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스토리]'조만호의 남자'가 바뀌었다
단기간에 큰 성장이뤘지만 대내외 잡음 커
'29cm' 키운 박준모 급부상…한문일 대체
무신사는 지난 3월 말 조만호·한문일·박준모 3인 대표 체제를 시작한지 한 달여 만에 조만호·박준모 2인 대표 체제로 전환했습니다. 2021년부터 무신사를 이끌어온 한문일 대표가 지난달 돌연 장기 휴직에 들어갔기 때문인데요. 업계에서는 '휴직'의 형태를 띄긴 했으나 사실상 그가 퇴사 수순을 밟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무신사 내부에서도 이미 창업자 조만호 총괄대표가 복귀할 당시부터 한 대표의 퇴임을 예상했다는 이야기도 나오는데요. 한 대표는 아직 대표이사와 사내이사직을 유지하고 있지만 조만간 이 자리에서도 내려올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 대표의 자리는 3인 대표로 함께 선임된 박준모 대표가 메웁니다.
무신사 성장 이끈 한문일
한문일 대표는 1988년생으로 아직 만 40살도 되지 않은 젊은 CEO입니다. 카이스트에서 기술경영학을 전공한 후 LG상사 투자관리팀에서 일했고 자영업자 P2P 금융 플랫폼 '펀다'를 공동 창업하기도 했습니다.
한 대표가 무신사에 합류한 것은 2018년인데요. 신규사업팀장을 거쳐 성장전략본부장이 된 그는 패션 특화 공유오피스 '무신사 스튜디오', 패션 복합 문화공간 '무신사 테라스', 리셀 전문 플랫폼 '솔드아웃' 등의 신사업을 주도했습니다. 평소 '무신사' 브랜드 확장을 원하던 조 총괄대표의 기대를 충족해 준 셈입니다.
한 대표는 2021년 당시 강정구 프로덕트 부문장과 함께 무신사의 신임 공동대표로 취임했습니다. 조만호 총괄대표가 여러 논란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면서 그 공석을 메웠는데요. 창업자의 빈 자리를 채우고 빠른 속도로 무신사를 키운 공로를 인정 받아 2022년에는 단독 대표이사까지 올랐습니다.
실제로 한 대표 체제 하에서 무신사는 급격한 성장세를 보였습니다. 한 대표가 공동 대표이사에 오른 2021년 무신사의 연결 기준 매출액은 4667억원이었는데, 지난해에는 9931억원까지 늘어났습니다. 무신사의 성장 외에도 2020년 인수한 '29cm', 자체 패션 브랜드 '무신사 스탠다드' 등이 괄목할 성장을 이뤄낸 덕분이었습니다.
또 한 대표는 거액의 투자 유치에도 성공했습니다. 지난해 무신사는 사모펀드 KKR(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와 자산 운용사 웰링턴매니지먼트로부터 2400억원의 시리즈C 투자를 받아냈습니다. 당시 기업가치는 3조원을 인정 받았죠. 이는 2021년 3월 세콰이어캐피탈과 IMM인베스트먼트가 참여한 1300억원 규모의 시리즈B 이후 2년 만의 투자 유치였습니다.
수익성 뚝
그러나 한 대표가 3년간 이뤄낸 여러 성과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조만호 총괄대표의 신임은 그렇게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이익이 뚝 떨어진 점, 사내에서 여러 잡음이 일어나고 있는 점 등 때문에 조 총괄대표가 그에게 실망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실제로 무신사는 지난해 86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면서 적자 전환했습니다. 무신사가 적자를 낸 것은 2012년 창사한 이래 처음인데요. 이는 무신사와 관계사 임직원에게 지급한 RSU(양도제한조건부주식) 등 일회성 주식보상비용이 반영됐기 때문이라는 게 회사 측 설명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주식 지급 비용만의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자회사들의 실적이 악화한 점도 무신사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특히 리셀 플랫폼 솔드아웃을 운영하는 자회사 에스엘디티(SLDT)의 실적 악화가 가장 컸습니다. 솔드아웃은 한문일 대표가 성장전략본부장이던 2020년 선보인 신사업인데요. 기대감이 꽤 컸던 무신사는 이듬해인 2021년 솔드아웃을 별도 자회사인 에스엘디티로 분사했습니다. 핀테크기업 두나무로부터 투자 유치까지 받았죠. 이 때 한문일 당시 성장전략본부장은 에스엘디티 대표이사를 겸임했고, 조만호 총괄대표도 사내이사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그러나 에스엘디티는 기대와 달리 큰 성장세를 보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에스엘디티는 2021년 16억원, 2022년 35억원, 2023년 134억원의 매출을 냈는데요. 손실 규모도 큽니다. 2022년에는 427억원, 지난해에는 281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죠. 경쟁사인 네이버의 '크림'이 2021년 33억원, 2022년 460억원, 2023년 1222억원의 매출액을 기록하며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는 것과는 비교가 됩니다.
무신사와 두나무는 여러 차레 유상증자를 하며 에스엘디티 살리기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습다. 결국 한문일 대표와 조만호 총괄대표는 지난해 3월부로 에스엘디티 이사회에서 물러났고, 에스엘디티는 신임 김지훈 대표 체제 하에 올해부터 비상경영에 들어간 상황입니다. 한문일 대표가 주도한 신사업 중 하나인 무신사 테라스도 사업이 정체된 상태입니다. 2021년 열었던 무신사 테라스 1호점 홍대점이 지난해 말 영업을 종료하며 성수점 한 곳만 남게 됐습니다.
