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 싸움' 마지막 구간?… 금리 인하 시점 고민 커진 한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12일 한은 창립 74주년 기념사를 통해 "물가가 목표 수준으로 수렴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는 인내심을 갖고 현재의 통화긴축 기조를 충분히 유지할 필요가 있다"며 "섣부른 완화 기조로의 선회 이후 인플레이션이 재차 불안해져 다시 금리를 인상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면 그때 감수해야 할 정책비용은 훨씬 더 클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지금도 고물가·고금리로 인해 여러 경제주체가 겪고 있는 고통이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물가가 제대로 안정되지 않으면 실질소득의 감소, 높은 생활물가 등으로 취약계층의 어려움은 가중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 총재는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에서 마지막 구간에 접어든 지금 이러한 상충관계를 고려한 섬세하고 균형 있는 판단이 필요하다"며 "얼마 전 통화정책국이 작성한 블로그에서도 강조되었듯 로마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정책 결정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내세운 '천천히 서두름(Festina Lente)'의 원칙을 되새겨볼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고 강조했다.
이 총재는 금리 인하 시점에 대해 신중론을 유지 중이다. 지난달 23일 열린 금통위 통화정책방향 회의 후 그는 "올해 하반기 중 기준금리를 인하하더라도 시점에 대한 불확실성은 지난 4월에 비해 훨씬 커졌다"며 "물가가 목표 수준으로 수렴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 현재의 긴축기조를 충분히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금통위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는 금통위원 6인의 만장일치로 기준금리(3.5%) 동결이 결정됐다. 기준금리는 지난해 1월 3.25%에서 3.50%로 0.25%포인트 오른 이후 같은 해 2·4·5·7·8·10·11월에 이어 올 1·2·4·5월까지 11회 연속 동결을 유지 중이다.
물론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두 달 연속 2%대로 내려오는 등 물가 상승률이 둔화되며 금리 인하 여지는 생겼다. 통계청에 따르면 5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14.09(2020=100)로 1년 전보다 2.7% 올랐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올해 1월 2.8%에서 2∼3월 3.1%로 높아진 뒤 지난 4월(2.9%)부터 다시 2%대로 내려왔다.
하지만 물가가 안정세에 접어들었다고 판단하기에 시기상조라는 진단도 나온다. 1370원대 중반으로 고공행진 중인 원/달러 환율이 수입물가를 자극할 수 있어서다. 높은 환율은 수입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의 원유와 곡물가 등 원자재 가격 부담을 높여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를 밀어 올릴 수 있다. 4월 수입물가지수는 143.68로 전월보다 3.9% 상승했다. 올해 1월부터 4개월 연속 오름세로 2022년 11월(147.92) 이후 최고치다.
다만 세계 주요국들이 기준금리를 내리기 시작하면서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 시점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지난 6일(현지 시각) 4.25%로 기준금리를 인하했다. 2022년 7월 첫 기준금리 인상을 결정한 이후 2년여만이다.
일각에서는 올해 4분기 금리 인하가 유력한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금융경영연구소는 최근 보고서에서 "한은이 기준금리 인하 시점을 올해 4분기까지 늦출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연구소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등에 따른 내수 부진 우려에도 미국의 조기 금리 인하 기대 약화, 예상을 상회한 1분기 국내총생산(GDP), 원화 약세 부담 등을 고려할 것으로 내다봤다.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의 시각도 동일하다. 지난달 23일 한은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보고서를 낸 IB 7곳 중 노무라, 모건스탠리, JP모건, 소시에테제네랄 등 등 4곳은 4분기부터 한은이 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점쳤다.
강한빛 기자 onelight92@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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