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하는 아빠 과학자]⑥ "장기 연구하려면 육아휴직 꼭 써봐야"
<편집자 주> 육아휴직을 쓰는 아빠가 늘고 있다고 합니다. 과학기술계에서도 느는 추세지만 현장 경험과 연구 지속성이 과학자에게 중요한 만큼 자녀를 위해 연구를 멈추는 건 쉽지 않습니다. 연구의 꽃을 피워야 하는 시기인 30, 40대 아빠 과학자에게 육아휴직은 어려운 결정입니다. 하지만 과학기술계도 예외여서는 안됩니다. 장기적으로 일과 가정이 양립해야 인재가 지속적으로 유입되기 때문입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동아사이언스는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WISET)과 함께 육아휴직, 단축근무 등 육아지원 제도를 활용하는 과학자들을 직접 만났습니다. 남성 과학자가 겪는 현실 육아, 필요한 육아지원 제도, 아빠가 되면서 달라진 삶과 일에 대한 태도 등을 릴레이 인터뷰를 통해 생생히 들여다 봅니다. 과학자를 꿈꾸는 이들에게 '육아'가 걸림돌이 되지 않는 합리적, 현실적인 방안을 함께 고민해 보기를 기대합니다.
박사후연구원(post-doc·포닥)은 박사 과정을 마친 후 전문적으로 연구를 수행하는 연구자다. 대학에서 오랫동안 이어온 공부의 결실을 맺을 수 있는 위치다. 결실을 밑거름 삼아 교수가 되거나 기업, 연구소 등에 자리를 잡아 연구를 진행한다. 바꿔 말하면 매우 불안정한 시기이기도 하다. 안정적인 곳에 둥지를 틀기 직전이기 때문이다.
김용규 기초과학연구원(IBS) 시냅스뇌질환연구단의 박사후연구원은 2023년 육아휴직을 1년 가량 썼다. 남성 과학자이자 계약직인 박사후연구원으로 육아휴직을 쓴 것이다. 김 연구원은 "우리 가족이 행복하게 지내면서 과학 연구를 오래 이어가고 싶은 마음이 커 육아휴직을 쓰는 결정을 했다"고 말했다. 김 연구원을 지난달 31일 대전 IBS 시냅스뇌질환연구단 본원에서 만났다.
김 연구원은 2021년 9월 15일 시냅스뇌질환연구단에 합류했다. 입사한 지 13일만에 자녀가 태어났다. 서울에서 IT 교육 기업에서 왕성하게 일하던 아내는 육아휴직을 사용해 IBS가 있는 대전에 김 연구원과 함께 왔다. 김 연구원은 "대학을 8년 다녔고, 약 10년의 석박사 과정을 끝낸 뒤 연구를 하다보니 마흔이 됐다"면서 "자녀 계획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자녀는 너무 사랑스러웠지만 육아의 어려움 때문에 김 연구원과 아내가 다투는 일이 잦아졌다. 대전은 서울에서 나고 자란 김 연구원과 아내에게 낯선 곳이었다. 자녀를 잠시라도 맡길 수 있는 친인척도, 일상을 공유할 친구도 한 명 없었다. 김 연구원이 밤 늦게까지 연구를 하고 오는 날이 잦았다. 아내에게 산후우울증이 찾아오기도 했다. 자녀가 태어난 뒤 약 1년이 다 될 무렵, 김 연구원은 아내에게 "안 되겠다. 내가 육아휴직 써 볼게"라고 말했다.
동료들은 표정이 어두운 김 연구원을 걱정했다. 김 연구원은 "제 사정을 들은 동료가 육아휴직을 써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면서 "가장 긴밀하게 일하는 동료라 제가 연구를 쉬면 타격을 받을 수 있었을 텐데도 '가족부터 챙겨요'라고 말해줬다"고 말했다. 육아휴직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선택지였다. 연구를 쉬어야 한다는 점이 앞으로의 커리어에 영향을 줄까 걱정됐지만 당시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IBS 규정에 따라 박사후연구원으로 육아휴직을 쓸 수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 김 연구원은 김은준 시냅스뇌질환연구단장을 찾았다.
"단장님께 아내가 최근 많이 힘들어한다는 이야기를 조심스레 꺼냈어요. 아내가 사회생활을 다시 하면 회복될 것 같다고 말하며 육아휴직을 써야할 것 같다고 말했어요. 단장님은 '가족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다녀와서 더 열심히 연구 해봐라'라면서 흔쾌히 휴직 쓰는 것을 허락했어요. 같은 프로젝트를 하는 동료, 직속 상사가 모두 육아휴직을 이해해준 거예요. 운이 좋았어요."
2023년 1월 육아휴직을 쓰고 김 연구원 가족은 수도권으로 이사왔다. 바로 가족에 활력이 돌았다. 김 연구원이 육아를 전담하며 아내는 해외 출장을 가는 등 몰입해서 일을 했다. 김 연구원도 "오래 연구를 이어가며 좋은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살았다"면서 "휴직을 하니 그 압박에서 잠시 벗어나 너무 사랑하는 자녀와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자체가 행복했다"고 말했다. 휴직 중 틈틈이 연구실을 찾아 동료와 연구하는 기계가 잘 작동하는지 확인하고 연구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토론하기도 했다.
