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리녹스 창업자, 자신의 이름 건 텐트 만들다 [동아알루미늄 라제건 대표]
텐트의 주요 구성품, 알루미늄 폴대 제조에 있어 세계 고급 텐트폴 시장 90%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동아알루미늄(이하 DAC)이 새로운 모험에 나선다. 2011년 '헬리녹스' 론칭 후 13년 만에 또 다른 브랜드를 만들었다. 브랜드 이름은 제이크라JakeLah(라제건 회장의 미국식 이름), 라제건 대표가 텐트 메이커로 본격 등장했다. 잠깐, 뭔가 좀 이상하다. DAC에서 만든 텐트는 이미 헬리녹스에서 출시돼 판매되고 있다. 그런데 텐트 브랜드를 하나 더 만든다고? 수상하다! DAC 본사가 있는 인천에서 라제건 대표와 만났다.
4월 마지막 주 서울 종로에서 제이크라 브랜드 파티가 열렸다. 파티장에는 제이크라에서 만든 텐트들이 진열돼 있었다. 'J코트'라고 불리는 야전침대와 결합할 수 있는 1~2인용 텐트부터 여러 사람이 들어가 앉을 수 있는 대형 쉘터가 몇 동 눈에 띄었다. 텐트들은 오토캠핑용에 가까웠는데, 말하자면 오토캠핑장에서 어떤 '모임'이 이뤄졌을 때 사용하는 용도라고 봐야 했다. 1인용 텐트가 60만 원, 크기가 가장 큰 돔텐트가 400만 원선이었다. 나는 파티장에 우두커니 앉아 생각했다. '수요가 있을까?' '잘 팔릴까?' '왜 이렇게 만들었지?' '왜, 왜, 왜? DAC는 대체 왜?' 궁금증만 가득 안고 파티장에서 나왔다.
이후 DAC인천 사옥에서 라제건 대표와 만났을 때 나는 또 당황스러운 상황과 마주했다. 라제건 대표가 뜬금없이 나에게 승마 관련 제품 샘플을 보여 준 것이다. 샘플은 말馬과 눈높이를 맞춰 앉을 수 있는 의자였고, 의자 다리가 DAC 폴로 만들어졌다. DAC에 어떤 바람이 불고 있는 걸까? 나는 미로 속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어떤 질문을 먼저 해야 할까? 준비해 온 질문지를 들여다봤다. 라제건 대표가 웃었다. 그는 나를 미로 바깥으로 꺼내주겠다는 듯 설명했다.
"'오리지널' 이야기를 좀 해볼까요? 저는 늘 생각했어요. 세상에 오리지널이 있을까? 있다면 어디서부터가 오리지널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볼게요. 옛날, 마차가 굴러다니던 시절에 자동차가 등장했잖아요. 세상에 없던 게 나온 거죠. 이게 저는 오리지널이라고 봅니다. 또 오리지널은 진화합니다.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조금씩 바뀌죠. 저는 DAC가 오리지널을 만들었고 지금 그것이 진화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갑자기 오리지널 얘기가 나와서 당황스럽긴 한데요, DAC가 만든 오리지널이 뭘까요?"
"저희가 만든 오리지널 1번은 지난 30여 년간 만든 다양한 텐트들입니다. 업계에선 흔히 우리를 두고 세계 텐트 시장의 트렌드를 이끌어왔다고 하죠. 이전에 없던 여러 텐트를 만들었다는 점, 그것이 오리지널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뭐, 텐트가 아예 없던 물건은 아니지만 이전 것들을 가져와 풀어나가면서 세상을 읽고, 또 바꾸고. 그러면서 우리가 지금까지 해 온 것들이 비교적 독특하다고 얘기할 수 있다고 봅니다."
"세상을 읽었다고요? 읽은 내용이 구체적으로 뭐죠?"
"옛날 텐트에 쓰인 폴대는 스틸 파이프로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알루미늄 합금을 만들어서 DA17을 개발했어요. 그 다음에 '페더라이트Featherlite'를 내놨습니다. 백패킹 텐트의 무게를 획기적으로 줄였죠. 그리고나서 헬리녹스 체어원(전 세계적으로 히트 친 캠핑 의자)을 만들었습니다. 이 의자가 세계 아웃도어 라이프를 소위 좌식에서 입식으로 바꿨다고 할 수 있죠. 입식으로 바뀌니 캠퍼들 말고도 많은 일반인이 의자를 들고 손쉽게 바깥으로 나가게 됐어요. 더 나아가 이제 인공과 자연이 융합하고 있습니다. 청계천 고가 다리를 부수고 도시 안에 자연을 불러들인 게 그 예죠. 멀리 안 나가도 도시에서 아웃도어를 즐길 수 있게 됐다고 할까요? 도심 속 자연을 사람들이 더 적극적으로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 그 방향을 읽은 거죠. 이에 따라 헬리녹스는 지금 아웃도어 퍼니처로서의 아이덴티티가 비교적 확실해지고 있습니다."
"헬리녹스를 아웃도어 퍼니처로 시장에 안착시킨 것이 제이크라를 만든 배경이 될 수 있을까요?"
