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의 눈]힘에 의한 평화, 그 힘은 누가 낼까
얼마 전 육군 신병교육대에서 훈련병이 수류탄 사고로 숨졌다는 안타까운 소식에 20대 때 악몽이 떠올랐다. 훈련소에서 처음 수류탄 안전핀을 뽑으며 느꼈던 극도의 긴장감과 불길한 상상 말이다. 수류탄은 적절한 시점과 장소에 투척하지 않으면 내 주변에서 터지거나 상대방이 집어서 다시 던질 수 있는 무기이다. 근접전에서 자신도 죽을 각오를 하고 던진다는 점에서, 어쩌면 ‘인간적인’ 무기라고 할 수도 있다.
각종 ‘무인’ 첨단무기가 전시되는 시대에 이 재래식 무기를 쓸 일이 있을까. 도도한 탈냉전 분위기 속에 군 생활을 한 나는 거의 없을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이 질문에 누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우크라이나와 중동, 그리고 오물 풍선을 뒤집어쓴 우리 모습을 보면서 말이다.
한반도가 또다시 전쟁 위기를 맞고 있다. 언젠가부터 남쪽에 보수정부가 서면 꼭 벌어진 일이라는 점에서 놀랍지 않다. 그런데 이번엔 좀 다른 점이 있다. 유난히 많은 장병의 죽음 속에 맞는 위기라는 점이다. 해병대원이 구명조끼 없이 수해 현장에 투입됐다가 죽고, 훈련병이 비인간적 군기훈련을 받다 죽고, 그보다 더 많은 장병이 자살‘당했다’. 군 집계에 따르면 2013~2022년 그렇게 숨진 군인이 891명에 달한다. ‘전투 중 사망’이 아니다. 군 사망 사건이 민간 경찰로 이첩된 2022년 7월 이후 알려지는 사례가 많을 순 있다. 군 사망률이 바깥보다 낮다고 하나 징집된 병사들에겐 위안이 되지 않는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장교, 준·부사관, 군무원 사망엔 적용돼도 병사들에겐 안 된다.
대통령은 ‘압도적 힘에 의한 평화’를 말하는데, 그 힘이 누구에게서 나오는지 알까. 수류탄을 던질 힘을 누가 내는가. 안다면 해병대 사망 사건의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이렇게 조직적으로 방해하진 못할 것이다.
군인 목숨 경시는 휴전선 이북에서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을 것이다. 지난 3월 북한 매체에 공수부대 훈련 장면이 공개됐다. 강풍이 부는 날이었지만 김정은 부녀 참관하에 강행된 훈련에서 낙하산 줄이 서로 꼬이고 충돌하는 모습이 관찰됐다. 사상자가 발생했을 수 있다. 자해적인 훈련 강도는 북한에서 더 심할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정권을 초월해 ‘방산 수출’을 성과로 자랑하는 이 나라에서, 반전·평화 목소리가 들어설 자리는 매우 작다. 작은 가능성이나마 군대에서 목숨을 바쳐야 하는 젊은이들에게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정치사상가 더글러스 러미스의 <래디컬 데모크라시>에 나오는 ‘근원적 민주주의’를 새겨보고 싶다. 미국 해병대원이기도 했던 저자는 민주주의의 본래 의미가 ‘권력이 민중의 손에 있는 상태’임을 강조한다. 그는 특히 보이콧을 통해 체제 균열과 틈새가 만들어지는 상황에 주목한다. 보이콧은 체제 안에서 일을 직접 떠맡는 노동자들이 의무로 주어진 업무 수행을 거부하는 것이다. 옛 로마 공화국 초기 계속된 전쟁 차출과 빚에 시달리던 평민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도시 밖 몬스사케르(거룩한 산)에 올라가 자신들의 요구가 수용될 때까지 내려가지 않겠다고 한 뒤 결국 호민관 제도를 끌어낸 것이 좋은 예다. 1917년 독일·오스트리아군과 참호전을 벌이던 러시아군이 스스로 교전 중지를 결정하고 전장에서 걸어 나감으로써 케렌스키 임시정부 붕괴, 10월 혁명으로 이어진 것도 비슷한 사례다. 주권자는 원로원도 집정관도, 케렌스키도 사령관도 아닌, 전투를 수행한 평민과 노동자들이었다. ‘병사들은 퇴장해버림으로써 투표했다.’
국가는 입대 ‘자원’이 부족해지고 있다고 걱정한다. 아무도 군 병력 감소를 의도하진 않았다. 다만 이 사회의 여성과 남성들이 출산하지 않음으로써 ‘전쟁터’ 같은 삶을 강요하는 현 체제에 반대표를 던지고 있다. 그 와중에 우연히 태어나, 어쩔 수 없이 군대라는 공간에 가서 갇혔는데, 목숨까지 바치라니. 군 복무 경험 없는 정치인들이 풍선을 격추하라고 핏대를 올릴 때 정작 수류탄을 들어야 하는 사람들은 속으로 분노한다. 사령관의 ‘즉강끝’ 얘기를 듣고는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부패한 엘리트가 권력을 사유화하고 부조리가 넘쳐나는 이 국가를 위해 내 목숨을 바쳐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다. 그것은 그들이 처한 상황을 잘 이해한다면, 북한 군인들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계속 반복될 지금의 위기는 결국 양측의 총알받이들이 주권자로서 힘을 인식할 때 비로소 해결의 단초를 찾을 것이다. 민주주의가 평화를 만드는 힘이다.
손제민 논설위원 jeje1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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