 최종 감독을 결정하는 식이다. 그러나 클린스만 감독 선임 당시 이러한 절차가 진행 됐는지 명확하게 밝혀진 바는 없다. 아울러 정 회장은 이전부터 클린스만 감독과 개인적 친분을 가지고 있었다. 사태의 전말이 드러나자, 정 회장이 절차를 무시한 채 ‘이름값’과 ‘친분’만으로 독단적인 결정을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다. 그러나 정 회장은 공식 입장 발표 없이 얼굴을 숨겼고, 정해성 전력강화위원장 또한 명쾌한 해명을 내놓지 않았다. 결국 정 회장은 지난 2월 거액의 위약금을 지불하며 클린스만 감독을 경질했다.
협회는 이전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당시 U-23 국가대표팀을 지휘하던 황선홍 감독을 성인 국가대표팀 임시 감독으로 선임했다. 황 임시 감독은 2026 북중미 월드컵 2차 예선 2연전에서 1승 1무의 성적을 기록하며 소임을 다했다. 그러나 U-23 아시안컵을 불과 한 달여 앞둔 상황, U-23 대표팀까지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결국 U-23 대표팀은 아시안컵 8강 탈락과 동시에 2024 파리 올림픽 진출권 획득까지 실패했다. 정 회장의 독단적인 감독 선임이 한국 축구의 몰락을 야기했다는 비판이 빗발쳤다. 클린스만 감독 경질 이후 약 4개월이 흐른 지금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은 여전히 공석이다.
# 제55대 대한축구협회장의 제1책무는 ‘개혁’이어야 한다
나열된 사실만을 미루어봐도 답은 명확하다. 정 회장의 시대는 끝났다. 그의 지난 임기를 성적으로 산출한다면 F학점이라 할 수 있겠다. 쌍방향적 소통, 공정한 절차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특정 강의 F학점을 받은 학생은 재수강 제도를 통해 동일한 강의를 다시 수강할 수 있다. 그러나 대한축구협회장 자리는 그럴 수 없다. 과거 기록은 갱신되지 않으며, 한국 축구에 새로운 미래를 제시할 수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정 회장은 수많은 비판과 개선 요구에도 단 한 마디의 해명조차 하지 않는다. 그의 행보는 마치 눈가리개를 쓴 채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와 같다. 소통도, 개혁의지도 없는 정 회장은 무엇이 문제인지도 모른 채 ‘4선’만을 바라보며 달리고 있다. 그가 그리는 한국 축구의 새로운 4년은 결코 새롭지 않을 것이다.
제55대 대한축구협회장의 제1책무는 ‘개혁’이어야 한다. 모든 절차가 공정하고 투명하게 진행될 때, 지도자가 국민의 목소리를 듣고 답할 때 개혁은 성립된다. 그 대상은 지난 12년 그 자체다. 다시 한 번 아시안컵을 앞둔 손 감독의 발언을 떠올려보자. 손 감독은 해당 발언에 이어 “당연히 한국이 우승하길 바란다. 그러나 이렇게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우승해버리면 그 결과만 가지고 얼마나 또 우려먹겠느냐. 그러다가 한국 축구가 병들까 걱정된다”고 덧붙였다. 그의 발언처럼, 한국 축구는 아시안컵 우승에 실패함으로써 가려졌던 문제와 원인을 비로소 파악할 수 있었다. 이제 그 문제를 타파하고 성장을 위해 달릴 시점이다. 정 회장은 과연 개혁을 이끌 수 있는 인물인가. 답은 여전히 동일하다. 다시 한 번 손 감독의 발언을 빌려 소신을 전한다.
“한국 축구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4선 연임은 안됩니다.”
글=‘IF기자단’ 3기 박진우
포포투 fourfourtwo@fourfourtwo.co.kr
ⓒ 포포투(https://www.fourfourtwo.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Copyright © 포포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