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권력 없는 ‘연정’ … 협치 성공하거나 분란 불씨되거나[Global Focus]

민병기 기자 2024. 6. 13.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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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lobal Focus
입법부 의석 확보 비율 중요한
다당제·의원내각제 국가서 구성
여러 정치적 요구 수용하는 효과
다수당 난립땐 혼란 가중될 수도
집권여당 힘 강했던 남아공·인도
총선 과반 확보 못해 연정 불가피
대표적인 연정 모범국가 독일
정책 방향 비슷한 당끼리 동맹
장관도 의석비율 맞춰 나눠맡아
지난 4일 인도 집권당 인도국민당(BJP) 리더인 나렌드라 모디(가운데) 총리가 3연임을 확정한 후 뉴델리 당사에서 축하를 받고 있다. AP 연합뉴스
지난 2일 시릴 라마포사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이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총선 결과와 관련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강한 지도자가 권력을 움켜쥐고 국정을 운영했던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인도에서 집권여당이 총선 단독 과반에 실패하며 연정(聯政)이 불가피해졌다. 이미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에서는 다양한 정치적 요구를 담아내고 ‘타협의 정치’라는 민주주의의 본령(本領)을 담아낸 제도로 자리 잡았지만 자칫 중구난방으로 들어선 여러 정당으로 인해 정치적 혼란만 가중되는 상황을 맞기도 한다. 이 때문에 대통령제에 더해 의회도 사실상 ‘양당제’로 운영되는 우리나라와 달리 권력구조는 의원내각제로, 의회는 다당제로 꾸려지는 다수 국가에서 연정은 자연스러운 권력 구성 방식이다.

◇연정 꾸리는 남아공과 인도 = 1994년 총선에서 압승해 ‘민주화의 아버지’ 넬슨 만델라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 30년간 줄곧 단독 과반 의석을 차지, 단독으로 정권을 끌어온 남아공의 아프리카민족회의(ANC)는 14일 대통령을 선출하는 의회 첫 회의를 앞두고 야권에 국민통합정부(GNU)를 공식 제안했다. 아파르트헤이트(흑백 인종차별정책) 후 연정도 30년 만이다. 1994년 만델라 대통령은 국민 통합 정책의 일환으로 마지막 백인 대통령이었던 프레데리크 데 클레르크를 부통령으로 하는 통합정부를 구성했다. 하지만 30년 뒤 ANC는 의회 과반의 동의가 필요한 정권 재창출을 위해 연정을 꾸려야 하는 상황이 됐다.

총선 후 2주가량 지났지만 ANC는 확실한 연정 파트너도 찾지 못한 상황이다. ANC 입장에서는 어느 정당과도 선뜻 손을 잡기 애매한 의석 구조다. 전체 400석 의석 중 ANC는 159석을 차지했다. 이어 민주동맹(DA)이 87석으로 2당이다. DA는 1994년 이후 백인들이 중심이 돼 꾸린 정당으로 흑인우선주의를 내세운 ANC에 비판적이다. 자유주의 성향인 시릴 라마포사 대통령은 DA와의 연정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고 DA 역시 집권 기회를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지만 난관도 만만치 않다. ANC와 정치적 동맹 관계인 최대 노동단체인 남아공노총(COSATU·코사투)과 남아공공산당(SACP)은 총선 이후 ANC-DA 연정설이 불거지자 이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공식 발표하기도 했다. 17석의 잉카타자유당(IFP)과 함께 3당 연정 가능성도 거론되지만 이 역시 각 당의 정책 기조가 판이해 연정이 꾸려지더라도 험로가 예상된다.

그렇다고 3당인 58석의 움콘토 위시즈웨(MK)와 손잡는 것 역시 불가능에 가깝다. 이 당은 ‘국정 농단’ 혐의로 대통령에서 쫓겨났고 부패 혐의로 수감됐던 제이컵 주마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급조한 정당이다. MK는 라마포사 대통령의 퇴진을 연정의 조건으로 내걸었으나 ANC가 이를 거부했다. MK에 밀린 39석의 기존 제2야당 경제자유전사(EFF)와 연정 역시 변수가 많다. 급진 좌파 정당으로 주요 경제 부문의 국유화를 주장하는 EFF와의 연정에 라마포사 대통령 등 ANC 지도부가 반대할 가능성이 크다. 두 당의 연정만으로 과반 의석 확보가 안 돼 추가로 연정 파트너가 더 필요하다는 변수도 있다.