"네 그렇습니다.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가 새로운 것을 제시할 여건이 갖춰줬다고 봅니다. 헬리녹스는 그대로 쭉 발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저는 또 다른 걸 해보자는 마음이에요. 그동안 여러 회사의 텐트를 만들어주면서 느낀 건데, 긴 흐름을 읽으면서 제품 제작을 진행하는 곳이 많이 없었어요. '내년엔 이게 팔릴 겁니다. 이걸로 빨리 개발해 주세요!'라는 식이었거든요. 5~10년에 걸쳐 시간과 비용을 들여 연구를 하는 데가 없다는 겁니다. 텐트 메이커로서 용납할 수 없는 부분들이 많았어요. 이것이 굳이 제 이름을 걸고 브랜드를 만든 이유이기도 하고요."
"미국 아웃사이드 매거진에서 대표님을 '텐트의 왕'이라고 표현하더군요. 그러면서 인터뷰 내용에 '그는 항상 지나쳤다'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건 바이어들과 마찰을 일으켰다는 뜻인가요?"
"네, 바이어들과 싸움질 많이 했죠. 예를 들면, 어떤 브랜드에서 텐트를 만들어달라고 요청이 옵니다. 저는 늘 이랬어요. '야, 이거 이 상태로는 시장에 못 내놓는다! 한 번 더 만들어봐야지!' 그러면 브랜드에선 이렇게 나옵니다. '아니, 우리가 괜찮다는데, 대체 뭐가 문제냐! 빨리 그냥 만들어줘!' 그러면 저는 또 안 된다고 버티죠. 이런 경우가 여러 번이에요. 그래서 저를 과하다고 표현한 것 같아요.
라제건 대표는 자신을 두고 기업 경영자보다는 텐트 설계자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나는 그제야 제이크라가 만들어진 배경을 대충 이해했다. 돈 버는 일보다 자신만의 '작품'을 만드는 것에 관심이 더 큰, 장인들이 탄생시킨 브랜드가 이미 세상엔 많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는 지난 30여 년간 '남의 것'만 만들다가 답답함을 견디지 못하고 뛰쳐나온 것이다. 라 대표는 이 상황을 두고 양반집 머슴이 마당만 쓸다가 대청마루에 올라앉은 꼴이라고 말했다. 갑자기 신분 상승한 머슴을 본 양반집 대감들의 시선은 당연히 곱지 않다. 하지만 이제 와서 어쩌겠는가? 모두가 그를 '텐트의 왕'이라고 부르는데!
"텐트의 왕이 만들었어도 400만 원이 넘는 가격의 대형 쉘터는 누구도 쉽게 구매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이것이 시장에서 경쟁력이 있다고 보나요?"
"경쟁력이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사실 그 쉘터는 일반 캠핑용은 아니에요. 엄밀히 말하자면 이벤트용이죠. 직원들도 얘기해요. '어떻게 팔라고 이런 걸 만들어요?'라고요. 저는 지금 자원봉사 캠핑을 진행하고 있어요. '볼런티움Volunteeum'이라는 이름의 1박 2일 캠핑 행사를 만들었죠. 소통이 거의 단절된 1인 가구 청년들이 대상이에요. 2022년에 시작했고요, 행사를 열면 3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입니다. 쉘터는 그때를 위한 용도라고 봐도 됩니다. 제품을 만들었는데, 판매를 고려하지 않는 것, 이 부분에 있어서 저는 확실히 문제가 좀 있는 사람이에요. DAC를 창업할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돈에 별로 끌리지 않아요. 물론 돈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것이 목표가 될 수는 없다는 생각이에요. "
"아! 좋은 일이군요. 하지만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기업들이 펼치는 친환경 정책 같은 사회적 활동 등을 믿지 않습니다. 마케팅 활동의 하나라고 보고 있죠. 말씀하신 자원봉사 캠핑도 마케팅의 하나 아닐까요? 의심스럽습니다."
"하하하, 의심이 될 겁니다. 당연히 의심을 하셔야죠. 저는 자신에게 늘 질문합니다. '나는 왜 살고 있는가?'라고요. 거기에 간단하게 답하면 저는 저를 위해서 삽니다. 저는 저의 행복을 가장 원해요. 행복하게 살다가 가면 제일 좋겠어요. 그렇다면 무엇이 나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냐? 또 물어요. 또 혼자 대답합니다. 내 주변 사람들의 행복이 저를 행복하게 한다고요. 제 어머니(故김옥라, 전 각당복지재단 이사장)는 평생 자원봉사에 매달리셨어요. 100세가 넘어서도 그러셨죠. 어느 날 어머니께 물었어요. '어머니, 뭐가 그렇게 간절하세요?'라고요. 어머니는 '세상을 아름답게 하고 싶다'고 하셨어요. 저도 어머니와 같은 마음입니다. 세상이 아름다웠으면 좋겠고요, 제가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합니다. 이게 진심이에요. 얼마든지 의심하셔도 좋아요."
그는 입고 있던 셔츠의 소매를 대충, 아무렇게나 걷어 올린 채 카메라 앞에 섰다. 도무지 야망 큰 기업가처럼 보이지 않았다. 연구소에서 일하는 박사 혹은 공장에서 기계를 만지는 설계 기술자에 더 가까운 모습이었다.
월간산 6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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