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제국, 기독교를 적극 옹호하고 장려하는 제국으로 변모하다 [역사&오늘]

김정한 기자 2024. 6. 1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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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3년 6월 13일, 로마제국의 공동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와 리키니우스가 공동으로 밀라노칙령을 반포했다.

그리고 밀라노칙령을 통해 기독교에 대해 소극적인 보호를 넘어 적극 보호하고 장려하게 된 것이었다.

밀라노칙령 이후에도 기독교는 많은 어려움에 직면했다.

하지만 밀라노칙령은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공식 종교가 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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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3일, 밀라노칙령 반포
기독교 주교를 맞는 콘스탄티누스 1세. (출처: John Foxe (publisher), 소묘(1563),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313년 6월 13일, 로마제국의 공동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와 리키니우스가 공동으로 밀라노칙령을 반포했다. 이는 로마 제국이 종교적 예배나 제의에 중립적인 입장을 취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로써 로마제국은 그동안 핍박했던 기독교를 옹호하는 입장으로 돌아섰다.

3세기 초반까지 로마 제국 내에서 기독교인들은 박해와 폭력에 시달렸고, 심지어 사형에 처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기독교는 점차 로마 제국 전역으로 세력을 확산했다. 이에 311년 리키니우스 황제는 기독교를 합법화하는 칙령을 반포했다. 그리고 밀라노칙령을 통해 기독교에 대해 소극적인 보호를 넘어 적극 보호하고 장려하게 된 것이었다.

밀라노칙령은 종교의 자유와 모든 종교에 대한 관용을 나타낸 것이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이 원하는 종교를 믿을 수 있게 됐다. 특히 기독교인들은 더 이상 박해받지 않고 자유롭게 신앙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기독교 탄압 기간에 몰수됐던 교회 재산도 다시 반환됐다. 또한, 기독교인들은 자유롭게 교회를 건축하고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됐다.

밀라노칙령을 계기로 기독교는 로마 제국 전역으로 더욱 빠르게 확산했다. 교회와 성직자들에게는 각종 특권이 부여됐고, 각지의 교회 설립을 지원했다. 이와 함께 기독교 예술, 음악, 건축 등이 발전했다. 이는 서구 사회의 기독교적 가치관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밀라노칙령 이후에도 기독교는 많은 어려움에 직면했다. 이단 문제, 황제와의 갈등, 외부 세력의 침략 등 다양한 문제들이 발생했다. 하지만 밀라노칙령은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공식 종교가 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리고 325년에는 니케아공의회를 개최해 교리를 체계화했다.

밀라노칙령은 단순히 종교적 자유를 보장한 칙령이 아닌, 서구 사회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친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다. 또한, 밀라노칙령이 보여주는 종교적 관용과 다양성 존중의 가치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하다는 점을 일깨운다.

acene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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