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대본, 도망가고 싶었다" 무대에서도 빛난 전도연, 27년만의 도전[인터뷰S]
[스포티비뉴스=강효진 기자] 배우 전도연이 연극 '벚꽃동산'으로 27년 만에 무대에 오르는 과감한 도전에 나서며 관객들과 호흡하는 소감을 전했다.
연극 '벚꽃동산'(연출 사이먼 스톤) 주연을 맡은 배우 전도연이 11일 오후 서울 마곡 LG아트센터에서 스포티비뉴스와 인터뷰를 가졌다. 그는 "부담도 크기는 한데 재밌는 것 같다. 무대만이 주는 자극이나, 연기할 때 저의 태도나 이런 것들이 새롭게 느껴진다"고 오랜만에 연극 무대에 오른 소감을 밝혔다.
그는 "사실 저도 일을 오래 해서 이 이상 받을 수 있는 에너지나 자극들이 뭐가 있을까 고민했다. 이번 '벚꽃동산'을 하면서 새로운 에너지를 받은 것 같다. 그런걸 즐기려고 하고 있다"고 웃음 지었다.
전도연이 27년 만에 선택한 연극으로 주목받은 '벚꽃동산'은 지난 4일 개막했다. 원 캐스트로 이번 공연에 나서는 전도연은 프리뷰까지 총 7회 차를 소화했다. 7월 7일 마지막 공연까지는 아직 먼 여정이 남은 상황.
전도연은 "점차 하나씩 무대와 객석을 알아가고 있는 중인 것 같다. 배우가 저를 포함해서 총 10명이었는데 너무 호흡이 좋았다. 제가 어떤 실수를 해도 받아줄 수 있는 탄탄한 연기력을 가진 배우 분들이다. 그 분들 때문에 마음이 믿음이 있고 안심이 되는 게 있다. 점점 더 객석을 함께 즐길 것이다 관객들과. 아직까지는 관객들과 시선을 못 맞추겠더라"고 밝혔다.
지난 주말인 15일 공연 직후 이어진 관객과의 대화에서는 전도연이 "(연출자인) 사이먼이 쪽대본을 줬다. 4월 1일이 연습 시작일인데 그날 까지도 대본이 없었다"며 관객들에게 투정 가득한 비하인드를 솔직하게 전해 현장을 웃음바다로 만들기도 했다.
전도연은 이에 대해 "지금은 사이먼을 너무 사랑하고, 지금으로서는 사이먼이 다른 어떤 작품을 하자고 하면 하고 싶은 마음은 있다. 봐야되겠지만. 사이먼의 작업 방식이 저에게는 처음 있는 방식이었다. 제가 적응하고 사이먼에 대한 믿음을 갖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고 털어놨다.
이어 "대본도 늦게 쓰신다. 초반에 '나는 대본을 연극 올라가기 3시간 전, 1시간 전에도 줄 수 있어'라고 얘기해서 굉장히 불안하게 시작했다. 도망가고 싶었다. 사이먼이 완고를 다 쓰면서 그가 보여준 연출 방식에 신뢰가 갔다. '너 이렇게 해줘' 디렉션을 주는 것보다 '자유롭게 느끼며 하나하나 급하게 하지 않고 찾아가면 좋겠다'는 말이 쉬운 작업도 아니고 저 스스로를 계속 괴롭혀야 해서 고통스럽긴 했다. 그 작업 과정 안에서 새로움이나 신선함이 좋았다. 지금은 사이먼을 굉장히 좋아한다"고 웃음 지었다.
그는 사이먼의 연극 쪽대본을 받았을 당시에 대해 "그래도 연습 당일인 4월 1일에 받았다. 첫 날은 좀 당황스러웠다. 첫 날은 15장을 가지고 시작을 했다. 이걸 가지고 배우들이 모여서 이 시간을 리딩한다는게, 만나서부터 이 작업 방식이 맞는지에 대한 의심이 들었다. LG아트센터 측에 끊임없이 컴플레인을 했다. 어쩔수가 없다. 사이먼이 스스로 해야하니까 그 사람만 볼 수 밖에 없다. 두 번째 날부터는 9장, 10장 이렇게 대본이 나오는데, 거르지 않고 매일 매일 나와주는게 감사하더라. 그렇게 감사한 마음으로 연습을 했다"고 너스레를 떨어 웃음을 안겼다.
그는 직접 무대에 선 기분에 대해 "블랙코미디인데,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훨씬 코미디 연출과 요소가 많았다.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더라. 한국적으로 재해석 했는데, 요즘에 맞는 재해석이다.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걱정했다. 사이먼 스톤이 의도한 대로 관객들 반응이 나왔다. 밖에 있을 땐 관객들 웃음소리가 들리는데 (무대 위)집 안에서는 하나도 안 들린다. 나중에 끝나면 '여기선 어땠어?' 하고 물어보긴 한다. 방음이 정말 잘돼서 조금 더 집중할 수 있는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번 작품의 캐릭터는 한국형 각색이 되면서 캐릭터 역시 원캐스트 배우들의 성격을 고스란히 녹여냈다고 한다. 한국 이름인 송도영, 황두식 역시 배우들이 직접 지은 것이라고. 전도연은 "제 이름을 생각하고 정한 건 아닌데 제 이름과 비슷한 도영이 됐다. 우스개 소리로 '무대에서 도연이라고 해도 사람들이 모를 것 같다'고 했었다"고 비하인드를 전했다.
