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연준의 금리인하 신호...이창용 총재 앞에 놓인 두갈래 길 [송성훈 칼럼]

송성훈 기자(ssotto@mk.co.kr) 2024. 6. 13.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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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B처럼 먼저 금리 내릴지
美연준 기다릴지 선택이 중요
내수침체 심각해 늦지 말아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2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한국은행 창립 제74주년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낭독하고 있다. [사진 제공=한국은행]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천천히 서두름(Festina Lente)’의 원칙을 되새겨볼 때라고 12일 말했다. 한국은행 창립 74주년 기념사에서인데, 최근 금리정책을 놓고 고민하는 이 총재의 속내가 그럴거 같다.

유럽중앙은행(ECB)이 먼저 치고 나왔다. 과거 유럽이 미국에 앞서 금리를 내린 적이 있었나 싶어서 그래프를 쭈욱 돌려봤다. 통화정책 전환을 의미하는 피봇 국면에서 유럽이 선제적으로 움직인 건 처음이다.

지난 6일 유럽중앙은행이 단행한 금리인하로 경제학계에서 논쟁이 뜨겁다. 유럽은 미국의 80% 정도 되는 경제권이고 각종 거시지표 흐름도 비슷하다. 미국과 유럽이 다를 게 없지 않냐는 것이다.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은 곧바로 날을 세웠다. 사설을 통해 물가상승률이 목표치에 다가섰다고 확신하기 힘들고, 1분기 성장률도 견조한데 금리를 내리면 환율만 불안해질 수 있다는 우려다. 경기를 진작하려면 차라리 제조업체들 목을 죄고 있는 독일의 친환경에너지정책, 한계기업 구조조정을 막고 있는 이탈리아의 파산법, 기업가정신을 질식시키는 프랑스의 세금부터 폐기하기나 뜯어고치는게 낫다고 지적했다.

반면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같은 날 정반대의 사설을 내놨다. 금리를 너무 오래, 너무 높게 붙잡아뒀다간 물가가 급락하면서 성장률까지 크게 끌어내릴 수 있다고 진단했다. 경제지표가 낙관적으로 보이지만 대출여건이나 고용시장 상황이 악화되고 있기 때문에 목표 물가상승률(2%)까지 물가가 떨어지길 기다리다간 너무 늦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의 폴 크루그먼 교수는 아예 대놓고 유럽중앙은행 결정이 옳고, 미국 연준은 틀렸다고 단언했다. 고용시장에서 미국 경기둔화 조짐이 뚜렷해지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1년 뒤에나 반영되는 집값 변수를 제외하고 물가를 다시 계산해보면 이미 물가상승률은 목표수준인 2%에 근접했다고 분석했다. 이제는 금리를 인하해도 된다는 논리다.

경제학계에선 물가상승률 목표를 기존 2%가 아닌 4%로 올려야한다는 주장도 다시 거론되기 시작했다. 그래야 선제적인 인하가 가능해 중앙은행 금리정책 운용 폭을 좀더 넓힐 수 있어서다. 올리비에 블랑샤르 MIT 교수를 비롯한 경제학자들 논리다.

이같은 논쟁은 그대로 한국으로 옮겨서 봐도 될 정도다. 미국과 유럽에서처럼 금리동결의 이유가 100가지라면, 금리를 내려야하는 논리도 100가지 내세울 수 있다.

그래서 금리는 메시지다. 돈의 흐름을 실질적으로 틀어 부(富)를 재분배해서다.

사실 한국 거시경제지표는 전체적으로 경기회복세를 보여주지만, 통계숫자 뒷면을 보면 아슬아슬하다. 대기업 중심의 수출 호조에 힘입어 경기는 완연한 회복추세다. 다만 그 온기가 내수로 이어질 못하고 있다. 회복은 커녕 오히려 더 악화되는 상황이다. 당장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 연체율이 비상이다. 사실상 부도상태에 놓인 중소기업들이 코로나때보다 더 많을 정도다. 한쪽에서 경기회복이, 다른 한쪽에서는 경기침체를 보여주는 지표가 뒤섞이는 이유다.

금리 메시지의 방향은 분명하다. 내수기업과 중소·자영업자들의 금리 고통을 덜어줘 전체적인 거시경제의 균형을 잡아야한다. 최근 집값과 물가 급등이 금리 외적인 요인이 더 크다는 점은 이미 확인하지 않았나. 아파트공급 늘릴 대책을 세우고, 농수산물 수입확대를 통한 생활물가 안정이 오히려 더 시급하다. 금리하락에 따른 환율불안은 수출 대기업이나 해외여행자들에게 부담이 되겠지만, 중소·자영업자의 고통을 분담한다는 명분이면 충분하다.

이창용 총재도 이제 인플레이션과 싸움 막판이라고 밝혔다. 과거 한은은 금리를 올려도 찔끔, 내려도 찔끔이었다. 외환위기 이후 한미간 기준금리 흐름을 그래프로 살펴보면 확연하게 드러난다. 실제로 코로나 이후 한국이 0.5%에서 3.5% 올리는 동안, 미국은 0.25%에서 5.5%까지 인상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때도 미국은 5%포인트 가량 인하했지만, 한국은 3%포인트 내리는데 그쳤다. 금리운용폭이 그만큼 적었다는 얘기다. 복지부동식 금리정책보다 이제는 선제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물론 금리인하는 일시적인 경기진작일뿐 근본적인 해법은 아니다. 내수 숨통을 잠시 틔울 뿐이다. 지속적인 금리인하보다는 한두차례 금리인하를 거론하는 이유다.

유럽의 길과 미국의 길, 아니면 한국만의 길을 갈지는 온전히 한은의 선택이다. 다만 메시지는 분명해야한다.

송성훈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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