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작지만 강한 초소형위성, 정부 나서면 제2의 스페이스X 나온다”
군·산업계 500명 몰려...초소형위성 사업 무서운 잠재력 인식
“초소형위성, 해외선 돈 버는 사업인데 국내선 교육용 무시
뿌리면 거두는데 아깝다고 투자 놓쳐...마중물 만들어야”
2017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세계과학기자콘퍼런스는 각국에서 온 언론인들에게 한 우주 스타트업을 소개하는 부대 행사를 열었다. 시 변두리 낡은 공장에 사무실을 둔 스타트업이 북한 미사일과 핵실험을 취재할 새 기법을 소개하는 자리였다. 이 회사는 초소형위성 수십기로 지구를 실시간 감시하는 서비스를 선보일 계획이라고 소개했다. 플래닛랩스라는 이 회사는 그로부터 10년도 되지 않아 미국의 스파이 위성을 관할하는 국가지리공간정보국(NGIA)이 도움을 청하는 굴지의 우주기업으로 성장했다.
초소형위성은 한 변이 10㎝인 작은 큐브(정사면체)를 기본 단위로 해서 ‘큐브샛’으로도 불린다. 1998년대 처음 개념이 등장하고 한동안 교육용 위성으로 쓰였다. 지금은 민간 주도의 우주개발인 ‘뉴 스페이스(new space)’ 시대를 상징하는 상징으로 떠올랐다. 우주인터넷 서비스인 스타링크를 운영하는 미국 스페이스X, 핀란드의 합성개구레이더(SAR) 위성서비스 기업인 아이스아이처럼 세계적인 우주기업들이 초소형위성으로 사업을 하고 있다.
초소형위성은 신기술을 싸게 시험하고 방대한 지역에서 서비스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사업 영역이 넓다. 초소형 카메라, 통신 모듈, 미세유체 실험장비처럼 작은 위성에 넣는 장비에 따라 정찰위성이 되고 통신위성, 우주과학실험 위성도 된다. 특히 10기 이상 쏘아 올리면 효과가 크다. 전 세계를 실시간으로 지켜보기도 하고 세계 어디든 연결되는 통신 서비스도 구축할 수 있다. 요즘 뜨는 우주쓰레기 수거용 우주선이나 제약사 우주실험실도 초소형위성 기술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김해동 경상국립대 항공우주공학부 교수는 10년 넘게 국내 초소형위성 분야에서 일했다. 김 교수는 “정부는 물론 심지어 우주개발에 참여하는 일부 전문가들조차도 학생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 그렇지 않으면 교육용 교재라고 보는 선입견이 초소형위성 투자를 가로막고 있다”며 “인식 개선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초소형위성은 다른 어떤 분야보다 한국이 경쟁력이 있는 분야라고 말했다. 위성의 심장과 감각 역할을 하는 IT(정보기술)와 소형화와 정밀화를 뒷받침하는 제조업이 발달했고, 대학에 다양한 분야에서 우수한 인력도 많다는 것이다. 최근 군과 중소기업들을 중심으로 초소형위성의 잠재력을 재평가하고 인정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군은 2030년까지 1조4223억원을 들여 초소형위성 40기를 발사해 전 세계를 실시간 감시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김 교수도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긍정적인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오랫동안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에서 다목적실용위성 아리랑위성과 천리안 위성 같은 대형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그는 초소형위성의 가능성을 일찍부터 감지하고 큐브샛 경연대회를 열고 2016년부터는 기업과 군, 연구기관 관계자들이 교류하는 워크숍을 개최해왔다. 지난달 29일부터 31일까지 부산 해운대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올해 행사는 500명이 넘는 군과 기업 관계자들이 몰렸다. 국내 한 우주 전문가는 “원래 국내 학회 워크숍은 소수 전문가들이 참석하는 게 일반적인데 이 정도면 정말 대박이 났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해외 많은 기업들의 성공 사례를 보듯 초소형위성은 이제 우주 입문용 수단이 아니라 수익을 창출하는 비즈니스 모델이 됐다”며 “다양한 성공사례가 나오도록 정부가 기업에 마중물이 되는 적정한 양의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 10일 워크숍을 마친 김 교수를 온라인 화상으로 인터뷰했다.
