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 자체로 싫어 오지마”…‘노 시니어 존’이 후려치는 것

김은형 기자 2024. 6. 13.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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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형의 너도 늙는다]
게티이미지뱅크

김은형 | 문화부 선임기자

지난달 한 지역의 공공 수영장 이용자들이 노인의 이용을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면서 ‘노 시니어 존’ 이슈가 불거졌다. 그렇다. ‘노 키즈 존’이 가고 ‘노 시니어 존’이 왔다. 지난해부터 간간이 터져 나온 50대 또는 60대 이상의 식당이나 카페 출입제한 논란이 지난해 수능시험 지문에까지 등장하고 나니 ‘갑툭튀’ 화제가 아니라 공식화된 사회 의제가 돼버린 것 같다.

‘노 키즈 존’ 논란 때도 그랬지만 ‘노 시니어 존’ 이슈 역시 단순히 차별과 배제로만 몰아붙일 수 없는 사정은 있다. 아이들이 다른 손님에게 피해를 주는 걸 막지 않을 뿐더러 제지를 요청하면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부모들 때문에 지친 카페나 식당 사장들이 주로 ‘노 키즈’의 칸막이를 쳤다면, 49살 이상 출입금지를 써 붙였던 한 식당 주인은 50~60대 남자 손님들의 성희롱에 지쳐 이같은 선을 그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노 시니어 존’에는 ‘노 키즈 존’ 보다 석연치 않은 이유가 존재한다. 물론 이 석연치 않음을 매의 눈으로 찾아낸 건 직장에서도 사회에서도 ‘시니어’에 가까워진 내 나이 때문이다. 카페나 일부 헬스클럽이 ‘노 시니어 존’을 선언하는 이유 중 하나는 늙은 이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 젊은 소비자들이 오지 않는다는 거다. 노인이 옆자리 젊은이에게 다리를 꼬고 앉지 말라고 훈계를 하거나 방해가 될 만큼 큰 소리로 떠드는 것도 아닌데,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싫으니 들어오지 말라는 이야기다. 노인들이 헬스클럽이나 수영장 시설을 비위생적으로 쓴다는 주장은 사실 이보다 더 나쁘다. 수영장에 샤워를 하지 않고 들어오거나 샤워하면서 소변을 보는 이용자 통계를 낸다면 젊은 층이 훨씬 더 많은 비율을 차지할 것이라는 데 내 손가락을 걸겠다. 지저분한 행동을 하는 청년을 보면 ‘저거 돌아이네’로 개별화하지만 같은 행동을 하는 노년을 보면 ‘노인들은 어쩔 수가 없다니까’로 묶음 후려치기를 하는, 노골적인 연령 차별인 셈이다.

어릴 때부터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해라, 어른 말씀 잘 들으라고 경로우대 사상을 귀에 못이 박이게 가르치는 사회이건만 노인 혐오가 기승을 부리는 이유는 뭘까. 얼마 전 노년의학 전문의인 정희원 교수(아산병원 노년내과)의 강의를 듣다가 크게 와 닿았던 말이 있다. 정 교수는 폐지 줍는 노인들이 비참한 노년 빈곤의 상징처럼 이해되곤 하는데 관점을 바꿔 많은 나이에도 이런 활동이 가능할 정도로 인지력과 운동 능력, 그리고 경제활동 능력까지 갖춘 모습을 존경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인빈곤의 현실을 가리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노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얼마나 많은 사회적 비용을 초래하는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전통의 경로우대 사상이 만들어낸 그림자인지도 모르겠다. 나이가 들면 현역에서 벗어나 자손과 후대에 대접받아야 한다는 인식이 노인들을 쓸모없는 존재, 보호가 필요한 대상으로 손쉽게 자리전환시키는 것일 수도 있다. 싱가포르는 생애주기에 맞춰 청년기부터 노년기까지 건강하게 살기 위한 운동과 생활 습관, 사회참여의 다양한 방식을 만들어내는 정책으로 유명하다. 오지 탐험가로 세계를 돌아다니다 건강 장수마을 다섯 군데를 찾아내 ‘블루존’이라고 이름 짓고 이 지역들의 특징을 건강수명 프로젝트로 개발한 댄 뷰트너는 지난해 싱가포르를 여섯 번째 블루존으로 선정했다. 다른 지역들이 전통문화에서 기인한 자생적 건강 장수마을이라면 싱가포르는 정부가 노인들을 운동하고, 잘 먹고, 일하게 하는 정책을 펴면서 자립을 도와 돌봄과 의료비용을 줄이는 데 성공해 ‘설계된 블루존(Engineered Bluezone)’이라고 부른다. 개호보험(일본의 장기요양보험 제도)의 재정 고갈을 경험한 일본 역시 이러한 정책을 도입해 효과를 거뒀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의 노인 복지는 여전히 돌봄과 의료적 관점으로만 접근한다. 자립성 유지에는 관심이 없으니 오로지 보험재정이나 세금을 쏟아부어 부양해야 하는 짐덩어리라는 사회적 혐오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노 시니어 존’의 차별과 배제를 반대하는 목소리보다 중요한 건 차별과 혐오를 시스템으로 양산해내는 정책적 빈곤의 개선이다.

탐험가 댄 뷰트너가 전세계 건강장수마을 다섯 군데를 찾아가 그 비결을 찾아내는 다큐멘터리 넷플릭스 ‘100세까지 살기: 블루존의 비밀’. 화면 갈무리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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