그는 "캐릭터가 어떻게 만들어졌냐면 사이먼이 1월에 일주일간 워크샵을 했다. '벚꽃동산' 책을 보고 배우들이 느낀 걸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사이먼이 하는 일은 계속 그 이야기를 듣고 관찰하는 것이다. 그 동안 저희는 사이먼에게 관찰 대상이었다. 그래서 배우와 흡사한 부분을 뽑아서 썼다. 그 때 '아마 대본을 받아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다 너희가 반영됐기 때문이다'라고 얘기해주더라. 저도 인물과 상황이 다르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는 성격과 성향들이 많이 반영되어 있긴 한 것 같다"고 밝혔다.
이어 "글로만 대본을 봤을 땐 제가 도영 캐릭터를 잘 못 받아들였다. 아무리 상처를 겪은 인물이라고 해도 이렇게 가족들과 딸들에게 고통을 주는 것 아닌가. 제 생각엔 고통 분담을 같이 시킨 것이다. 너무 순수해서 당황스러웠다. 저는 이 인물이 관객들에게 설득력 있을까, 이해받을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 때마다 사이먼은 '걱정하지 말라'며 '그 맑은 영혼이 고스란히 관객들에게 전달될 거다'라고 해줬다"고 전했다.
특히 전도연에게 강한 믿음을 드러낸 바 있는 사이먼 스톤은 대책없지만 사랑스러워야 하는 주인공 특유의 성질을 전도연이라는 배우가 가진 매력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때문에 대본에서 전도연을 위해 추가한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대사들이 있고, 이 장면들이 관객들에게도 공감과 웃음을 자아내는 포인트로 활약했다.
송도영 특유의 '러블리함'에 대해 전도연은 "저에게 그런 면이 있는 것 같긴 하다"고 특유의 코 찡긋 웃음을 지으며, 사이먼 스톤이 자신을 위해 특별히 추가한 대사에 얽힌 비하인드를 전했다.
전도연은 "어떤걸 보고 그랬는지 모르겠다. 대사 중에 '저는 건강하고 거리가 먼 삶을 살았어요. 그런데 봐요 빛나지 않아요?'라는걸 객석 보고 해달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 제가 '돌 맞는다'고 했는데 '뭘 해도 된다. 그냥 하기만 해도 된다'고 하더라. 제가 봐도 그냥 저에 대한 사이먼의 믿음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해도 밉게 보지 않을 송도영 캐릭터'라고 해서 뭔가 조금씩 요구한 것 같다. '저는 세월을 잘 피해온 것 같아요' 같은 대사를 두고 '이거 괜찮겠어요?' 라는 얘기를 많이 했다. 저는 걱정도 많이 했다"고 밝혔다.
또한 사이먼 스톤은 이번 공연에서 가장 중요한 점에 대해 "매일 다른 공연이 되게 해 달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아직 공연 초반인 만큼 7월 7일 마지막 공연엔 어떤 모습일 것 같은지에 대해 전도연은 "사이먼이 막공 때쯤 보고 싶다고 해서 다시 한국에 온다고 하는데 걱정이다"라고 운을 뗐다.
이어 "사실 배우들은 실수를 안하고 싶어한다. 대사도 안 틀리고 싶은데 사이먼은 '제발 실수해. 거기서 나오는 새로움을 즐겨봐. 상대 배우를 괴롭혀. 연기 못하게 방해 해'라고 한다. 그러니까 그 말이 그말이다. 불균형 속에서 찾으려는 균형. 그러면서 뭔가 새로운게 나오는걸 사이먼은 계속 즐기고 싶어하는거 같다. 그래서 (마지막 공연이)기대되고 궁금하긴 하다"고 미소 지었다.
그러면서 "조감독님한테 그랬다더라. '오늘 공연이 어땠어'라고 하지 말고 '매일 똑같은지 다른지만 체크해서 알려달라'고 했다고 한다. 그런 라이브함이 살아있는 인물이고, 그런 공연을 만들어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며 "저희가 하는 실수는 저희 실수이기도 하지만 의도된 거다 라고 생각해주시면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전도연은 이번 작품으로 얻고 싶은 반응에 대해 "저의 선택에 대한 좋은 믿음을 주고 싶다 '전도연이 너무 연기를 잘한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냥 '전도연이 선택한 좋은 작품'이고 싶다"고 자부심 가득한 한 마디로 기대감을 끌어올렸다.
'벚꽃동산'은 안톤 체호프의 고전을 현대 한국사회를 배경으로 재창작한 공연이다. 아들의 죽음 이후 미국으로 떠났던 송도영(전도연)이 서울로 돌아오며 시작된다. 부모로부터 물려 받은 기업은 그녀의 오빠 송재영(손상규)의 방만한 경영으로 실적이 악화되고, 그와 가족들이 오랫동안 함께 살았던 아름다운 저택도 함께 사라질 위기에 처한다. 자수성가한 기업가인 황두식(박해수)이 그들에게 찾아와 몰락해가는 기업과 저택을 보존할 방법을 제안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는다.
이번 작품으로 27년 만에 연극 무대에 복귀해 열연을 펼친 전도연은 박해수 등 전 출연진과 함께 원 캐스트로 오는 7월 7일까지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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