남아공의 연정 시도는 정치적 타협이나 특정 정책에 대한 공동 행보 등에 기반하지 않고 철저하게 권력 유지와 정권 창출에 맞춰져 있어 어떤 식의 결론이 나든 삐걱대는 행보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우여곡절 끝에 3기 정부를 출범시킨 나렌드라 모디 총리의 인도 역시 정권 출범 시작부터 삐걱대고 있다. 앞서 모디 총리가 이끄는 인도국민당(BJP)은 총선에서 예상과 달리 단독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했다.

다행히 BJP를 중심으로 한 국민민주연합(NDA)이 전체 543석 가운데 293석을 차지하며 모디 총리는 집권 10년 만에 처음으로 NDA 정당과 함께 연립정부를 구성해야 했다. 하지만 모디 총리는 국방·외교·내무·재무 등 핵심 장관은 그대로 유임시키고 상대적으로 무게감이 떨어지는 보건부와 전력부 등 장관은 연정 파트너 정당에 맡겼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릭 로소 미국·인도 정책 연구 위원장은 로이터통신에 “연정 상대들은 정치적으로 예측할 수 없으며 때로는 BJP와 협력하고 반대하기도 한다”면서 “이런 상황이 모디 총리의 독단적인 국정 운영 스타일을 바꾸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정의 모범 독일 = 독일은 연정의 모범으로 불린다. 여러 정당이 자유롭게 총선에 참여해 의석을 나눠 갖고 자연스럽게 정책을 매개로 연정이 꾸려진다. 연정을 시작하면서부터 ‘협정문’을 발표해 연립정부가 추구할 가치와 정책 방향을 공식화한다. 지난 2022년 출범한 올라프 숄츠 정부의 ‘신호등 연정’이 상징적이다. 당시 전체 의석 735석 가운데 206석을 차지한 중도좌파 사회민주당은 기후변화 대응을 가치로 내건 진보 성향 녹색당(118석), 친기업 성향의 자유민주당(92석)과 연정을 꾸렸다. 세 정당은 장관도 의석 비율에 따라 7 대 6 대 4로 나눴다. 무엇보다 2개월에 걸친 협의를 통해 ‘자유(자민당), 정의(사민당), 지속성장(녹색당)을 위한 동맹’이라는 연정협정문을 발표했다. 빨간색의 사민당, 녹색의 녹색당, 노란색의 자민당 상징색 때문에 ‘신호등’ 연정으로 불린다. 당시 기존 여당이었던 기독민주당·기독사회당 연합과 자민당, 녹색당의 자메이카 연정(기민·기사당의 상징은 검은색으로, 검정·녹색·노랑이 자메이카 국기 색깔과 같아 불린 이름) 가능성도 거론됐지만 녹색당이 이를 거부했다. 독일은 총선 결과 1당이 되더라도 어떻게 연정이 꾸려지느냐에 따라 정권의 성격이 달라진다. 단 이렇게 꾸려진 신호등 연정은 2년 만에 위기를 맞았다. 지난 10일 유럽의회 선거에서 연정을 구성한 세 당은 모두 지난 선거보다 득표율이 하락한 성적표를 받았다. 기민·기사당 연합이 30%대 득표율을 기록했고, 극우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15.9%를 받으며 숄츠 총리의 사민당(13.9%)을 제치고 2당으로 올라섰다.

연정은 주로 다당제-의원내각제의 정치 제도를 가진 국가에서 이뤄진다. 다당제에서는 특정 정당이 단독 과반을 차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 의원내각제에서는 입법부 내 과반 확보가 내각 출범 및 유지에 절대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에 단독 과반 의석을 확보하지 않으면 연정이 불가피하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나 미국과 같은 대통령제-양당제 체제에서는 쉽게 보기 힘들다.

민병기 기자 mingmi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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