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소주가 1000원" 영등포 고깃집 '손해 보는' 장사, 왜?

정세진 기자 2024. 6. 13.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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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원의 행복③]서울 영등포구 숯불과 딤치김치찌개…소주 1000원·맥주 2000원 이벤트
[편집자주] 서울에서 가장 저렴한 식당으로 불리는 송해국밥. '초고물가' 시대에 시민들은 이곳에서 허기 뿐 아니라 마음을 채운다고 했다. 고(故) 송해님 별세 2주기를 맞아 이처럼 부담없는 가격에 손님을 맞고 있는 명소들을 찾아간다.
지난 11일 오후 식사 중인 손님들. 사진=정세진 기자


"제가 앞으로 장사하는 동안은 이 가격 유지할 거예요."

서울 영등포구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도경씨(52)는 2021년부터 소주 1병을 1000원에 팔고 있다. 맥주는 2000원이다. 김씨도 다른 자영업자들과 마찬가지로 코로나19(COVID-19) 유행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 시행으로 매출이 크게 줄었다. '위드 코로나'로 방역정책이 바뀔 때쯤 김씨는 '술값 평생 이벤트'를 결심했다. 식당을 운영하는 동안 '소주 1000원·맥주 2000원' 가격을 유지하겠다는 내용이다.

김씨는 소주 1병에 1800원, 맥주는 2000원대 초반에 들여 온다. 손님이 소주 1병을 시키면 800원은 김씨가 손해보는 셈이다. 김씨는 "자선사업을 하려는 게 아니다"라며 "싼 술을 찾는 손님들이 늘면서 고기와 찌개에서 남긴다"라고 했다.

소주 1병에 1000원인데…이벤트 3년만에 최고 매출 기록

김씨는 2017년 식당 문을 연 후 지난 5월에 월 최고 매출을 기록했다. 4인 테이블 21개가 있는 35평(115㎡) 규모다. 월 매출이 4000만원 이하면 손해를 본다. 지난 1~3월은 매달 5000만원 수준이던 매출이 4월에 7000만원, 5월엔 8300만원까지 올랐다. 김치찌개 1인분에 8800원에 공깃밥과 라면사리를 '무한리필'로 제공하고 삼겹살 1인분(130g)에 1만2900원에 판매하면서 올린 매출이다.

이곳 식당은 유명해지기 전엔 주변 회사원들의 단골 회식집이었다. 30명이 와서 배부르게 먹어도 90만원을 넘기지 않았다. 김씨는 "손님 한분이 3만원 정도 쓰고 가면 좋다"며 "적당히 고기 2인분에 소주나 맥주를 드시면 잘 남는다"고 했다.

3년간 김씨는 소주 1000원 이벤트를 알리기 위해 전단지를 돌리고 지하철역과 마을버스에 광고를 냈다. 김씨는 "2021년 11월쯤 이벤트를 시작하고 3년만에 이렇게 터진 것"이라며 "터질 때까지 버티는 게 힘들다. 어떻게든 버텨냈다"고 했다.

지난 11일 오후 음식점 앞에 걸린 플래카드. /사진=정세진 기자


뜻하지 않은 기회는 유튜브를 통해서 왔다. 김씨도 모르는 사이에 유튜브에 '1000원 식당' 관련 영상들이 올라왔다. 김씨는 "3년동안 입소문을 내기 위해 노력했는데 언제 어디서 왔는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유튜브에 우리 식당 영상이 올라왔다"며 "블로그에는 많이 올라왔는데 유튜브에 올라오고 나니까 젊은 손님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고 했다.

지난주엔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오후 6시쯤부턴 김씨 식당앞에 대기하는 손님들이 줄을 섰다. 경기 부천 등에서 와서 2시간 이상 기다리는 손님도 있었다.

2017년부터 이곳에서 식당을 운영한 김씨에겐 처음 있는 일이었다. 김씨는 직장인 남편과 사이에 1남1녀를 둔 '엄마'다. 2011년부터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에서 야채를 받아 음식점에 판매하는 유통업을 했다. 한식뷔페에는 직접 메뉴까지 제안해서 필요한 품목을 공급했다. 이같이 식자재를 6년 동안 유통하면서 식자재 회전하며 원가를 줄이는 방식을 익혔다. 지금 운영하고 있는 김치찌갯집도 식자재 유통할 때 고객이었던 사장님한테 인수한 것이다.

오르는 식자재 원가에 부담 커져…"9000원하던 김가루 1봉지, 요즘엔 3만4000원"

메뉴판. /사진=정세진 기자

고민이 큰 것도 사실이다. 매일 같이 매출과 지출을 따지는데 요즘 특히 식자재 가격이 크게 올랐다. 1봉지에 9000원이던 김가루는 3만4000원이 됐다. 간장 20L 1통에 1만6000원이던게 요즘은 한통이 16L 줄었는데 각격은 2만4000원이 됐다. 매년 여름이 되면 삼겹살 가격과 상춧값이 크게 오른다.

김씨는 "식자재 가격이 오르면 어쩔수 없이 고기와 찌개가격을 올려서 이벤트를 유지할 계획"이라며 "내가 식당을 운영하는 동안은 계속소주 1000원 이벤트를 하고 싶다"고 했다.

친구들과 이곳을 찾은 박모씨는 "생각보다 막창과 찌개도 너무 맛있다"며 "가격만 싼게 아니라 맛도 있다"고 했다. 직장 동료들과 온 장모씨는 "2차를 가야해서 조금 시켰다"며 싸기만 했으면 여기 안 왔다"고 했다.

정세진 기자 seji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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