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총새는 ‘물고기 잡는 호랑이’…사냥 땐 ‘물안경’도 쓴다는데

한겨레 2024. 6. 13.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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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윤순영의 자연관찰 일기
총알 같은 속도로 물 속으로 다이빙
파란 깃털 뽐내며 냇가를 누비는 사냥꾼
나무에 부딪혀 기절시키고 머리부터 삼킨다.

보석처럼 파란 깃털이 아름다운 물총새는 봄부터 가을까지 강가나 냇가, 산과 들에 흐르는 작은 물줄기 위로 바쁘게 날아다닌다. 물속으로 뛰어드는 속도가 총알처럼 빨라 물총새란 친근한 이름을 얻었다. 물총새가 울음소리도 내지 않고 눈앞을 휙 지나가면, 방금 뭐가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빠른 속도로 난다.

물총새는 노랫소리가 따로 없다. 비행할 때 짧고 날카로운 ‘찌잇’ 소리를 두세 번 반복한다. 몸길이가 17㎝ 정도인 물총새는 몸에 비해 머리는 크지만 꼬리는 짧다. 붉은 다리와 긴 부리를 지녔다.

물속으로 뛰어드는 속도가 총알처럼 빨라 물총새라는 이름을 얻었다. 빠른 속도를 내기 위해 횃대 위에서 뛰어올라 낙하하고 있다.
부리 전체가 검은색인 물총새 수컷. 부리 색으로 암수가 구분된다.
아래 부리가 붉은 물총새 암컷.

수컷의 부리는 전체가 검은색이지만, 암컷은 아래 부리가 주황색이다. 몸 윗면은 전반적으로 녹색을 띤 푸른색이고, 등은 매우 선명한 파란색이다. 멱은 흰색, 가슴과 배는 진한 주황색인데, 나뭇가지나 풀잎 사이에 앉아있을 때는 훌륭한 보호색이 되어서 자세히 관찰해도 잘 보이지 않는다.

5월 말 경기 양주시 효촌저수지 야외 먹이터에 물총새가 찾아왔다. 물총새는 맑고 깨끗한 물을 좋아한다. 물고기가 건강하게 서식할 수 있는 맑은 물이라야 사냥감도 잘 보이기 때문이다. 물총새는 주로 작은 물고기들이 모여있는 물 가장자리를 날아다니며 사냥을 한다. 자연스레 물총새가 보인다면 주변 생태환경이 우수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총새는 생태계의 중요한 구성원이며 민물 지역의 생태 건강성을 나타내는 좋은 지표다.

물총새 사냥의 순간.

날쌘 사냥 실력 덕분에 ‘물고기 잡는 호랑이’(漁虎)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부리가 길고 뾰족해 물고기를 잡기에 알맞다. 물가에서 인내심 있게 기다리다가 사냥감이 사정권 안에 들어오면 쏜살같이 물속으로 뛰어들어 물고기를 낚아챈다. 수면 위를 날다가 사냥감이 보이면 황조롱이처럼 정지비행을 한 뒤 바로 물속으로 몸을 던져 사냥하기도 한다.

사냥감이 되는 물고기의 몸길이는 평균 2.3㎝로 작지만, 최대 12㎝까지 큰 녀석을 잡을 때도 있다. 사냥을 위해 물속으로 뛰어드는 순간, 눈을 얇고 투명한 순막으로 덮는다. 순막은 일부 동물에게서 볼 수 있는 안구 구조로, 눈 위를 덮어 수분을 유지하는 반투명 혹은 투명한 막이다. 순막은 수시로 물속에 뛰어들어야 하는 물총새의 안구에 물이 직접 들어가는 것을 막아준다.

놓친 물고기는 크다.
사냥은 쉽지 않다. 실패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물고기를 잡은 뒤엔 바로 솟구쳐 날아오른다. 제자리로 돌아와 잡은 먹잇감을 나뭇가지나 바위에 부딪혀 기절시킨 뒤, 머리부터 삼킨다. 그런 뒤 하루에 여러 번 물고기 뼈와 기타 소화되지 않은 잔해를 회색 알갱이 형태로 토해낸다.

물총새는 영역이 매우 넓다. 몸무게가 40g 정도인데, 몸무게의 약 60%를 먹이로 섭취해야 하므로 먹이터를 지키는 일이 필수적이다. 자신의 영역에 다른 새가 들어오면, 먼저 그곳을 차지하고 있던 물총새가 나타나 싸움을 벌인다. 싸울 땐 상대를 물속에 담그려는 듯 맹렬하다.

영역과 횃대 싸움은 치열하다.
번식기에는 먹이터를 지키는 일이 생존과 직결된다. 횃대 싸움에 밀려 나는 물총새.

한반도 전역에서 번식하는 여름 철새 또는 텃새다. 4~8월 번식기 이외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지낸다. 번식기 수컷은 암컷을 쫓아다니면서 계속 소리를 내고 지속해서 먹이를 건네는 구애 행동을 한다. 이후 짝짓기에 성공하면 암컷은 5~7개의 알을 낳아 품는다. 새끼는 알을 품은 지 20여일 뒤 부화한다. 암컷이 알을 품는 동안은 수컷이 물고기를 잡아서 전해준다.

성공적인 사냥을 위해 깃털 고르기는 필수적이다.
새끼를 키우느라 바쁘게 사냥터를 오가는 물총새.
흙 벽 구멍 안에 둥지를 만드는 물총새.

사냥은 물가를 중심으로 하지만, 둥지는 산림의 절개지(도로나 시설물을 짓기 위해 산을 깎아 비탈진 곳)나 벼랑에 작은 구멍을 뚫고 토해낸 물고기 뼈를 깔아 만든다. 새끼는 부화한 지 약 14일 뒤에 둥지를 떠나는데,어미가 열흘간은 이소(어린 새가 자라서 둥지를 떠나는 일) 연습을 시키면서 냇가로 데리고 나와 사냥법을 가르친다. 자연 속에서 살아남는 법을 전수하는 것이다.

어미를 따라 밖으로 나온 물총새 새끼(오른쪽) 모든 것이 낮설다. 가슴과 배의 주황색 깃털이 어미 보다 탁하다.

이렇게 둥지를 떠나 어른스러워진 물총새 새끼는 10월 말쯤 내년을 기약하며 어미와 함께 월동지인 동남아시아로 힘찬 날갯짓을 펼친다. 과거 물총새는 흔한 여름 새였으나 농약 사용이 늘어나며 개체 수가 크게 줄었다. 우리나라 중부 이남과 제주도에서는 겨울을 나면서 텃새화된 개체들도 있다. 유럽, 아시아, 북아프리카에 널리 분포하고 주로 북위 60도 남쪽에 서식한다.

영역에 예기치 않은 뱀이 나타나 기겁하는 물총새. 뒷모습에서도 급박함이 느껴진다.
​당당한 물총새 수컷. 흔치 않은 자세를 운좋게 촬영했다.

글·사진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촬영 디렉터 이경희, 김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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