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환자보다 더 많이 죽는다…병 고치려다 사람 잡는 '항생제 내성'
범부처 관리대책 추진…국제 협력 주도, 글로벌 선도국 발돋움
(서울=뉴스1) 천선휴 기자 = 지금으로부터 약 25년 뒤인 2050년. 사람들은 무슨 병으로 가장 많이 목숨을 잃을까.
이 흥미로운 궁금증에 대한 답은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할 법하다. 많은 사람들이 암을 떠올렸겠지만 암으로 인한 사망자보다 더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새로운 '인류의 숙적'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13일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2050년 전 세계서 암으로 사망할 것으로 예측되는 사람은 약 820만 명에 이른다.
하지만 이보다 더 많은 1000만 명, 3초마다 한 명씩 목숨을 앗아가는 인류의 새로운 위협, 바로 '항생제 내성'이다.
항생제는 우리 몸에 세균이 침입해 감염을 일으켰을 때 치료제로 사용한다. 이 때문에 세균의 종류와 감염 부위에 따라 적절한 항생제를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항생제를 적절하게 사용하지 못했을 땐 문제가 생긴다. 항생제를 오남용하거나 항생제 내성을 갖는 미생물에 사람·동물이 감염되면 기존에 사용하던 항생제는 듣지 않게 된다. 문제는 기존에 사용하던 항생제는 물론 현존하는 가장 강력한 항생제도 듣지 않는 비극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런 인류의 위협은 세계보건기구(WHO)도 진작 인식하고 있었다.
WHO는 지난 2019년 '인류 10대 위험 요인'으로 다제내성균(여러 항생제에 내성을 보이는 세균)을 꼽은 바 있다. 또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나갈 때쯤인 2022년 '항생제 내성이 코로나19 종식 이후 최대 보건위기가 될 것'이라고 무서운 경고를 하기도 했다.
인류를 괴롭히게 될 '항생제 내성'은 전 세계적으로 손꼽힐 정도로 항생제 오남용이 많은 우리 국민에게 더 큰 위협으로 다가온다.
질병청에 따르면 국내 항생제 사용량은 2018년 이후 감소 추세이지만 여전히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칠레, 튀르키예, 그리스, 뉴질랜드, 프랑스, 폴란드, 스페인 다음인 6위를 기록하고 있다. OECD 평균에 비해서도 약 1.4배 높다.
우리나라에서 유난히 항생제 사용률이 높은 이유는 '항생제는 만병통치약'이라는 잘못된 인식이 널리 퍼져 있기 때문이다.
항생제는 세균 감염에만 사용돼야 하지만 감기에 걸려도, 독감에 걸려도, 머리가 아파도 항생제를 찾는 환자가 많다.
실제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공개한 2022년 약제급여 적정성 평가결과에 따르면 급성상기도감염(감기) 항생제 처방률은 2022년 32.36%로 나타났다. 연령별로는 영유아가 41.31%로 가장 높았고 소아청소년 32.59%, 성인 30.22%, 노인이 21.96%가 뒤를 이었다.
2022년 질병청이 8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항생제 내성 인식도 조사를 보면 우리 국민의 항생제 인식이 얼마나 뒤떨어져 있는지 그 심각성을 엿볼 수 있다. '항생제는 세균 감염 질환에만 사용한다'고 정답을 택한 비율은 25.9%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질병청 관계자는 "항생제 용도가 잘못 알려져 있다 보니 환자가 의사에게 처방을 요구하는 경우들이 있다"면서 "의사 1000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5.8%가 환자의 요구로 항생제 처방을 한다고 답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에 정부는 '항생제를 적절하게 사용하고 내성균 전파를 차단해 항생제 내성으로부터 국민을 안전하게 보호한다'는 비전을 가지고 2016년 '제1차 국가 항생제 내성 관리대책'을 발표했다.
이를 통해 △감염예방관리료 신설 △의료기관 시설 기준 및 격리실 이용수가 개선 △무항생제 농장 인증기준 변경 등의 성과를 달성했다.
이후 2020년 범부처 차원의 2차 관리대책이 수립돼 질병청을 필두로 △전문관리팀이 기관 내 항생제 처방 과정을 중재·관리하는 '항생제 적정 사용관리(ASP) 체계' 도입 △'카바페넴 내성균 감염증 감소를 위한 시범사업' 등을 추진하고 있다.
질병청 관계자는 "항생제의 부적절한 사용은 내성 발생의 기회를 증가시키고 질병의 중증화 및 사망, 국민의 의료부담 증가 상황을 초래해 국가 차원의 관리‧중재가 시급하다"며 "전문인력 등 인프라 부족한 상황을 고려해 의료기관에서 항생제 적정 사용관리 체계가 도입‧정착될 수 있도록 지원체계를 마련하는 데도 힘쓰겠다"고 말했다.
더불어 질병청은 감염병별 항생제 사용 지침 9종을 개발해 항생제 적정사용 기반을 마련하고, WHO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감시체계 운영을 위해 권역별 종합·요양병원을 선정해 항생제 내성균 수집센터를 설치해 균종별 분석센터에서 내성정보를 산출하고 있다.
또 국민들에게 항생제의 올바른 사용법을 알리기 위해 2017년부터 세계 항생제 내성 인식주간과 연계한 홍보를 진행하고 있다.
이에 더해 질병청은 지속적인 국제 협력으로 국제사회에서 논의를 주도해 나가고 있다.
지난달 27일부터 이달 1일까지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세계보건기구(WHO) 제77차 세계보건총회에서도 질병청은 사우디아라비아와 함께 '세계 항생제 내성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모멘텀 구축'을 주제로 공동 부대행사를 개최하기도 했다.
지영미 질병청장은 행사를 통해 △우리나라 제1차 항생제 내성 관리대책의 성과 △항생제 적정사용관리 프로그램(ASP) 활성화를 위한 항생제 내성 관리료 도입 계획 △제2차 의료관련감염 예방관리 종합 대책의 성과 및 계획 △원헬스 공동연구와 국제공조의 중요성 등을 적극 알리며 우리나라 위상을 높였다.
더불어 지 청장은 이번 총회에서 전체 회의 부의장에 선출돼 총회 기간 동안 비중 있는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또 독립 자문위원회의 자문위원에 임명돼 다음달부터 자문위원으로서 활동 예정이다.
지 청장은 "앞으로 WHO협력센터로서 글로벌 역량강화를 위해 국제사회와 지속 협력하겠다"라며 "더불어 항생제 수가 신설 등에 박차를 가해 항생제 내성 문제 해결을 위한 효과적인 조치를 시행하는 데 중점을 두겠다"고 말했다.
sssunhu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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