올해 초 복직한 김 연구원은 그동안 밀린 연구를 하느라고 바쁘다. 김 연구원은 시냅스뇌질환연구단에서 동물 모델을 활용해 자폐증과 관련된 운동기억을 연구한다. 동물 모델로 실험을 많이 할수록 연구 결과가 쌓이기 때문에 휴직으로 인해 연구성과가 정체됐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주말 근무도 자청하며 연구에 매진 중이다. 김 연구원은 "미래에 대한 걱정은 남아있지만 휴직 뒤 돌아와서 연구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보고 있다"고 했다.
김 연구원은 1년 전으로 돌아가도 육아휴직을 쓰겠다고 말했다. 과학자로서 연구와 가정의 균형을 맞추는 연습을 육아휴직을 하며 많이 배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연구엔 끝이 없어요. 그러다보니 정해진 시간 없이 연구실에서 밤을 새며 연구를 하는 과학자들이 많아요. 하지만 과학자들도 언젠가 대부분 가정이 생겨요. 가정을 유지하려면 전처럼 연구패턴을 유지하기 어려워요. 연구와 가정의 균형을 맞춰야 하는 거예요. 어차피 계속 과학자를 직업으로 삼을 것이라면 언젠간 마주할 일입니다. 미리 겪으며 지속가능하게 과학 연구를 할 수 있는 대비를 한 셈이라고 생각해요."
이어 "대학, 연구소 등에서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 점을 이해하고 박사후 연구원도 육아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 좋겠다"면서 "석박사과정생, 박사후 연구원, 교수, 책임연구원 모두 과학자다"라고 덧붙였다.
이하 김 연구원과의 일문일답.
Q. 박사후 연구원은 어떤 고민을 하는 시기인가.
"거취에 대한 고민이 많다. 해외로 나갈 것인가, 국내로 나갈 것인가부터 국내에 머문다면 어떤 연구소, 대학을 갈 것이냐를 고민해야 한다. 내가 앞으로 하고 싶은 연구를 어디에서 할지, 어떤 지도 교수님께 배워야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지도 생각한다. 성과를 어떻게 교수, 연구소 연구원 등 안정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일로 연결할 수 있는지도 주된 고민이다. 가정이 있으면 더 복잡해진다."
Q. 전공 분야인 '신경생리학'은 기초과학이다. 기초과학 박사후 연구원의 고민이 더 있을 것 같다.
"기초과학은 국내 기업체에서 주로 찾는 전공이 아니다. 연구를 이어갈 수 있는 곳이 전국에서 손에 꼽히게 적다는 뜻이다. 특히 신경생리학은 기초과학 중에서도 좁은 분야다. 관련 연구소도 대부분 지방에 흩어져 있다."
Q. 육아휴직 전 했던 고민은.
"커리어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아내도 내 커리어에 방해될까봐 육아휴직을 선뜻 제안하지 못했다. 경제적인 부분도 걱정됐다. 휴직 기간 동안 수입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게 대수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함께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육아휴직 후 일과 가정의 균형을 찾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Q. 시냅스뇌질환연구단의 첫 남성 육아휴직자였을 것 같다.
"맞다. 연구단에 40~50명이 있는데 첫 남성 육아휴직자다. 다른 연구실과 마찬가지로 행정직 외에는 대부분 계약직 신분이라 육아휴직을 쓰기는 쉽지 않다. 연구단 내 여러 명과 함께 팀으로 일하고 있었으면 육아휴직을 쓰기 어려웠을 것 같다. 동료 한 명과 긴밀하게 일하고 있어서 가능했다."
Q. 남성이 육아휴직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나.
"꼭 써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담 육아를 지속적으로 해본 경험이 있으면 육아에 대한 시야가 넓어진다. 자녀와 하루를 보낼 때 무엇이 필요하고 어떤 일을 해야하는지 머릿속으로 쫙 그려진다. 예를 들면 저녁을 먹을 거면 언제부터 무엇을 준비해야 하고, 낮잠은 언제쯤 몇 시간 자야하고, 낮잠 자기 전 무엇을 준비해 놔야 하는지를 계획한다. 아내가 미국으로 열흘 출장을 가서 독박육아를 해야 했는데 자신 있었다."
Q. 육아휴직 뒤 아내에게 들었던 생각은.
"아내가 혼자 육아를 했을 때 '혼자만의 시간을 더 많이 줄 걸'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주말이 되면 아내, 자녀와 함께 여행을 다니곤 했다. 육아휴직을 해보니 가족과 잠시 떨어져 혼자 생각하고, 보내는 시간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육아휴직을 하기 전에 몰랐던 세계가 있던 것 같다."
Q. 앞으로의 목표는.
"연구를 하며 가슴이 뛰는 경험을 많이 했다. 앞으로도 계속 과학을 하고 싶다. 어떤 자리에 도달하는 것은 목표가 아니다. 묵묵하지만 길게 연구를 하고 싶다. 다만 안정적, 연속적으로 연구를 이어갈 수 있는 시설이 국내에 많아졌으면 좋겠다."
[이채린 기자 rini11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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