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롱의 ‘의회 해산’ 불장난일까, 묘책일까 [특파원 리포트]

안다영 2024. 6. 13.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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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AFP


2022년 총선에서 집권 여당 과반 확보 실패. 최근 유럽의회 프랑스 선거 참패. 2년 전, 결선까지 간 끝에 재선에 간신히 성공한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앞에 가시밭길만 펼쳐지고 있습니다. 궁지에 몰린 마크롱 대통령이 던진 승부수는 '의회 해산'입니다.

프랑스에서 '의회 해산'은 야당의 약진으로 국정 주도권을 잃은 대통령이 행사할 수 있는 권한입니다. 마크롱 대통령의 이번 의회 해산권 행사는 제5공화국 역사상 여섯 번째입니다.

샤를 드골 대통령이 1962년과 1968년,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이 1981년과 1988년 각각 두 차례씩 의회를 해산했는데, 결과는 집권 여당 승리였습니다.

5번째 의회 해산은 1996년 자크 시라크 대통령 때 이뤄졌습니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경제 상황 악화 가능성을 이유로 의회를 해산하고 조기 총선을 실시했지만, 좌파가 다수 의석을 획득하면서 우파 대통령과 좌파 총리의 동거가 시작됐습니다.

마크롱 대통령은 어느 쪽 사례로 남게 될까요. 현재 판세로는 시라크 대통령의 전철을 밟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 '쪽박' 혹은 '역전'

유럽의회 프랑스 선거에서 강경 우파 정당 '국민연합(RN)'이 압승한 상황에서 마크롱 대통령이 '의회 해산권'을 행사하자 현지 언론들은 이런 반응을 내놨습니다.

"불장난하다가 국가 원수가 스스로 불에 타서 나라 전체를 끌어내릴 수 있다".

"위험한 도박" "방화범" "마법사의 제자?" "어리석을 정도로 위험하다."

질 것 같은 선거에 무모하게 뛰어든다는 의미가 깔려 있습니다. 집권 여당 내부에서조차 '의회 해산' 발표가 강경우파 '국민연합(RN)'에 "엄청난 선물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옵니다.

조기 총선 결과 시나리오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상승세를 탄 '국민연합(RN)'이 총선에서도 승리해 마크롱 대통령이 그야말로 '쪽박'을 차게 되는 것. 이럴 경우 다수당이 총리를 맡는 관례에 따라 RN 대표인 바르델라가 총리직을 맡고, 강경 우파와의 불편한 동거가 시작될 가능성이 큽니다.
마크롱 대통령의 정치적 생명에 치명타를 안길 시나리오입니다.

왼쪽부터 RN 대표 조르당 바르델라, 마크롱 대통령, RN을 이끄는 마린 르펜. 조기 총선에서 RN이 다수당이 되면 바르델라(맨 왼쪽)가 총리로 지명될 가능성이 높다.


다음은 범여권이 2022년 총선보다 더 나은 성적표를 받고 뒤집기에 성공하는 시나리오입니다. 국정 동력을 회복하게 될 이런 '역전' 시나리오는 지금으로서는 현실성이 떨어져 보입니다.

물론 이도저도 아니게 '본전'만 찾을 수도 있습니다. 해산 전 하원에서 집권 여당 의석 수(전체 577석 중 254석)가 과반이 안됐는데, 이번에도 비슷한 수준에 그치는 경우죠. 다만 이럴 경우 무리한 '의회 해산'에 대한 정치적 부담을 져야 할 것입니다.

■ 강경우파 상승세 이어질까

최대 관심은 이번 조기 총선에서 강경우파 '국민연합(RN)'이 거두게 될 성적입니다. 최근 주요 선거에서 RN의 성적표는 다음과 같습니다.

2022년 총선 : 89석 (하원 내 3위) ※2017년 총선 RN 의석 수: 8석
2022년 대선 : 마린 르펜 후보 득표율 41.46% ※ 마크롱 58.54%
2017년 대선 : 마린 르펜 후보 득표율 33.9% ※ 마크롱 66.1%

주목할 만한 점은 최근 2년간 RN의 꺾이지 않는 상승세입니다. 2017년 총선에서 8석에 불과했던 RN은 5년 만에 89석을 얻으며 제3당으로 훌쩍 뛰어올랐습니다. RN을 이끄는 마린 르펜도 그 흐름을 타고 있습니다. 마크롱과 처음 맞붙은 2017년 대선에서 두 후보 간 격차는 30%p 이상이었지만, 5년 뒤 2022년 대선에서 그 격차는 17%p로 절반 가까이 좁혀졌습니다.

