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죄 받은 구토약, 의사 처방 시스템 경고는 없었다
의료계 “대안 없다”, 처방해도 시스템 구멍
한 의사가 파킨슨병 환자에게 금지된 약인 구토 치료 주사제인 멕페란을 잘못 처방해 법원에서 금고형 판결을 받자 의사들이 반발하고 있다. 의료계는 이번에 문제가 된 약을 제외하면 국내에서는 쓸 수 있는 약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파킨슨병학회는 “문제가 된 약은 파킨슨병 환자에게 절대 금지 약물이 아니다”고 입장문을 냈다.
정부가 파킨슨병 환자에게는 쓰지 말라고 금지한 약이지만, 진료 현장에서는 쓰이고 있다는 뜻이다. 의사나 약사가 부적절한 의약품을 처방하지 않도록 경고하기 위해 도입한 컴퓨터 ‘의약품 안전사용 시스템(DUR)’에서도 이 약을 파킨슨병 환자에게 쓰면 안 된다는 경고가 나오지 않았다.
13일 의료계에 따르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운영하는 DUR에 파킨슨병 환자에게 멕페란을 처방해서는 안된다는 경고는 탑재되지 않았다. 이날 시스템에 파킨슨병 치료제인 명도파(성분명 레보도파)와 멕페란 중복 처방을 기입하자 ‘멕페란은 5일 이상 처방해선 안 된다’는 문구만 떴다. DUR이 부적절한 처방을 걸러내지 못한다는 뜻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관계자는 “멕페란이 DUR에서 점검하는 의약품은 맞는다”면서도 “식약처의 고시 공고를 기준으로 병용금기 약물을 지정하기 때문에, 파킨슨약과 멕페란을 병용해선 안 된다는 것이 들어가 있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은 지난 2021년 지방 한 의원의 60대 의사가 80대 파킨슨병 환자에게 멕페란을 처방하면서 시작됐다. 멕페란은 파킨슨병 환자에게 처방해선 안 되는 약물로 지정돼 있는데, 의사가 처방해 문제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이 약을 파킨슨병 환자에겐 처방해선 안 되는 약물로 분류한다.
의료계는 이 같은 세부적인 의약품 금기사항을 동네 의원에서 알아 차리지 못한 것이 원인일 수 있다고 봤다. DUR은 중복 처방이나 노인·소아·임산부 등 특정층에 위험한 처방, 1일 최대 투여량을 초과하는 처방 등을 체크해 의사와 약사의 컴퓨터 화면에 팝업창을 띄워 실시간 고지한다. 의사가 이 같은 경고를 무시하고 처방하기는 쉽지 않다. 유수연 계명대의대 신경과 교수(파킨슨병학회 홍보이사)는 “신경과 전문의라면 금기 약물에 대한 이해가 풍부하기 때문에 DUR과 무관하게 처방하지 않겠지만, 비신경과 전문의들은 DUR의 도움을 받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사안의 근본적 문제는 멕페란을 제외하면 파킨슨병 환자에게 쓸 수 있는 구토 치료제가 국내에 없다는 것이다. 유 교수는 “국내에서 허가된 효과 빠른 정맥주사(IV)형태의 구토 치료제는 멕페란이 유일하다”며 “멕페란을 쓰지 않고, 파킨슨병 환자가 계속 구토하는 걸 방치하는 것이 더 치명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령의 환자는 구토가 심하면 탈수로 환자 상태가 급격히 위험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의사의 과실이 있다고 해도 금고형을 선고한 것은 가혹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유 교수는 “환자를 치료하려다 실수를 한 의사에게 면허 취소에 해당하는 처벌을 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판결이 거듭되면 파킨슨병이 의심되는 고령 환자는 병원들이 진료를 거부하는 ‘어르신 뺑뺑이’가 나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국민건강보험(건보)의 제도적 문제점도 있다. 맥페란에 비해 부작용이 덜한 구토 치료제인 온단세트론이 있지만, 항암 치료 외 진료에서 쓰지 않는다. 온단세트론은 가격이 비싸기 때문에 항암 치료가 아닌 진료에 쓰면 ‘과잉 진료’로 보고 건보 약값을 지원하지 않는다. 더욱이 한국은 약값을 건보 재정이 부담하는 시스템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효과 좋고 부작용이 적은 신약들이 국내에는 들어오지 않는다. 약값이 비싸기 때문이다.
유 교수는 조현병 치료제로 쓰이는 클로자핀을 예시로 들었다. 이 약은 헛것을 보거나 행동이 난폭해진 환자에게 쓰는데, 부작용으로 백혈구 감소증이 발생할 수 있다. 최근 약효는 같고 부작용을 없앤 피마판세린이라는 신약이 미국에 출시됐지만, 한국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이 때문에 한국에서는 조현병 환자들에게 백혈구 감소증을 감안하고 클로자핀을 쓴다.
☞맥페란
환자의 구역·구토 증상을 조절할 때 가장 흔하게 쓰이는 약이다. 환자는 맥페란 주사를 맞거나 맥페란 알약을 복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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