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일논단] 응급의료법이 생각하지 못한 가족관계에 관하여

2024. 6. 1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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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재규 법률사무소 진언 대표변호사

"○○종합병원 응급실에서 당신의 어머니를 치료했으나 당신의 어머니가 병원비를 납부하지 않았기 때문에 국가에서 병원비를 대신 납부했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어머니 대신 국가에 병원비를 납부해야 합니다. 만약 2024년 7월 10일까지 납부하지 않을 경우 당신의 통장 등을 압류하겠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위와 같은 내용의 독촉장이 날아왔다. 그런데 독촉장을 받은 사람은 어린 시절에 부모로부터 학대를 당해서 부모와 연을 끊고 산 지 10년도 더 지난 상황이다. 독촉장을 받았을 때 어떤 생각이 들까.

위 독촉장에 대한 근거는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제22조 제4항 내지 제6항(아래에서는 조문을 기재하지 않고 '응급의료법'이라고만 한다)에 규정돼 있다. 단지 법에 정해져 있다는 이유만으로 예측할 수 없었던 의무를 부담하게 된다면 납득할 수 있을까? 법은 사람들이 수긍할 만해야 규범으로 기능할 수 있다. 응급의료법의 경우 언뜻 보기에도 부당해 보이는 면이 있다. 어떤 부분 때문에 부당하다고 느껴지는 것일까.

법이 누군가에게 의무를 부과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의 행위로 인한 결과에 대해서만 책임을 진다는 자기책임의 원리다. 가족이 병원비를 내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내가 한 일이 아니므로 내가 책임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는 내가 한 행동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법상 책임을 지도록 정해져 있기도 하다. 예를 들면 미성년자의 행위에 대해 부모가 책임을 져야 하고, 부모가 사망한 경우 원칙적으로 자식이 부모의 빚을 책임지고 갚아야 한다.

민법에서는 부모에게는 자녀를 부양할 의무를, 성년인 자녀에게는 부모를 부양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자녀의 부모에 대한 부양의무를 도덕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그냥 그래야만 한다는 당위의 논리로 해결될 것이고, 공평의 문제로 바라본다면 부모가 자녀를 성인기까지 책임졌으니 나이 들어서 경제적 능력을 상실한 부모를 자녀가 부양하는 것이 공평하다는 논리로 해결될 것이다.

그런데 이 사안에서는 하필 그 부모가 어릴 적에 자녀를 학대했고, 오랜 기간 동안 서로 교류 없이 절연한 채로 살아왔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여전히 부양의무를 진다고 하는 것을 납득하기 어렵다.

헌법재판소는 최근 유류분 제도(누군가가 사망하였을 때, 남겨진 배우자와 자녀 등을 위해서 사망한 자가 생전에 가지고 있던 재산을 배우자와 자녀 등에게 일정한 비율로 나눠주는 제도)에 대해 위헌 내지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통해 헌법에 위반된다는 결정을 하면서 "피상속인(사망한 자)을 장기간 유기하거나 정신적·신체적으로 학대하는 등의 패륜적인 행위를 일삼은 상속인(남겨진 배우자와 자녀 등)의 유류분을 인정하는 것은 일반 국민의 법감정과 상식에 반한다고 할 것이므로, 민법 제1112조에서 유류분상실사유를 별도로 규정하지 아니한 것은 불합리하다고 아니할 수 없다"고 한 바 있다.

같은 관점에서 바라보면 응급의료법이 예외를 인정하지 아니한 채 일률적으로 부모가 치료받은 후 납부하지 않은 병원비를 자녀에게 부담하게 하는 것 역시 위헌성이 있다.

다만 헌법재판소는 부양의무의 이행과 상속은 서로 대응하는 개념이 아니어서, 법정상속인이 피상속인에 대한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하여 상속인의 지위를 박탈당하는 것도 아니고, 반대로 법정상속인이 아닌 사람이 피상속인을 부양했다고 하여 상속인이 되는 것도 아니라고 하고 있다. 그러므로 응급의료법에서 예외 규정을 둘 때에는 단순히 공평의 관점에서 부양의무의 이행의 정도가 질적으로 부족했다고 판단되는 경우를 예외로 정할 것은 아니고, 부양의무의 특수성을 고려해 오랜 기간 절연된 상태였다거나 피부양자로부터 범죄에 준하는 행위를 당하는 등 더 이상 가족관계로 인정하기 어려운 경우를 예외 사유로 두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사료된다. 강재규 법률사무소 진언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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