그리고, 이번 유럽 의회 선거에서 RN은 '돌풍'을 제대로 입증했습니다. 집권 여당보다 2배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고, 수도 파리와 수도권, 지방 일부 도시를 제외한 프랑스 대부분 지역에서 1위를 차지했습니다. 이 흐름이 그대로 이어진다면 3주 안에 치러지는 조기 총선에서 집권당이 RN을 꺾고, 판세를 뒤집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6월 9일 치러진 유럽의회 프랑스 선거 결과 강경우파인 ‘RN(갈색 표시)’이 수도권과 일부 지역을 제외한 프랑스 대부분 지역에서 1위를 차지했다. (그래프 출처: 일간 ‘르 몽드’)


실제 '의회 해산' 발표 직후 실시된 여러 여론조사에서, RN에 투표하겠다는 응답자가 35% 내외로 나타났습니다. 집권 여당인 르네상스당을 지지하는 응답자는 그 절반 정도에 그쳤습니다. 유럽의회 선거 결과와 비슷한 양상입니다.

RN은 곧바로 외연 확장에 나섰습니다. 프랑스 총선은 1차 투표에서 과반 정당이 나오지 않으면 결선투표를 가는 만큼 극좌와 극우 등 양극단에 있는 정당들이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 바로 '확장성'입니다. 이를 위해 RN은 더 오른쪽에 있는 정당 '르콩케트'와 협력을 논의한 데 이어, 중도우파 '공화당'과도 손을 맞잡기로 했습니다. 오른쪽, 왼쪽으로 각각 1보씩 더 넓혀간다는 전략입니다.

샤를 드골, 자크 시라크, 니콜라 사르코지 등 전직 대통령을 배출한 공화당이 강경 우파 정당과 연대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RN의 전신인 '극우정파'가 이슬람 혐오와 홀로코스트 부정 등으로 늘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탓에, 이들과의 연대가 기성정당에는 금기로 인식돼왔기 때문입니다.

공화당을 지지하는 중도우파 유권자들의 표는 결선투표에서 번번이 40%대를 넘지 못한 RN에게 '보루'를 무너뜨릴 결정타가 될 수 있습니다. 다만 공화당 내 핵심 인사들이 RN과의 연대에 반발하며 분열 모습을 보이고 있어, 실제 연대로 이어질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합니다.

■ '위기론'에 중도 결집할까

그럼 마크롱 대통령의 셈법은 뭘까요. 이번 유럽의회 선거에서 일찌감치 RN의 승리가 예측됐던 만큼, '의회 해산'이 즉흥적으로 내놓은 카드는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 현지 언론들은 다수의 익명 관계자들을 인용해, 마크롱 대통령이 사전에 소수의 측근과 함께 '의회 해산권' 행사를 논의했다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승산 가능성, 반사이익 등을 따져봤다는 이야깁니다.

마크롱 대통령은 중도층 결집에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의회 해산 발표 당시 마크롱 대통령은 이번 유럽의회 선거 결과에 대해 "지난 몇 년 동안 유럽의 진보에 반대해 온 극우 정당들이 대륙 전역에서 진전을 보인다, 국수주의자와 선동가의 부상은 프랑스뿐 아니라, 유럽, 그리고 유럽과 세계 내 프랑스의 입지에 대한 위험"이라고 말했습니다.

12일 열린 대국민 기자회견에서는 "사회 민주주의자, 급진주의자, 환경주의자, 기독교 민주주의자, 드골주의자 등 극단주의에 공감하지 않는 시민과 정치 지도자가 결집해야 한다"고 호소했습니다. 좌우 양극단에 반대하는 정치 세력들을 모아 중도 연합세력을 구축하자는 것입니다.

12일 대국민 기자회견에서 마크롱 대통령이 중도 결집을 호소하고 있다. (사진 출처: 로이터)


3년 뒤 있을 대선을 언급하며 강경 우파 세력 확장으로 인한 '위기론'을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마크롱 대통령은 "나는 2027년에 극우에게 권력의 열쇠를 내주고 싶지 않다."고 말하며, 이번 조기 총선에서 중도층이 힘을 모아 RN의 세를 꺾어줄 것을 주문했습니다.

관건은 이번에도 결선 투표가 될 전망입니다. 중도 표심을 노리는 집권 여당과 강경우파 정당이 최종 결선에 진출한다면, 강경우파를 견제하려는 강경좌파 지지자들의 표를 얻어올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2022년 대선 당시, 마크롱과 르펜이 맞붙은 결선 투표에서 마크롱과 르펜 둘 다 싫다는 기권표가 속출했던 만큼, 기대만큼의 '견제표'가 나오지 않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또 양극단의 진영이 합종연횡을 본격화하는 만큼, 결선 투표가 양극단의 대결이 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최악의 시나리오입니다. 그때는 사임 요구까지 나올 수 있습니다. 불장난하다가 국가 원수가 스스로 화상을 입을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프랑스 총선 1차 투표는 오는 30일, 결선 투표는 7월 7일 치러집니다. 마크롱 대통령의 운명이 결정되는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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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다영 기자 (browneyes@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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