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통법 아니라 '단통법 폐지안' 폐기해버렸네…통신사 경쟁 사라지나 [스프]
올 1월 정부는 단통법(단말기유통개선법)을 폐지하겠다고 전격 발표한다. 단통법은 우리나라 통신비를 올린 주범으로 지목되며 2014년 시행 이래 10년간 실패한 규제의 대표로 손꼽혀 온 법이다. 단통법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은 컸으며, 가계 통신비 절감이라는 법안의 목적 또한 이루지 못했다.
‘취지는 좋았다’는 말의 함정
단통법이 통과되기 직전 상황을 기억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당시 통신사들은 이른바 ‘게릴라 세일’을 많이 했다. 금토, 토일 이런 식으로 주말 딱 하루 이틀만, ‘성지’라고 불리는 특정 매장에서만 보조금 왕창 지원을 하는 식이다. 이 당시 갤럭시나 아이폰 최고급 모델 가격이 100만 원 정도 할 때인데, 마침 이때 핸드폰을 바꿀 계획이 있고, 마침 이 정보를 입수한 고객은 최고급 핸드폰을 거의 공짜로 받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혜택을 누리는 고객이 극히 제한적이라는 것이었다. 통신사가 그때그때 급하게 실적을 채워야 할 때 극히 제한적으로 게릴라 보조금 지원을 하다 보니 우리나라 가계 통신비 전반을 낮추는 효과보다는 대다수의 고객이 박탈감을 느끼는 역효과만 가중시킨 것이다. 통신사들이 경쟁을 치열하게 하긴 했는데, 그 경쟁이 대다수 소비자의 이익으로 연결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2014년 무렵엔 이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만이 굉장히 높아졌고, 그리하여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고자 나온 것이 단통법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정작 발표된 법안은 황당했다. 모두가 싸게 살 수 있는 방법이 아닌, 모두가 비싸게 살 수밖에 없는 규제를 들고 나온 것이다. 사실 이전에도 보조금 제한 규정은 있었다. 다만 이것이 법이 아니다 보니 규정을 어긴다고 처벌을 받을 일이 없던 것뿐. 하지만 단통법은 아예 국회에서 통과된, 어기면 처벌을 받는 ‘법’이었다. 보조금 상한선을 만들었고 이를 단속할 수 있게 했으며, 단속에 걸리면 처벌을 받도록 만들어 놓으니 통신사들은 기존에 하던 대로 경쟁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사라진 통신사들의 경쟁
이외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단통법 시행 이전에는 그 막대한 보조금을 통신사가 모두 부담했던 것이 아니다. 삼성과 팬텍, 엘지 등 다양한 휴대폰 제조사가 역시 치열한 경쟁을 하며 보조금을 보탰다. 그런데 단통법 10년 사이 살아남은 것은 삼성과 애플뿐. 국내에서는 휴대폰 제조사 독과점 상태가 돼버렸다. 이러다 보니 제조사 역시 굳이 단통법이 아니더라도 휴대폰 보조금을 지원할 이유가 사라졌다. 이는 결국 가계통신비 인상으로 이어졌다. 특히 대국민 사기극이라 불리는 통신사의 5G 요금제 이후에는 통신비가 더더욱 올랐다.
실제로 경쟁이 사라진 국내 통신업계의 가격이 얼마나 비싼지는 해외 사례와 비교해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우리나라 SKT와 이미지가 비슷한, 미국에서도 요금이 비싼 편에 속하는 버라이즌의 경우, 기자가 미국 특파원을 하면서 사용했던 요금제가 Unlimited Ultimate이라는 요금제이다. 이게 5G를 무제한 사용할 수 있는 버라이즌에서 가장 비싼 요금제인데, 우리나라 SKT에서 가장 비싼 요금제안 5GX 플래티넘과 비교해 보았다. 요금은 오히려 버라이즌이 조금 더 쌌고, 데이터·통화·문자 무제한 같은 혜택은 똑같았다.
단통법이 사라지면 소비자는 이득을 볼까?
먼저 이를 알아보려면 정부가 내놓은 단통법 폐지안 이후 대책을 살펴봐야 한다. 단통법 통과 이후 휴대폰을 하려는 소비자는 보조금을 둘 중 하나 선택해야 한다. 공시지원금 혹은 선택약정할인이다. 공시지원금은 단통법 이전 지원금처럼 통신사가 주는 지원금이다. 이 금액을 최대 35만 원으로 제한을 했는데, 이나마도 이론적인 숫자이지 실제로는 20만 원 언저리에서 지원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후 이게 너무 적다는 여론에 조금씩 한도를 높이면서 현재는 최대 45만 원~50만 원까지 줄 수 있게 해 놨는데, 바로 이 공시지원금 한도를 아예 폐지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계획이다.