–올해 워크숍이 대박 났다고 들었다.
“첫 워크숍이 열린 2016년만 해도 전국에서 초소형위성을 연구하는 학생들, 연구자들을 긁어모았더니 60명이 전부였다. 그런데 이듬해 행사에선 120명으로 두 배가 됐다. 코로나19 직전에 열린 워크숍에는 230명이 모였고 코로나19로 집합이 금지된 기간인 2020년과 2021년에도 최대 허용인원인 300명이 참가했다. 작년에는 400명, 올해엔 500명이 넘는 사람이 자발적으로 참여 신청을 했다.”
–누가 초소형위성에 관심을 보이나.
“아무래도 군(軍)이다. 항우연에 있을 때 정부연구기관들이 만든 과학기술연합대학원(UST)에 군 관계자들이 위성 위탁교육을 받으러 온 걸 봤다. 경상국립대 가까이 공군교육사령부가 있는데 장교들은 물론 하사관들도 교육을 받고 싶어한다. 최근 군 위성이 많이 우주로 올라가면서 관심이 높은 것 같다. 지난해 교육사령부에 우주관리와 군 위성 운영을 맡을 요원을 양성하는 항공우주통제학교가 생기면서 커리큘럼도 만들고 제대로 된 교육을 하려는 것 같다.”
–워크숍을 시작한 배경이 궁금하다.
“큐브샛은 1999년 미국에서 처음 개발됐다. 원래는 학생들에게 어떻게 하면 우주와 위성 기술을 잘 가르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아이디어 차원에서 개발한 것이다. 그런데 2003년 6월 큐브샛이 처음으로 우주로 올라갔고 그 뒤로 여러 초소형위성이 올라갔는데 많은 기업들이 거기서 사업의 기회와 가능성을 엿보기 시작했다. 경상국립대에 오기 전 항우연에서 일하면서 일찌감치 큐브샛의 잠재력을 확인했고 쭉 연구를 했다. 값비싼 위성들이 못하는 일들을 작은 위성들이 여러 대가 모이면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한국에서도 붐이 일었나.
“한국에서도 2000년대 초 큐브샛 개발을 시도했다. 당시 장영근 항공대 교수(현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미사일센터장)가 큐브샛을 개발했는데 위성을 실은 로켓이 폭발하면서 발사에 실패했다. 그 다음으로 2012년 경희대가 미국 대학과 함께 큐브샛을 개발해 발사했다. 때마침 인공위성 인력을 키우는데 큐브샛만 한 훌륭한 수단이 없다고 생각해서 대학생과 대학원생들이 참가하는 경연대회를 열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2013년 제1회 큐브샛 경연대회가 열렸다.”
–초소형위성은 왜 중요한가.
“우주 쓰레기 처리를 연구하고 있었는데 앞으로 이런 우주 신기술을 개발하는데 대형 위성처럼 2000억~3000억원씩 써야할지 고민했다. 초소형위성을 단순히 교육용으로만 쓸 게 아니라 랑데뷰 도킹, 우주 쓰레기를 포집하는 신기술을 테스트하는 플랫폼으로 쓰는 방안을 떠올렸다. 해외에선 이미 2010년 전후로 큐브샛을 쓰는 사업 모델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큐브샛은 기업이 작은 돈으로 우주 신기술을 확보할 수 있는 임팩트 있는 도구이다.”
–정찰위성 같은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승산이 있나.
“초소형위성은 만드는 걸 목적으로 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우주쓰레기 포집이나 랑데부 도킹 기술같은 새 기술을 불과 몇억, 몇십 억 정도의 예산으로도 시험할 수 있는 수단, 도구라고 봐야 한다. 큐브샛 한 기는 보잘 것 없지만 여러 기가 뭉치면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대형 위성이 하지 못하는 일을 위성들이 떼를 이루면 해결할 수 있다. 정찰위성 한 대로는 한반도를 하루에 한두번 촬영하지만 큐브샛 여러 기를 배치하면 훨씬 자주 영상을 얻을 수 있다. 실시간 감시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다수의 큐브샛을 활용해 기존 위성으로는 못하는 서비스를 공략할 필요가 있다.”
–누가 워크숍에 참여하나.
