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수업을 열었다···공유캠퍼스에서 학생 마음도 열렸다
여러 학교 학생 모여 자기주도적 진로 탐색
창업 꿈꾸는 학생들 위한 다양한 과목 필요
“3시에 수업 끝나고 30분 만에 버스 타고 오면 시간이 촉박해요. 가끔 수업에 늦을 때도 있어요.”
지난달 21일. 매주 화요일은 서울 강서구에 위치한 명덕여자고등학교에서 학교 간 공동교육과정 수업이 시행되는 날이다. 정규 수업이 끝나고 방과 후 수업을 들으러 교실을 이동하는 여고 복도 사이로 남학생들이 보인다. 5층에 메이커실로 향하는 학생들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하다.
특별활동 교실에 앉은 20명의 학생 중 절반은 다른 학교 학생이다. 명덕여고는 근처 공항고등학교, 세현고등학교, 한서고등학교와 연계해 2021학년도부터 공유캠퍼스를 운영하고 있다. 공유캠퍼스는 서울시 권역 내 학교를 각 교과의 특성화 학교로 지정·운영, 해당 과목 수업이 개설되지 않은 인근 학교 학생들이 찾아와 수강할 수 있는 제도다. 학생들이 스스로에게 가장 적합한 교육 과정을 설계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취지다.
이날 진행된 명덕여고의 공유캠퍼스 과목은 <지식 재산 일반> 수업이다. 김재국 명덕여고 교장은 “디지털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미래 창의적 지식사회에서 학생들이 지식재산권에 대한 올바른 가치를 이해하고 보호할 수 있도록 해당 진로 과목을 편성했다”고 설명했다. 지재권 이론 교육에만 그치지 않는다. 학생들은 발명품을 실제로 만들어 특허 명세서를 작성해 보고, 만든 발명품을 바탕으로 사업을 진행하는 등 지식 재산에 관한 다양한 실습에 참여한다. 지난 학기에는 강의식 교과 수업 외에도 변리사·발명가 등을 초빙해 특강을 진행하기도 했다. 특허청 공무원들과 직접 만나 특허청의 업무·특허 취득 과정과 권리 등에 관한 생생한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학생들의 만족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이날 수업 역시 발명 아이디어를 탐색하는 팀 활동으로 이루어졌다. 여러 학교 학생들이 어울려 실생활에서 활용하는 스마트폰과 관련된 다양한 문제를 정의하고 문제 해결을 토론했다. 이미 개인 사업을 운영하는 학생부터 향후 사업을 준비하는 학생까지 모두 자발적으로 참여한 수업인 만큼 참여도가 남다르다. 수업에 참여한 김제혁 학생은 현재 사업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러한 지적재산권, 특허에 대한 지식이 현재 운영하는 사업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신청했다며 수업에 대한 만족도를 드러냈다. 명덕여고 2학년 정지민 학생은 “타 학교 학생들과 융합하고 화합하는 과정을 배울 수 있다는 점도 좋다”고 전했다.
2025년 고교학점제 전면 도입을 앞두고 공유캠퍼스 제도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고교학점제에서는 학생 개인의 관심과 진로에 맞는 학업 설계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공유캠퍼스를 운영한 지 4년 차인 김재국 교장은 “그동안 진학에만 매몰돼 청소년들이 마음의 상처가 많았다면 이제는 자신이 원하고 희망하는 진로를 선택해서 나갈 수 있어야 한다”며 “그 과정에서 폐쇄적인 교육과정보다는 공유캠퍼스 같은 열린 교육 과정들이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명덕여고 융합중점부장인 노성현 교사도 공유캠퍼스 운영이 학교 입장에서는 사실 번거로운 일이지만 아이들에게 매우 긍정적이라고 강조했다. 스스로의 진로를 탐색하고 자기주도적으로 미래를 그려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다. 그는 “교사 개인적으로도 새로운 과목을 공부하고 학생들에게 다양한 수업을 제시하는 과정을 통해 교사로서의 효능감도 높아진다”고 덧붙였다.
공유캠퍼스 수업을 통해 진로를 찾는 학생들을 볼 때 가장 성취감이 크다. 노성현 교사는 공유캠퍼스 운영 초기였던 4년 전, 단순한 호기심으로 지식 재산 일반 수업을 수강한 학생이 “선생님, 저 변리사가 되고 싶어요.”라고 말하던 순간을 가장 인상적인 기억으로 꼽았다. 이 학생은 대학에 진학한 후에도 현재 변리사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교육 현장에서 공유캠퍼스의 효과가 나타나면서 제도 개선 방안에 대한 목소리도 들려온다. 예를 들어 공유 캠퍼스는 학생이 진로와 적성에 따라 원하는 과목을 배울 수 있는, 교사·학생 수가 적은 소규모 고교 학생들까지도 과목 선택권을 최대한 보장받을 수 있는 제도다. 그러나 도시에서 먼 학교일수록 전문 교사를 찾기가 쉽지 않다. 전문 교사 수가 적고 학교 간 거리까지 멀다 보니 공동교육과정을 운영하는 데 한계가 많다. 보완책으로 온라인 공동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오프라인 수업만 못하다. 수업의 질을 높일 방안도 필요한 상황이다.
김재국 교장은 공유캠퍼스 초기, 여러 학교 학생들이 모여 수업하는 데 대한 우려가 컸지만 기우였다고 지적했다. “막상 운영해 보니 어른들의 걱정이 무색할 만큼 학생들이 잘 적응했다"는 것이다. 다만 학교 간 이동에 어려움이 있다 보니 셔틀버스 운영 등 정책적 지원·보완이 이뤄지길 바란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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