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시야비야] 의료개혁 후폭풍

은현탁 기자 2024. 6. 1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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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의료현장의 단면을 보여주는 두 가지 사건이 지난달 31일 동시에 벌어졌다.

순천향대 천안병원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의 마지막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병원을 떠났고, 한때 전국 분만 건수 1위를 기록한 경기도 성남시의 곽여성병원이 문을 닫았다.

순천향대 천안병원은 지난 2016년 국내 처음으로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로 지정받아 주목을 받았던 곳이다.

전문의들이 필수의료를 기피하고, 필수의료를 담당하는 병원이 문을 닫는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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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수의료 전문의 병원 떠나
아무런 대책 없는 정부 문제
잘못된 정책 더 큰 혼란 불러
은현탁 논설실장

우리나라 의료현장의 단면을 보여주는 두 가지 사건이 지난달 31일 동시에 벌어졌다. 순천향대 천안병원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의 마지막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병원을 떠났고, 한때 전국 분만 건수 1위를 기록한 경기도 성남시의 곽여성병원이 문을 닫았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각 대학이 의대 증원을 반영한 '2025학년도 신입생 수시 모집요강'을 발표하는 날이었다.

순천향대 천안병원은 지난 2016년 국내 처음으로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로 지정받아 주목을 받았던 곳이다. 충남 전체를 관할하며 총 7명의 전문의가 소아응급실을 지켰지만 모두 현장을 떠난 것이다. 1981년 설립한 곽여성병원도 지난 2018년 단과병원 중 전국 분만 건수 1위를 기록할 정도로 번창했지만 지난달 31일 폐업했다.

두 사례는 우리나라 필수의료 현장이 붕괴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전문의들이 필수의료를 기피하고, 필수의료를 담당하는 병원이 문을 닫는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전국의 소아과, 산부인과, 외과, 흉부외과 등 필수진료과는 의사 구인난에 시달리고 있다. 전문의들이 해당 분야 진료를 포기하고 인기과의 일반의로 근무하면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그러다 보니 환자들은 제때 진료를 받을 수 없고, 국민들은 의사가 부족한 것처럼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일종의 착시 현상이다.

젊은 의사들이 필수 진료과를 꺼리는 이유는 환자 수요가 줄어들었고, 저수가로 인해 병원을 유지하기 힘든 데다 의료사고에 따른 법적 분쟁의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필수의료 분야는 전문의 자격을 따더라도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얘기다. 인기과와 비인기과 간 양극화도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한쪽은 의사가 부족하고, 다른 한쪽은 의사들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이런 구조적인 모순을 바로잡는 게 바로 의료개혁이어야 한다. 그런데 정부는 구조적인 문제는 뒷전이고 의사 숫자를 늘리는 데만 매몰돼 있다. 의대 증원으로 인기과의 의사가 포화 상태가 되면 필수의료, 지방의료 쪽으로 넘쳐흐를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게 바로 의사들을 좌절하게 만드는 '낙수 의사'다. 현재 필수의료에 종사하고 있는 의사들마저 떠나게 만드는 무책임하고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정부가 의대생 1509명 증원을 확정했고, 전국의 대학들도 의대 증원을 위한 절차를 마무리했다는 사실이다. 정부 스스로 돌아올 수 있는 다리를 끊어 버린 셈이다. 동맹 휴학한 의대생과 의료 현장을 떠난 전공의들이 복귀할 명분도 사라지고 말았다. 의사협회는 오는 18일 총파업을 선언했고, 그 이후 2차, 3차 파업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의사 파업도 문제이지만 아무런 대책도 없는 정부는 더 큰 문제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되도록 의료계와 진정성 있는 대화 한번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행정 명령을 남발하고 면허 취소를 거론하며 의료계를 압박해서 얻은 게 무엇인지 돌아봐야 한다. 이대로 가면 의료개혁이 아니라 의료 붕괴사태가 올 수도 있다.

정부의 의도와는 달리 당장 내년에는 의사 배출이 3000여 명이나 줄어들게 된다. 이런 상황은 향후 4-5년까지 영향을 미치고, 필수 의료와 지역의료에 더 큰 위기로 다가올 수 있다. 대형 종합병원은 병동을 축소하면서 적게는 수 십억 원, 많게는 수 백억 원의 적자를 보고 있다. 의대교수, 간호사, 제약회사, 병원 앞 약국, 동네 상권까지 불똥이 튀고 있다. 대형 종합병원 하나라도 문을 닫으면 그 파장은 상상 불가다.

정부가 이러려고 의료 개혁을 하는 건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더 큰 혼란이 오기 전에 잘못된 정책을 바로잡아야 한다. 의대 증원은 지금이라도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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