“초기 워크숍 참가자를 보면 경연대회에 참여했던 대학생과 대학원생들이 3분의 2를 차지했다. 하지만 3~4회부터 부산에서 행사를 열기 시작하면서 참가자 숫자가 크게 늘면서 다양한 층이 참여하기 시작했다. 4~5년 전부터는 군과 기업체, 연구소에서 관련 사업을 하는 관계자들이 발표가 90%를 넘어섰다. 오히려 대학 석박사 비율이 10% 안팎인 걸로 알고 있다. 지금은 위성을 만들고 쏘고, 데이터를 내려받아 서비스하는 다양한 사업 영역의 기업들이 참여해 문제를 공유하는 명실상부한 뉴 스페이스 기업 교류의 장이 됐다고 보면 된다.”
–워크숍의 성공 비결은 무엇인가.
“네트워킹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워크숍은 초소형위성 연구자만을 위한 행사로 열리지 않았다. 처음부터 사업을 하려는 기업들을 위해 기획했다. 프로그램을 보면 알겠지만 우린 초소형위성 이야기만 하지 않는다. 위성을 실어 나르는 소형발사체라든가, 위성 운용에 필요한 주파수 배정 정책 같은 다양하고 실질적인 현장의 문제를 다룬다. 올해 행사에선 아예 일부 발표 시간을 비우고 부스 전시장에서 자기 회사를 소개하고 참가자들과 교류하는 시간을 가졌다. 군에서 1조4000억원 규모의 초소형위성 사업을 하고 있는데 이 워크숍에서 이뤄진 발표와 교류를 통해 실제 사업으로 넘어갔다.”
–초소형위성에 대한 시각은 여전하다고 들었다.
“사실이다. 앞으로 5년간 전 세계에서 3000기 이상의 초소형위성 발사가 예정돼 있다. 이제는 교육 목적보다는 사업 목적이 크다. 하지만 국내에선 여전히 초소형위성을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육용 목적의 위성이라는 시각이 강하다. 정부나 한국연구재단에 초소형위성 분야에 예산을 몇십억원 주자고 하면 그 정도로 많이 필요하냐고 묻는다. 20년 전 생각에 머물러 교육용 플랫폼으로만 보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적정한 시점에 사업화하려는 기업에게 마중물 역할이 되는 투자를 하지 않았다. 드론도 몇 만원짜리 초급자용 드론이 있고 수천 만원 나가는 산업용 고급드론이 있는 걸 안다면 초소형위성에 대한 인식도 바꿔야 한다.”
–정부가 어떻게 해야 할까.
“스타트업이 초소형위성으로 사업을 할 수 있도록 물꼬를 터줘야 한다. 본격적으로 민간 기업이 사업을 할 수 있도록 기술을 개발할 마중물을 만들어야 한다. 현재 초소형위성 기업에 마중물이 되는 국가 차원의 지원은 사실상 없다. 초소형위성 비즈니스는 특히 가급적 많은 위성을 우주로 올려야 한다. 사업 모델도 한반도가 아니라 전 세계를 시장으로 삼아야 한다. 그래야 해외에서 큰 투자도 받고 사업을 할 수 있다. 국내에서 초소형위성에서 경쟁력이 있는 기업이 5개가 안 된다. 한국에선 기업들이 이제 겨우 우주궤도에 위성을 올려서 통신이 되네, 사진을 찍네 하는데 이걸로는 투자를 받기 어렵다. 글로벌 시장을 목표로 해야 하는데 이게 잘 안 보인다. 정부가 나서 이걸 활성화해야 한다.”
☞큐브샛(Cubesat)
큐브샛은 ‘큐브위성’의 줄임말이다. 초소형(소형)위성 중 하나로 무게가 1~10㎏인 위성이다. 큐브샛은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10㎝가 기본 단위(1U)로, 3U 큐브위성은 빵 한 덩어리 정도 크기이다. 큐브샛을 포함한 초소형위성은 초창기 우주 기술 시연, 고위험 개념 증명, 아마추어 무선과 과학 실험을 위해 사용했다. 현재는 실시간 지구관측, 전 지구 인터넷, 우주재보급, 우주쓰레기 관리 같은 다양한 사업 모델로 확장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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