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하오베이징] 35세 명문대 졸업생의 의대 도전을 둘러싼 논란

우경희 머니투데이 베이징 특파원 2024. 6. 13. 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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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언론과 인터뷰하고 있는 중국 사교육업자 리롱씨. / 출처=바이두 영상 캡쳐

중국 최고 명문대 중 한 곳을 졸업하고도 의대에 가겠다며 17년만에 재시험을 치르는 수험생의 사연이 대륙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대입 재도전에 나선 그를 두고 후배들에게 돌아가야 할 자리를 염치없이 노린다는 비난이 쏟아지는가 하면 스스로의 목표를 향해 도전하는 모습은 응원해야 한다는 의견도 팽팽하게 맞선다. 취업난이 갈수록 심해지는 가운데 과열 양상을 보이는 중국 교육현장의 한 단면이다.



"의대가겠다"는 35세 사교육업자.."후배 기회 뺏냐" 비난 직면


중국의 대학수학능력시험 격인 2024년 가오카오(高考)가 지난 6월7일부터 10일까지 실시됐다. 중국에선 베이징대(북경대)와 함께 양대 명문대인 칭화대(청화대) 졸업생 35세 리롱의 사연이 화제가 됐다.

현지언론들의 보도에 따르면 리롱은 18세때인 2008년 750점 만점인 가오카오에서 695점을 받고 칭화대에 입학했는데 어려운 집안 사정으로 의학공부의 꿈을 포기하고 칭화대 기초수리과학대학을 선택했었다.

리롱은 열심히 살았다. 칭화대를 졸업한 후 사교육산업에 투신했다. 중국의 사교육은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지만 이를 믿는 사람은 없다. 리롱도 상당한 돈을 번 모양이다. 이제는 베이징 시내에 집 세 채를 보유한 자산가가 됐다. 그리고 올해 다시 가오카오에 응시했다.

그는 현지언론과 인터뷰에서 "어린시절 나는 가족을 먼저 책임져야 했지만 35세를 맞아 이제는 나 자신과 사회를 책임지는 결정을 내리기로 했다"며 "이번 시험에 응시해 의대에 진학할 것"이라고 말했다.

리롱은 목표점수가 700점이라고 밝혔다. 가오카오 100일 전부터 월~금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30분까지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저녁시간에 아이와 잠시 놀아준 후 아이가 잠든 이후부터 다시 공부하는 일과를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이어왔다.

그럼에도 리롱의 도전이 성공할지 여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해마다 중국에서 날고긴다는 천재들을 포함해 무려 1300만명 이상이 가오카오에 응시하고 웬만하면 남한 인구보다 사람 수가 많은 한 개 성에서 수석을 해야 칭화대나 베이징대의 원하는 학과에 진학한다.

칭화대는 이공계열의 명성이 워낙 높은 터라 상대적으로 의대의 위상은 이공계에 미치지 못한다. 그래도 칭화대다. 가능성이 낮음에도 리롱의 도전이 화제가 된건 만만찮은 반대여론 때문이다.

중국의 의대는 학사과정만 9년제인데 리롱이 희망한다고 밝힌 칭화대 연합의과대학 임상과정이나 중의학 과정은 리롱이 응시하는 헤이룽장성(흑룡강성)에서 각각 딱 한 자리씩만 배정돼 있다.

리롱이 원하는 점수를 얻어 시험에 합격한다면 헤이룽장에서 시험에 응시한 졸업생이나 재수생들은 이 자리에 입학할 수 없다. 리롱이 젊은이들의 성장 기회를 뺏는 시도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공산주의사회지만 어쨌든 가오카오 응시엔 자유가 있는 중국이다. 게다가 매년 화제가 되는 만학도가 리롱뿐인건 아니다. 중국에선 유명한 탕상준의 사례도 있다. 그는 리롱처럼 올해 35세인데 지난 15년동안 매년 대학 입시에 응시했다.

매번 희망하는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지만 탕상준의 사례는 중국에선 마치 끈기나 열정의 상징 격으로 여겨진다. 공교롭게 탕상준이 목표하는 대학 역시 칭화대다. 중국에선 역시 명문대인 상하이자오퉁대(상해교통대)에 합격했지만 칭화대에 가기 위해 입학을 포기했다.

많은 만학도 사례에도 리롱의 케이스는 올해 중국 온라인 플랫폼 등에서 특별히 화제가 됐다. 워낙 교육열이 뜨거운 중국 분위기를 반영하듯 리롱의 도전에도 일단은 우호적 여론이 우세하지만 가오카오에 응시해선 안된다는 비난 여론도 만만찮다. "본인의 교육사업을 홍보하기 위해 나선 것 아니냐"는 비판부터 "어차피 시험에 합격하지 못할 것"이라는 원색적인 비난도 있다.

칭화대(청화대) 전경.


천만명씩 대졸자 쏟아지는데… 일자리 부족한 中 사회 단면


리롱의 사연에 대륙이 달아오르는건 그만큼 가오카오를 대하는 중국인들의 상황에 여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중국 교육부에 따르면 올해 가오카오 응시 인원은 전년대비 51만명 늘어난 1342만명으로 사상 최대 규모다.

한국의 경기도 인구(1364만명)와 맞먹는다. 중국에선 이미 시험 한참 전부터 시험장 주변 호텔이 동났다. 중국의 금기 중 금기인 마약성분이 들어있을게 뻔 한 '스마트 약물'을 찾는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몰려들며 공안이 특별 단속에 나서기도 했다.

중국의 인구구조 상 가오카오 응시 인원은 매년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올해도 종전까지 가오카오를 실시하지 않던 7개 지역에서 가오카오를 처음으로 실시한다. 앞으로 수 년 간 가오카오 응시생은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중국의 취업시장은 말 그대로 전쟁터다. 매년 1000만명 이상의 대학 및 대학원 졸업자가 취업시장으로 쏟아져나온다. 그런데 미·중 경제대립이 심해지면서 미국 등 서방 기업들이 썰물처럼 중국을 빠져나간 터라 상대적으로 근무여건이 좋은 양질의 일자리는 꾸준히 줄고 있다.

그개픽 = 김은옥 기자
화웨이나 샤오미 등 중국 혁신기업들이 고액연봉의 일자리를 늘려가고 있지만 빠져나간 일자리를 단숨에 메우기는 어렵다. 졸업생 수는 늘어나는데 일자리는 줄어드니 경쟁은 상상을 초월할 수밖에 없다.

특히 미·중관계가 정상적이던 시절엔 이공계열 대학졸업자 중 우수한 학생들은 상당수를 미국 등 서방국가에서 장학금까지 줘 가며 데려가 유학시켰지만 이 수요가 뚝 끊겼다. 우수하든 그렇지 않든 대부분 학생들이 중국 내에서 취업 승부를 봐야 한다.

미·중 관계가 나빠지면서 신난건 중국 대학교수들 뿐이란 얘기가 있을 정도다. 과거같으면 미국이나 유럽에 뺏겼을 우수 인재들을 대학원생으로 뽑아 데리고 있을 수 있어서다.

고학력 백수들이 늘어나고 이전 같으면 상상하기 어려운 대졸 배달기사나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들도 이제는 당연한 상황이 됐다.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패스트푸드점 아르바이트나 식당 종업원들을 만나는게 베이징 시내에서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35세의 나이에 칭화대 의대에 재도전하는 리롱의 사연에 비난이 쏟아지는 이유이며 청년실업률 공개를 일방적으로 중단할 정도로 중국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는 배경이다.

우경희 머니투데이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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