반면 또 다른 선택지인 선택약정할인은, 통신사가 내놓는 일부 무제한 요금제를 특정 기간 이상 약정으로 가입을 할 경우 요금을 이 약정기간 동안 전체 통신비의 25% 정도를 할인해 주는 제도인데, 이 선택약정 할인금액이 공시약정 금액 최대 50만 원보다 더 많기 때문에 대부분의 소비자는 현재 선택약정할인을 선택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 할인폭이 더 많은 선택약정 할인은 현행대로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공시지원금의 한도를 폐지하면 통신사들이 과거처럼 지원금을 훨씬 더 많이 줄까? 이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사례가 있다. 바로 전환할인 제도이다. 단통법이 시행되기 전, 휴대폰 요금을 가장 많이 할인받는 방법은 통신사를 옮기는 일이었다. 정부는 가계 통신비 부담을 낮추기 위해 약 한 달 전 전환할인 제도를 도입했다. 과거처럼 통신사를 옮길 경우, 그러니까 ‘전환’할 경우 할인을 해줘도 된다라는 것이다. 하지만 통신사들은 얼마나 호응했을까?
메기가 필요하다! 알뜰폰!
SKT와 KT, LG U+라는 빅3 통신사는 과거처럼 경쟁하지 않는다. 이들이 유일하게 겁내는 것이 알뜰폰이다. 실제로 알뜰폰 사용자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최근에는 핸드폰을 굳이 최신폰을 쓰지 않아도 된다면, 우리나라에서 핸드폰을 가장 싸게 쓸 수 있는 방법으로 1년쯤 된 갤럭시23시리즈나 아이폰14시리즈를 중고로 싸게 산 뒤, 알뜰폰에 가입하면 된다는 팁이 많이 나오기도 한다.
이러다 보니 지난 3월 말 기준, 우리나라 전체 휴대폰 가입 회선수 5,672만 건 가운데 916만이 알뜰폰으로 집계됐다. 이것만 보면 기존 통신 3사의 새로운 경쟁상대가 점점 덩치를 키워나가는가 싶지만, 여기에는 함정이 있다. 알뜰폰 업체의 절반은 SKT와 KT, LG U+의 자회사인 것이다. 즉, 현재 우리나라 알뜰폰 사용자의 절반은 사실상 SKT와 KT, LG U+의 고객인 것이다. 경쟁을 촉진시켜 통신비를 낮추기 위해 도입한 알뜰폰인데, 이 알뜰폰 시장의 절반을 이미 기성 통신사가 잡아먹고 있는 것이다.
단통법은 폐지한다면서, 유일한 메기는 돌보지 않는 정부
그런데 이 통신 3사가 이 도매대가를 좀처럼 할인해 주지 않는다는 불만이 제기된다. 알뜰폰의 주력 요금제는 아직 5G가 아닌 LTE이다. 그런데 이 LTE망의 SKT 도매대가 요율은 현재 46.9%이다. 이는 요율이 46.9%였던 지난 2020년부터 4년 간 채 1%도 내리지 않은 금액이다. 그런데 이 LTE망은 이미 인프라를 설치할 때 들었던 비용을 모두 거두어들였다는 분석이 나온다. 비용 감가가 모두 일어났다는 얘기다. 마치 우리가 놓은 지 오래된 고속도로나 터널을 지날 때, 이미 건설 비용을 모두 거두어들였기 때문에 더 이상 통행료를 받지 않는 것처럼, 기성 통신사들이 이 LTE망에 대해선 도매대금 요율을 더 많이 내려도 된단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기성 통신 3사가 알뜰폰 업체에게 받는 망사용료인 도매대가 요율이 우리나라 가계 통신비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는지는 2017년 사례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때 전년 대비 한꺼번에 도매대가를 7.6%나 인하를 했었다. 그러자 가계통신비 평균이 18,500원이나 내려간 것으로 조사가 됐다. 하지만 현재 제3의 알뜰폰 업체들은 영세한 곳이 많다 보니 대기업인 통신 3사와 이 망사용료 협상을 할 때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기가 힘들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정부가 대신 협상을 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정부는 내년부터는 이 협상에 나서지 않겠다고 하고 있다. 즉, 각 업체들이 알아서 통신 3사와 협상을 하라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요율 할인폭이 앞으로 더욱 줄어들거나 최악의 경우엔 오히려 오를 수도 있단 우려가 나오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사후규제’를 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우리나라 사후규제의 현실은 처참하다. 사후 부정이 발견돼 과태료 처분을 받는다 해도 거두어들인 이익에 비해 턱도 없이 적은 금액인 경우가 많다 보니, 이미 다 벌어지고 난 뒤 사후 제재는 별 의미가 없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그런가 하면, 이번에는 통신사가 아닌 국가에 내는 돈이 있다. 바로 ‘전파사용료’이다. 통신에 활용되는 전파는 국가의 것이다 보니 통신사는 모두 전파사용료를 내는데 이게 고정금액이다. 현재 알려진 것은 고객 한 명당 한 분기에 1,260원을 고정으로 내는데, 이게 전체 매출 규모로 따져볼 때, 대기업인 통신 3사에게는 1%에 불과한 금액이지만 영세한 알뜰폰 업체에게는 3%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즉, 같은 금액이라도 재무적 부담이 영세 업체가 훨씬 더 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정부는 지금까지 알뜰폰 업체에게 전파사용료를 면제해주고 있었지만 앞으로 매년 조금씩 이 사용료를 받기 시작해 2027년부터는 전액 받겠다는 계획이다.
우리나라 통신업계가 단통법 하나 없앤다고 움직일 시장이 아닌 상황이 됐는데,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알뜰폰 업계 지원을 오히려 줄이는 것은 정부가 앞뒤가 맞지 않는 정책을 펴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김종원 기자 terryable@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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