수익성 악화가 무신사의 기업공개(IPO) 일정을 불투명하게 만들고 있다는 점도 우려 요인 중 하나입니다. 무신사는 지난해 투자 유치 당시 3조원의 기업가치를 인정 받았지만 최근 장외에서 추정하는 시총은 이에 미치지 못합니다.
서울거래 비상장에 따르면 무신사의 추정 시가총액은 2조원 수준인데요. 장외 주가를 기업가치와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현재 무신사에 대한 투자자들의 심리를 파악해볼 수는 있겠죠. 게다가 한문일 대표가 지난해 11월 기자간담회에서 "2025년까진 IPO 계획이 없다"고 언급한 점도 장외 투자심리를 얼어붙게 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이외에도 무신사 내부에서도 기존 경영진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소통'의 문제가 가장 크다고 하는데요. 지난해 최영준 CFO의 사내 어린이집 발언 논란은 이미 외부에도 잘 알려져 있죠. 내부에서는 높은 업무 강도에 따른 잡음도 나오고 있습니다. 실제로 일부 부서에서 인력이 잇따라 이탈하자 무신사에서는 노무사를 선임하기도 했습니다.
RSU 지급과 관련한 논란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조만호 총괄대표는 2022년 임직원 1000여 명에게 1000억원 상당의 사재를 들여 주식을 무상 증여하기로 했는데요. 증여된 주식은 RSU 형태였습니다. 그런데 RSU는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없어 취득 시 약 50%에 달하는 소득세를 내야 합니다. 임직원 입장에서는 세금 부담이 클 수밖에 없죠.
한 대표와 무신사는 이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금융기관 연계 대출 등을 고려했지만 무산됐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임직원들의 반발과 실망이 꽤 컸다고 하네요. 조만호 총괄대표의 의도는 참 좋았지만 시행 과정에서 잡음이 난 셈입니다.
새 얼굴 등장
결국 조만호 총괄대표는 지난 3월 다시 경영 전면에 나서기로 결정했습니다. 흐트러진 사내 분위기를 다잡고 사업 확대와 내실 경영을 동시에 추구하기 위해서인데요. 창업자가 다시 등판한 만큼 빠른 결정과 위기 대응이 기대됩니다.
그리고 이때 새롭게 조 총괄대표의 신임을 받게 된 인물이 등장해 한문일 대표의 자리를 자연스럽게 대체했습니다. 바로 박준모 대표입니다. 박준모 대표는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를 졸업한 후 아마존 코리아 한국·동남아 대표이사, 아마존 중국·한국·동남아 PM 총괄 등을 거쳐 2021년 5월 공동 대표이사로 29cm에 합류했습니다. 그가 29cm 공동대표가 된 직후 무신사가 29cm를 인수했습니다.
이후 29cm는 박 대표 체제 하에 폭발적으로 성장했습니다. 29cm가 2021년 무신사에 흡수합병 되면서 구체적인 실적을 알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29cm가 2023년 초에 밝힌 내용에 따르면 2022년 29cm의 거래액은 6000억원을 넘어서 전년보다 80% 가까이 성장했습니다. 일각에서는 지난해 29cm의 거래액이 1조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정합니다.
조만호 총괄대표는 29cm 성장시킨 박 대표의 능력을 높이 산 것으로 알려집니다. 특히 박 대표가 데이터 기반 경영을 하며 숫자에 밝은 점 등에 높은 점수를 줬다고 합니다. 박 대표는 커뮤니케이션을 중시하는 성격으로 내부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박 대표는 지난 3월 조만호 총괄대표가 복귀하면서 무신사 대표이사에 함께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 때 박준모 대표는 무신사와 29CM를 함께 아우르는 플랫폼 사업 대표가 됐습니다. 무신사의 주력 사업을 모두 맡게 된 셈입니다.
반면 한문일 대표는 글로벌·브랜드 사업 대표로 해외 시장 개척과 브랜드 지원을 맡게 됐습니다. 무신사의 사업이 현재 국내에 대부분 머무르고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한 대표가 사실상 한직으로 물러났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이 당시부터 한문일 대표가 물러난다는 이야기가 파다했습니다.
박준모 대표는 무신사 대표 외에도 지난 3월 솔드아웃 운영사 에스엘디티의 사내이사에도 선임됐습니다. 조만호 총괄대표가 박 대표를 상당히 신임한다는 점 또 에스엘디티 정상화에 큰 의지를 보이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는 단적인 예입니다.
무신사는 한문일 단독 대표 체제 하에서 급격한 외형 성장을 이뤘지만 크고 작은 잡음에도 시달렸습니다. 새롭게 지휘봉을 잡은 조만호·박준모 대표는 한 대표의 휴직으로 각각 브랜드 지원, 글로벌 사업을 나눠맡게 됩니다. 이 두 사람이 무신사의 본업 경쟁력을 강화하고 내실을 다지는 과정에서 무신사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 지켜봐야 하겠습니다.
정혜인 (hij@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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