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사상검증' 비판 고소한 게임사…경찰 "혐의 없음"
지난해 7월, 한 게임사가 미성년자 시절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페미니즘 관련 게시물을 올린 일러스트레이터와 계약을 종료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페미니즘 사상검증으로 인한 부당 해고'라며 게임업계의 여성혐오 문화를 개선해야 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논란이 된 업체는 게임 '림버스 컴퍼니'로 익숙한 '프로젝트문'이다. 프로젝트문은 해당 작업자와 계약을 종료한 뒤, 부당 해고 비판에 앞장섰던 일부 업계 활동가들을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명예훼손) 및 업무방해 혐의로 지난해 11월 고소했다. 사상 검증도, 부당 해고도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경찰은 프로젝트문을 향한 활동가들의 비판이 처벌의 대상이 아니라는 판단을 최근 내놓았다.
모든 논란의 시작은 게임 속 캐릭터의 '노출' 문제에서 시작됐다. 프로젝트문이 제작한 게임 '림버스 컴퍼니'의 일부 이용자들은 지난해 7월 '남성 캐릭터의 의상들은 노출이 있는데 여성 캐릭터의 의상들은 노출이 없다'며 '일러스트를 담당하는 작업자가 메갈(페미니스트)일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용자들은 한 일러스트레이터가 미성년자 시절 올린 페미니즘 지지 글을 포함한 개인 SNS 행적을 문제 삼았다. 일러스트레이터는 입사 전 해당 게시물들을 삭제했으나, 일부 이용자들은 삭제된 SNS 기록물을 발굴하는 방법을 통해 논란의 소지가 있는 글을 찾아내 공격했다.
사이버불링은 오프라인으로도 이어졌다. 이용자 10여 명은 게임 운영 전반 및 일러스트레이터 사건과 관련해 대표와 면담하겠다며 프로젝트 사무실로 찾아갔다. 결국 프로젝트문은 '개인 SNS 계정이 회사와 연관될 가능성을 없애라'는 사내 규칙을 내세워 작업자와 계약을 종료하기로 했다. 이 "개인이 어떤 SNS 활동을 해도 관여하지 않겠지만, 회사와는 연결되지 않도록 당부드리고 조심하겠다"고 공지했다.
게임업계 일각에서는 '부당 해고'라며 비판을 제기했다. 김환민 게임개발자연대 대표, 그리고 한국게임소비자협회의 김민성 대표와 이종찬 사무국장 등은 온·오프라인을 통해 "대체 왜 페미니즘 사상검증을 하는 것이냐", "개인 사상 표현을 이유로 근로자와 계약 종료", "이유도 절차도 엉터리인 부당 해고"라고 규탄했다. 프로젝트문은 이들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경찰은 고소 접수 반년 만에 일부 결론을 내렸다. 마포경찰서는 지난달 17일 김환민 대표에 대해 고소한 건에 대해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함께 고소당한 김민성 대표와 이종찬 사무국장에 대해서는 아직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프로젝트문은 불송치 결정을 인정하지 못한다는 입장이다. 게임사의 법률대리를 맡은 이종상 변호사는 12일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게임사는 작업자와 합의를 통해 계약을 종료했으며 합의서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김 대표는 부당 해고라는 허위 주장을 통해 회사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불송치 결정을 내린 경찰의 판단에 이의제기를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반면, 김환민 대표는 "권고사직도 회사의 부당한 압력이 있었다면 부당 해고로 보듯이, 상호 합의가 있었더라도 작업자에 대한 사상 검증을 계기로 계약 종료가 이뤄졌다면 부당 해고로 볼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던 것"이라며 "법적 책임 여부만 따지는 것은 노동권을 침해하는 사업자들의 대표적 핑계"라고 반박했다.
프로젝트문의 일러스트레이터 계약 해지 사건은 게임업계 내 사상 검증 논쟁을 촉발한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같은 해 11월에는 메이플스토리의 '집게손가락 논란'이 터지며 더욱 논쟁이 가열됐다.
일부 커뮤니티 이용자들은 넥슨코리아가 운영하는 게임 '메이플스토리' 홍보 영상에서 여성 캐릭터의 손가락 모양이 남성을 비하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해당 영상을 만든 회사 직원 중 SNS에 페미니즘 관련 게시물을 올린 애니메이터를 찾아내 사이버불링을 가했다. 사건 발생 후 한 달간 애니메이터 측이 확인한 모욕성 발언만 1200여 건에 달할 정도다.
페미니즘사상검증공동대응위원회(공대위)가 지난해 8월부터 12월까지 콘텐츠 업계 종사자 총 5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페미니즘 사상검증' 관련 설문조사에 따르면, 종사자들은 △사이버불링 △작업물 교체 및 고지 없이 무단 수정 △직장 내 괴롭힘 △부당해고 및 계약해지 △채용 차별 및 입사 취소 △SNS 검열 및 관리 △계약서상 불이익 조항 등의 방식으로 사상 검증 및 불이익을 당한 것으로 파악됐다.
피해 사례를 분석한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는 "여성 창작자들은 말 한마디 자유롭게 할 수 없도록 통제하는 직장 내 분위기에 살얼음판을 내딛는 기분으로 직장 생활을 하도록 강요당하고 있다"며 "회사를 운영하는 이들 자체가 폭력적인 여성혐오주의자들과 동일한 가치를 공유하는 공동체인지도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박상혁 기자(mijeong@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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